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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87화 : 우리도 총공세로 나가야 합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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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은 그때에 싸움이 목전에 이르러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2020.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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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야마시타를 말하는 건가? 그가 지금 어디서 뭘하구 있소?”

 

일철이 앞으로 튀어 나올 듯이 상반신을 수그리고 묻자 형사는 자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연이라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분은 지금 경찰서장입니다. 제가 그분의 전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쳐 죽일 놈이 무슨 할 말이 있다구……”

 

하면서 언성을 높인 것은 조영춘이었다. 형사는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모두 과거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이 선생이 절친한 친구였다면서 한 번 만나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우리가 잡으러 가겠다구 그러슈.”

 

조영춘이 말하자 이일철은 종이쪽지에 뭔가를 끄적여서 형사에게 내밀었다.

 

 “이걸 전하시오. 거기 약속장소와 날짜 시간을 적었소.”

 

형사가 일철이 적어준 쪽지를 받아 가지고 사라지자 조영춘이 말했다.

 

 “이건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야마시타는 우리가 처벌해야 할 매국노입니다.”

 

일철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일어났다.

 

 “우리가 정부를 수립하면 법에 따라 처벌을 해야 하겠지요. 지금 군정청 경무부는 일제 총독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들이 모든 치안과 공권력을 차지하고 있지요. 내가 최달영이를 만나려는 것은 저쪽 동향을 살피려는 것뿐이오.”

 

 “지회장님과 의논해 보시지요.”

 

 “물론 그렇게 하겠소.”

 

전평 영등포지회의 위원장은 해방 전 이이철과 함께 옥고를 치르며 살아남은 안대길이었고 그는 조공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다. 현재 그는 수배 중이어서 공식석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일철은 그날 저녁에 안대길과 따로 만났다. 그의 모친은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식당을 열어놓고 있었고 안대길은 작은 공장들이 몰려있는 문래동 부근의 철공소 이층에 은거하고 있었다. 일철이 최달영 문제를 꺼내자마자 안재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가 그 놈을 처단하지 못하면 죽어간 동지들의 넋을 어떻게 달래줄 수가 있겠어요?”

 

이일철은 그때에 옥사한 아우의 형인 자기보다는 최달영의 문제는 안재길 조영춘 등이 당사자라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안재길이 말했다.

 

 “군정 당국이 우리 당 건물을 명도 처리했고, 박헌영 동지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에 대하여 체포령을 내렸어요. 저들은 우리를 압살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거요. 우리도 총공세로 나가야 합니다.”

 

 “하여튼 제가 만나본 뒤에 결정하도록 하시지요.”

 

 “그런 자들을 처단할 특무조를 조직해야겠어요.”

 

일철은 그때에 싸움이 목전에 이르러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사흘 뒤에 이일철은 이전에 그와 야마시타가 만나던 역전 본정통의 정종 집으로 나갔다. 일본인들은 퇴거했고 업소의 주인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 집은 조선인 주방장이 물려받아 예전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식당 안쪽으로 안내 받아 들어서니 칸막이 안에서 야마시타 최달영이 엉거주춤하며 일어났다. 그는 이전보다 더욱 신수가 훤해져서 말쑥한 양복 차림에 포마드를 발라 올백한 머리는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오이, 얼마만인가!”

 

최달영의 반가워하는 기색에 일철은 못내 거북스러워서 그가 내민 두 손에 한 손을 맥없이 잡힌 채 그가 흔드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야마시타 선생 여전하군……”

 

일철이 중얼거리자 최달영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명함을 꺼내어 내밀었다.

 

 “아, 그건 창씨개명한 이름 아니었나? 자네두 리노우에 상이었지.”

 

일철은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용산경찰서장 총경 최용이라고 명함에 박혀 있었다.

 

 “최용? 새 이름인 모양이군.”

 

 “그래 해방이 되었으니 과거를 씻고 새 사람이 되어야지. 나도 새나라 건설에 힘을 보태려고 하네. 자네두 좀 도와주게나.”

 

일철은 그가 따라준 정종대포 잔을 들어 반쯤 마시고는 말했다.

 

 “이철이를 잡아다 죽인 게 자네 아니었나?”

 

 “어어 그건 말하자면 길고 복잡한 얘기 아닌가? 자네가 특급열차를 몰았듯이 나두 생계를 위해 경찰 일을 한 거라구. 그때에 두쇠가 전향하고 자네처럼 생업을 가지고 조용히 살았으면 별일 없었을 거야.”

 

일철은 온갖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가까스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나를 만나자는 용건이 뭐냐?”

 

최달영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곧 전국적으로 체포령이 떨어질 텐데 자네에게 충고를 해주러 왔네. 우리는 자네들 뒤에 조공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냥 방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가족들 생각해서 전평을 그만 두게. 내가 상부에 말해서 자넬 철도국 간부로 천거하려 하네.”

