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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팝의 원류, 보사노바 그리고 조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Wave>
보사노바의 전 세계적 확산이 조빔의 원하는 바였는지 모르겠으나 재즈와 팝 등 저변이 굳건한 미국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여타 브라질 뮤지션과 차별된다. <Wave>는 보사노바가 순수했던 시절의 마지막 기록이다. (2022.02.09)
'Antonio's song'을 사랑하신 어머니는 "But sing the song"으로 시작되는 후렴구를 곧잘 따라부르셨다. 미국의 재즈 뮤지션 마이클 프랭스가 1977년 발표한 이 곡은 보사노바풍의 세련된 분위기로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선곡되었다. 당시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게 바친 헌사라는 곡 정보도 몰랐다.
보사노바(Bossa nova).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감각'을 뜻하는 이 음악은 1950년대 말 브라질 삼바가 미국 쿨 재즈의 감성을 껴안아 탄생했다. 192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루이스 본파와 함께 1959년 제1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을 감독했고, 스탄 게츠와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함께한 명반 <Getz/Gilberto>에 'Desafinado'와 'The girl from Ipanema'를 제공해 보사노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도어즈의 데뷔 앨범 <The Doors> 등 무수한 록 명반이 쏟아졌던 1967년. 불혹에 접어든 남미의 거장은 성숙한 음악 세계로 넉 장의 수작을 쏟아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협업한 명반 <Francis Albert Sinatra & Antonio Carlos Jobim>에서 미국의 스탠더드 곡을 보사노바로 재해석했고 'Mas que nada'로 유명한 동향의 후배 세르지오 멘데스와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Antonio Carlos Jobim & Sergio Mendes>을 내놓았다.
솔로 앨범도 두 장이 나왔다. 조빔의 달콤한 음성을 담은 <A Certain Mr. Jobim>은 전체적으로 덜 정제된 느낌과 일관적 톤을 가져갔다. 2개월 후에 발표한 <Wave>는 전작의 연주와 프로듀싱 측면에서 단점들을 보완해 보사노바의 걸작이 되었다.
진녹색 하늘과 푸른빛 바다를 배경으로 기린이 서 있는 초현실적 화풍의 앨범 커버는 미국 사진작가 피트 터너의 작품이다. 그는 조빔의 수작 <Tide>와 <Stone Flower>에서도 앨범의 첫인상을 책임졌다. 고고한 기린의 형상이 보사노바 영지에 선 거인 조빔과 겹쳐 보인다.
동명의 타이틀곡 'Wave'는 앨범의 압축판과 같다. 현악 세션에 라틴 리듬을 곁들인 이 곡은 부드러이 일렁이며 포말을 생성하는 리우 해변의 파도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역대 최고의 브라질 노래 73위로 선정했고 조니 매시스, 사라 본 등 여러 뮤지션이 이 노래를 재해석했다. 또 다른 대표곡 'Triste'는 2분을 넘는 간결한 구성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빔의 오랜 파트너인 돔 움 로마오의 퍼커션 연주가 'Captain bacardi'에 탄력감을 부여했다.
앨범은 전작 <A Certain Mr. Jobim>과 달리 숙련된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목관악기 피콜로 3명, 첼로 4명 바이올린엔 무려 13명이 참여하는 등 사운드 편성과 악기 연주에 공들였다.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론 카터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빌 에반스 등 재즈 거장의 앨범에 참여했고 '가장 많은 레코딩을 남긴 베이스 연주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The red blouse'에서 리드미컬한 연주를 선보였다.
루이스 본파, 조앙 질베르토 등 1960년대 초중반 브라질 뮤지션들의 보사노바 작품은 덜 다듬은 원석 같았다. 조빔 또한 그런 시기를 거쳤으나 물오른 작·편곡 능력에 일급 연주자의 참여, 전설적 재즈 앨범을 배출한 밴 갤더 스튜디오의 기술력으로 기술과 예술성이 완벽한 작품을 창조했다. 평단의 찬사와 더불어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5위의 호성적을 기록했고 명곡 'Brazil'이 수록된 <Stone Flower>와 후기작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된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 재즈, 일본 시부야 계와 시티팝 등 다양한 스타일이 보사노바의 우산 아래 있고 국내에서도 김현철, 조덕배가 보사노바풍의 음악을 보급했다. 브라질 중산 계층의 여유와 낭만을 상징했던 보사노바는 광고와 라운지 음악으로 널리 쓰이며 대중화를 이뤘다. 보사노바의 전 세계적 확산이 조빔의 원하는 바였는지 모르겠으나 재즈와 팝 등 저변이 굳건한 미국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여타 브라질 뮤지션과 차별된다. <Wave>는 보사노바가 순수했던 시절의 마지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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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