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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놀이기구 - 『시소 : 나, 너 그리고 우리』
그림책 『시소 : 나, 너 그리고 우리』
고정순의 그림책 『시소 : 나, 너 그리고 우리』(이하 『시소』)은 그 다정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한 어린이가 “아무도 없네”라고 말하며 등장합니다. 아이는 곧 시소를 발견합니다. (2022.04.27)
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아이들의 놀이터’엔 인생 진리가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놀 때 더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네는 혼자 탈 수 있지만 누군가 밀어줘야 하늘 저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회전 뱅뱅이도 밖에서 세게 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에 탄 사람이 빙글빙글 어지럽도록 즐겁습니다. 미끄럼틀도 혼자 타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앞뒤 다퉈 오르내리면 더 재밌습니다.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최적자가 살아남는다’는 근대 이후의 오랜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듭니다. 저자들은 강한 자가 아니라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자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진화’ 과정에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친화력이야말로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와 달리 같은 조상에서 나온 개가 개체 수를 늘린 이유이고, 사나운 침팬지보다 보노보가 성공적으로 번식한 까닭이며, 신체적으로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힘이라고 합니다. 제목처럼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사방이 험한 세상 같아도 우리는 태생적으로 먼 인류의 조상에서부터 대대로 전해진 다정함의 DNA가 갖고 있는 다정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겐 마주보고, 아껴주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다정함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어제 다퉜던 그 사람도 좀 다르게 보게 됩니다. 수십만 년을 걸쳐 전해진 이 다정함의 힘을 아이들은 훨씬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듯합니다. 놀이터에서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같이 놀아야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놀이기구 중에서 그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이 시소입니다. 어렸을 때 시소 위에 서서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며 혼자 놀기도 했지만 시소의 진짜 재미는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고정순의 그림책 『시소 : 나, 너 그리고 우리』(이하 『시소』)은 그 다정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한 어린이가 “아무도 없네”라고 말하며 등장합니다. 아이는 곧 시소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시소는 혼자 탈 수 없습니다. 아이는 혼자 비눗방울을 불어 만든 비눗방울을 건너편 자리에 태워봅니다. 당연히 너무 가벼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번엔 상상 속 동물들을 불러옵니다. 그랬더니 상대편이 너무 무거워 땅으로 내려앉아 올라오지 않습니다.
아이는 혼자 놀 수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혼자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고, 경사 각도를 이용해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오기도 하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습니다. 뭔가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을 것 같은 바로 그때, “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한 아이가 다가와 “나랑 시소 탈래?”라고 제안합니다. 이제 아이는 시소가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내려가면
네가 올라가
네가 내려가면
내가 올라가지
다양한 풍경도 볼 수 있어
그리고 숱하게 오르고 내리다 시소가 평행에 이르렀을 때, 가끔 서로 눈을 마주칩니다. 눈빛은 말없이 전하는 마음이죠. 그렇게 신나게 시소 놀이를 한 두 아이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서로 친구가 되어서 말이죠.
모두가 ‘나’를 이야기합니다. 내가 아프고, 내가 힘들고, 내가 소중하다고 말이죠. 물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이고 ‘나’라는 중심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없지만, ‘너’가 없이는 ‘내’가 있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시소가 말하듯 상대가 발을 굴러 나를 올려줘야 하늘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상대를 위해선 내가 내려와 힘껏 발을 굴러줘야 합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말했듯 다정해야 살아남고, 고정순의 『시소』가 이야기하듯 함께 해야 더 재미있습니다. 상대의 무게를 견디고, 받아들이고, 감당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상대 또한 내 무게를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면 때론 미안하고 고마워집니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도착하는 건 『시소』의 주인공인 아이뿐이 아닙니다. 우리도 누구나 인생에서 숱하게 ‘아무도 없는’ 곳에 당도합니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새 학급에 들어가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직장에 들어가고,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모임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너’를 만나야 합니다. 단순한 보통명사 ‘너’가 아니라 친구, 동료, 연인인 고유명사 ‘너’를 만나 서로의 무게를 감당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높이 올라 먼 곳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나로 인해 높이높이 올라 먼 곳까지 보는 것이 진짜 기쁨이 된다면 그땐 아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태어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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