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탄생] 왜 하필 이 제목이죠? (10)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에 역행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팔리는 제목을 간절히 원했고, 서로의 존재를 닦달해 가며, 기시감 드는 제목 회의를 속행했다. (2021.06.03)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야누시 코르착 원작 / 이지원 옮김 / 사계절
제목 후보는 ‘왕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들어’와 ‘어린이의 왕’에서 시작했다. 전자는 원제에 가까운 제목인데, 왠지 뉘앙스는 살고 키워드는 흐릿했다. 어린 왕의 처지를 내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역할은 이미 그림이 다하였으니, 우리는 ‘어린이’라는 핵심 단어를 넣자는 결심에서 ‘어린이의 왕’을 선택했다. 다음 고민은 디자인 면에서 허전해지는 글자 수, 그리고 다시 보니 이 말만 남으면 왕의 불안한 이미지를 정의하듯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목 자리도 헤아리면서 좀 더 당당하게 말 맺는 문장을 만들었다. 당자의 목소리를 빌려 그의 꿋꿋한 의지가 드러나도록. 사실 책 속에서 어린 왕은 이 제목을 외칠 때 유일하게 환히 웃는다. 박지현(사계절)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 조윤진 옮김 / 다른
“격렬히 갈구할수록 멀어진다.” 우리의 제목 짓기 여정은,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에 역행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팔리는 제목을 간절히 원했고, 서로의 존재를 닦달해 가며, 기시감 드는 제목 회의를 속행했다. 하필 원제가 별 도움이 안 됐다. 직역하면 “프랑스인에게 배우는 노력하지 않기의 기술”인데 지금 같은 코로나 시국에 프랑스인에게 삶의 태도를 배운다는 게 일단 별로였다. 무엇보다 열공, 열일을 부르짖어 온 한국인에게 노력하지 않기의 기술이 패배감으로 비치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마침내 선택된 제목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애를 쓴다는 게 어떤 건지 익히 경험한 사람의 마음을 투사한 것이다. 노력의 결과, 그 짜증나는 불확실성과 서글픈 모호함에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제목이 좀 혹했다면 우리는 이 책을 먼저 잘 읽은 것이다. ‘제대로 노력’한 거니까. 원경은(다른)
도다야마 가즈히사 지음 /이소담 옮김 | 단추
제목을 정하려면 우선 드러누워야 한다. 단것을 마구 먹는다든지, 다른 책들을 뒤적인다든지. 제목을 정할 때면 나오는 이상 징후들이다. 제목이 바로 떠오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이 책의 원제는 '공포 철학'이었다.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원제가 입에 붙어버려 그대로 갈까 했으나 본격 철학서 같은 제목이라 독자들이 어렵게 느낄 것 같았다. 이 책은 사실 '살아있는 철학'이라는 말을 빌려 아재개그를 날리는 철학자의 만담에 가깝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철학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포는 호러, 철학은 사피엔스로 치환했다. '공포를 즐기는 사람' 정도로 해석되려나.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아직도 나는 제목 자판기가 발명될 그날을 꿈꾼다. 박시영(단추)
소소한소통 지음 / 소소한소통
따끈한 A4지 한 장에 빼곡히 들어찬 제목들. 이건 입에 딱 안 붙잖아? 요 제목은 다 좋은데 좀 지엽적이야. 모니터에 떠 있을 때와 종이에 박혀 있을 때 제목 느낌이 왜 다를까. 출력물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혼잣말을 중얼대는데 스윽- 등 뒤쪽으로 드리워지는 그림자 하나. “어! 이거 좋은데요!!” 대표님이다. 잠깐의 곁눈질에도 홀로 빛나던 이 제목은 이후 회의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표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쉬운 정보 제작 시 겪게 되는 업무적·심정적 고충을 대변하는 제목이란 뜻이겠다. ‘쉬운 정보’는 쉽고 명료한 글과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발달장애인 등을 둘러싼 정보 장벽을 낮춰 모두의 소통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결과물이 쉬워 보인다고 해서 제작 과정마저 헐거운 건 아니다. 기습 퀴즈! ‘습도’를 이해하기 쉽게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이준희(소소한소통)
임영주 지음 / 앤페이지
딩크족인 나는 매일 자녀와 다투는 회사 동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른이 왜 아이와 싸우지?”. 어느 날, 공원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초등 저학년과 입씨름이 붙었다. 아이가 쫓아다니며 ‘강아지가 못생겼다’며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못 생겼는데요? 진~~짜 못 생겼어요!” “야, 니가 더 못생겼거든!” “으앙~~~” 순간 나는 30여 년의 시간차를 가뿐히 뛰어 넘어 이들과 똑같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부모와 아이가 싸우는 이유, 훈육이 아이와의 힘겨루기로 이어지는 까닭을 말이다.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하는구나! 김수연(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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