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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지, 진심이라면 서툴 수밖에 없으니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 이심지(활동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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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희망’이 현실적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느껴져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과정은 한 방향이 아니라 이리저리 충돌하면서 나아가는 거겠죠. (2022.01.10)


“타인 앞에 서투른 인간들의 표정이 늘 궁금하다.” 

이심지는 이십대의 마지막을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며 이렇게 썼다. 『오래된 습관』은 진심이라면 서툴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 5년 간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기록이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이심지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떤 독서는 타인을 힘껏 껴안는 서투른 포옹 같은 것이라고.


심지 님 하면 여러 모습이 떠올라요. K-인디 덕후,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자칭 초보 활동가. 요즘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영화를 많이 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잘 맞는 일 같아요. 최근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연대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요. 

한국소설을 꾸준히 읽어왔죠.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 

이십대 초반에는 은희경, 황정은, 최은영 작가님을 좋아했어요. 은희경 하면 보통 ‘냉소’를 많이 떠올리는데, 어느 순간 작가님 스스로 예전의 글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냉소적인 태도가 그렇게 멋있는 태도만은 아니야 하는. 저는 ‘냉소’만 있는 글은 너무 젠체하는 것 같고, 어떻게든 희망을 말하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5년간 쓴 글을 묶은 『오래된 습관』을 독립출판했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이십대를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브로콜리너마저’와 ‘김사월’이 나오는 콘서트에 갔는데, 와 저 사람들은 자신의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있구나,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다작하는 작가들이 부러웠는데, 책으로 묶고 보니까 저도 그동안 꽤 꾸준히 써오긴 했더라고요.(웃음)

책의 부제가 “타인 앞에 서투른 인간들의 표정을 담다”예요.

딱 제가 타인 앞에서 서투른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남들은 어떤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사람을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니까요. 진심이라면 서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최은영의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감각을 많이 느끼는데요. 남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미끄러지고 마는 인물들에 애정이 있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를 인용하며 글이 시작돼요. 술에 취해 “저라는 사람보다 제 글이 더 좋은 것 같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고요.

글은 굉장히 정제된 ‘나’여서, 누군가 좋다고 하면 조금 무서워요.(웃음) SNS를 열심히 하니까 어쩌다 한 번씩 팬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럼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하게 되는 거죠. 

매 글 끝에 기록한 날짜가 적혀 있어서, 과거의 심지 님을 상상하게 됐어요. 스스로 “둘도 없는 희망 예찬론자”라고 했던 심지 님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궁금하고요.

예전엔 정말 ‘낭만병’에 걸려 있었는데요.(웃음) 희망은 반드시 있고, 하나의 답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문학이나 정치를 알면, 이 세상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잖아요. 지금은 ‘희망’이 현실적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느껴져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과정은 한 방향이 아니라 이리저리 충돌하면서 나아가는 거겠죠.

인상적인 독자의 반응이 있었나요?

친구가 책을 다 읽고는 ‘위로의 윤리’라는 글이 재밌었다고 하더라고요. 초콜릿을 주면서 ‘이거 먹고 나면 기분이 좀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고요. 그 말이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책을 내면서 목표한 것 중 하나거든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 즐거움을 찾는 게 참 중요한데, 그 일에 제가 도움이 된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책을 읽고 나서 영화나 책이 보고 싶어진다고 할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요즘에는 어떤 책을 읽나요?

최근에는 편지글에 푹 빠져 있었어요. 『카프카의 편지』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등을 읽었는데요. 글을 읽을 때, 작가의 삶이 궁금할 때가 많거든요. 누구한테 영향을 받았는지, 생활은 어땠는지 그런 흔적을 발견하는 게 즐거워요. 편지는 의외로 참 쓰기 어려운 글 같아요. 이슬아, 남궁인의 편지가 화제가 됐을 때, 진짜 반성을 많이 했거든요. 직전에 지도교수님한테 편지를 썼는데 다시 읽어보니 제 얘기밖에 없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편지를 잘 쓴다는 건 뭘까, 수신인이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꾸준히 쓰고 싶다. 그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에요. 큰 욕심은 없고, 5년 동안 묶은 글을 책으로 만들었는데 또 한 5년 뒤에 책이 나오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에게 도달하는 책 뒤에는 글쓴이의 노동과 삶이 있을 것이다. 이심지는 성실한 독자로서 그것들을 늘 궁금해한다. 수전 손택과 전혜린의 글을 읽으면서 다양한 욕망을 지닌 삶이 흥미롭다고 느꼈고, 『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을 읽으면서 내 글을 깊이 이해해주는 친구를 상상했다. 그렇게 친밀한 상대에게 편지를 건네듯 첫 책 『오래된 습관』을 만들었다.

 

장소제공: 카페 아망



카프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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