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안부를 묻습니다
오늘의 절망 이후에는 무엇이 올까요?
세상은 망해가는 와중에도 잘만 돌아가고,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라고 툭툭 털고 일어설 것이다.(2020.09.11)
재택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인터넷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문득 전쟁이 나면 전혀 모르는 채 집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군가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면 무서우니까 일단 문을 잠글 테고.
구글포토는 1년 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1년 후 구글포토는 나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카메라로 찍은 것이라고는 컴퓨터 모니터를 찍은 참고 자료 화면과 충격적으로 비싸진 채소 가격표가 전부다.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생활이 협소해졌다. 집에는 종일 있는데, 막상 집에서도 할 일이 태산인데, 굳이 하지 않는다. 멍하니 스트리밍 사이트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바이러스 전망과 이 모든 것을 일으킨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무기력을 증폭시킨다.
지구 마지막 날은 하루에 오는 게 아니라 시나브로 온다. 갑자기 소행성이 충돌한다거나 핵실험장이 폭파되면서 오는 극적인 상황이었으면 영화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으련만. 현실은 작년보다 조금 더 큰 태풍, 10년 전보다 조금 더 더워진 지구, 개인위생과 마스크로 시작해 점점 집에 고립되는 나 자신이 멸망의 징조다.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사는지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알 수야 있겠지만, 조금 더 쓸만한 신경이 남아있지 않다. 가끔 연락이 닿는 단체 카톡방이나 안부 문자에는 다들 비슷하게 힘들어서 오히려 별말을 하지 않는다. 쟤도 힘들겠거니, 굳이 묻기보다 언제 끝나냐, 언제 봐야지, 하고 끝난다.
영화를 보면 지구 마지막 날을 앞두고 폭동이 일어나지만, 폭동을 일으킬 힘은 역시 남아있지 않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마스크를 벗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명령할 위치에 있다고 과시한다. 집에 있는 사람들은 집 밖에 나선 사람들을 욕한다.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버틸 수 없는 사람들만 마스크를 쓰고 배달을 하러 길을 나선다. 고립이 겹쳐서 절망이 된다.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건가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 모습인가
Hey 한번만 나의 눈을 바라봐
그대의 눈빛 기억이 안나
- 박성신, <한번만 더> 중
집안에 혼자 있으면 감정이 격해지기 쉽다.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청승을 떤다. 세상은 망해가는 와중에도 잘만 돌아가고,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라고 툭툭 털고 일어설 것이다. 지금은 그저 청승에 최대한 가라앉은 채 얼른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바이러스는 곧 예언서처럼 꼭꼭 숨은 집마다 도적같이 나타날 것이다. 그 전까지 오늘 할 일을 해야지.
퇴근 시간이 되어 컴퓨터를 끄고 냉장고와 찬장에 남은 반찬으로 대충 저녁을 먹었다. 모두의 안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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