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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수필가, 화나가 선택한 길

화나(FANA) <Fanati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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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향한 내공과 실험 정신은 여전하고 자조적인 스토리텔링 또한 무르익었다. 시류 편승보다 정공법을 택한 화나는 <Fanatiic>을 통해 랩 수필가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2022.02.16)


라임 몬스터가 돌아왔다. 2004년 힙합 레이블 소울 컴퍼니를 통해 힙합 신에 발을 내디딘 그는 어느덧 18년 경력의 중견 래퍼가 되었다. 특유의 어두운 색채와 잘 설계된 라임으로 '가면무도회'와 'Red sun' 같은 수작을 발표해온 그가 새로운 정규 앨범 <Fanatiic>으로 정체성을 되새겼다. 제목에서 유추하듯 2009년 작 <Fanatic>의 후속편이며 풍성한 상차림으로 6곡, 21분 러닝타임의 전작 <FANAbyss>의 양적 아쉬움을 해소했다.

서늘한 재즈풍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관류하며 음울한 분위기를 살린다. 레트로한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담배가 모자라'와 브라스 세션이 특징적인 'FANA funk'에서 소리에 대한 이해와 유행 무관의 뚝심을 엿본다. 인터루드에 가까운 2분 내외의 짧은 곡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발휘하며 구성의 미덕도 챙겼다.

밀도 높은 편곡 사이에서도 그의 랩은 명징하다. 마디에 알알이 박아놓은 라임을 가뿐히 소화하고 이펙터를 활용한 톤 메이킹으로 가사에 힘을 싣는다. '차이'에서 유연하게 리듬을 타다가 역시 딜리버리에 강점을 둔 베이식과 'Bfg' 속 합을 주고받는다. 후반부 록 스타일로 강조를 준 '발아'의 “판을 깔아, 밭을 갈아, 싹은 발아, 나는 알아”가 화룡점정.

전작 <FANAabyss>에서 공황장애 기간을 심연에 빗댄 것처럼 화나의 음악은 자전적이다. 소년기부터 삼십 대 중반의 현재를 아우르는 서사는, 산문으로 시적 감성을 환기하는 '광흥창에서'와 상대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삶을 압축한 '요람기'에서 특히 돋보인다. 때로 높은 수위에 당황하지만 진솔한 고백이 마음에 가닿을 때 공감을 끌어낸다.

광기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한 정규 1집 <Fanatic>이 발표된 지 어언 12년, 화나는 다시금 음악적 정체성과 그 이전의 인간 김경환을 돌아본다. 패기 넘치던 라임 몬스터는 연륜을 머금은 베테랑 래퍼로 진화했다. 소리를 향한 내공과 실험 정신은 여전하고 자조적인 스토리텔링 또한 무르익었다. 시류 편승보다 정공법을 택한 화나는 <Fanatiic>을 통해 랩 수필가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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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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