 

 “내 걱정은 말구, 이철이 옛 동무들이 야마시타를 잊고 그냥 내버려 둘까?”

 

최달영은 침착하게 말했다.

 

 “이봐, 일본 놈들이 돌아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하나두 없다구. 이제는 결국 빨갱이들이 문제인 거야. 나 같은 사람들을 뭐라구 하는지 아나? 나는 자네처럼 기술자라구. 빨갱이 잡는 전문가란 말이지. 미국도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힘 있는 조선인들도 우리가 필요하단 말야.”

 

이일철은 그때에 반쯤 마신 정종 잔을 들어 최달영의 얼굴에 뿌리면서 외쳤다.

 

 “그래 잘 해 처먹어라, 앞잡이 놈아!”

 

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달영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어리석게 굴지 마라. 나중에 후회할 거야.”

 

결국 나중에 이일철이 후회한 것은 자기가 감정을 쉽게 드러냈다는 것뿐이었다.   

 

경찰이 전평회관을 포위하고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군용트럭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트럭 위에는 버젓이 각목이며 쇠파이프에 곡괭이 자루 등으로 무장한 청년들 수백여 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대한노총원임을 자처했으나 대부분이 보수 정당의 청년단과 서북청년단이었고 그들 중에는 일정 때부터 경성에서 총독부의 조정아래 폭력을 휘두르던 깡패들이 앞장을 섰다. 회관 입구와 층계 복도 등의 요소를 지키고 있던 노동자 보안대원들은 앞장선 폭력배들의 무력에 간단히 제압되었고 깡패들 중에는 총기를 지닌 자들도 있어서 총소리까지 요란했다. 수십여 명이 다치고 살해 되었으며 피가 낭자한 회장에 경찰 병력이 들어와 천 사백여 명의 일반 노동자들과 간부들을 체포 검거했다.

 

이일철은 이날 주위 동료들의 도움으로 탈출로를 찾아 서울역 쪽으로 대피했다가 밤이 되어서야 화물차를 얻어 타고 영등포로 퇴각했다. 그들은 일단 영등포 철도공작창을 봉쇄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신금이는 한밤중에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혹시나 하여 신을 끌고 대문간까지 나가서 나직하게 물었다.

 

 “누구……세요?”

 

 “응 나요 나. 어서 문 좀 열어줘.”

 

남편의 낯익은 목소리에 대문 빗장을 열자 일철이 쏟아지듯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의 반쯤을 붕대로 감았고 한 팔은 부목을 대고 목에 건 몰골이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 희미한 불빛 아래 붕대 바깥으로 배어 나온 검붉은 핏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나 물 좀 주구려. 그리고 밥 좀 없나?”

 

신금이는 그날 놋그릇에 가득 떠다 준 물을 일철이 허겁지겁 받아서 숨도 쉬지 않고 벌컥이며 들이켜고는 빈 그릇을 방바닥에 던지며 하늘을 향하여 입을 벌리고 긴 숨을 몰아쉬던 장면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건 마치 집을 나갔던 개가 사연 많은 상처 투성이의 사지를 끌고 들어와 마루 밑에서 헐떡이며 물을 마시던 광경을 볼 때처럼 측은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솥에 넣어 두었던 보리밥은 이미 축축한 물기에 젖어 진밥이 되어 버렸는데 쉬어터진 열무김치와 짜디짠 간고등어 조림뿐인 반찬을 놓고 그는 서슴없이 밥그릇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연신 물에 만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붓듯이 쓸어 넣고는 한손에 그러쥔 수저를 번갈아 옮겨 쥐며 김치와 자반을 연달아 찍어 먹었다. 얼마나 배가 고프고 허기가 졌던지 보기에도 딱했다. 심야의 식사가 끝나고 그는 아내에게 속옷을 달라고 하여 갈아입고는 양말과 속옷가지를 보퉁이에 싸들고 일어섰다.

 

 “어딜 또 나가시려우?”

 

신금이가 묻자 일철은 아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툭툭 두드려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지산이 지금 자나? 아부지두……”

 

 “응 다들 자요. 눈 좀 붙이구 아침에 나가여.”

 

 “지금 가봐야 해. 모두들 나를 기다리구 있을 거요.”

 

신금이는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를 기다리는 많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고 급박한 당시 상황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일철이 붕대 사이로 퉁퉁 부은 얼굴로 돌아볼 때에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꼴을 신금이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내일 공장으루 찾아갈 거예요.”

 

대답 없이 일철이 대문 밖으로 휭하니 사라졌고 그것이 그가 이 집에 들어섰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폭력배들은 다시 용산철도국 영등포 공작창으로 몰려왔다. 이때에는 농성하던 노동자들도 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고 공장 입구에서부터 온갖 잡동사니로 바리게이트를 쌓았고 장애물을 겹겹이 둘러놓았으며 투석을 벌일 돌무더기를 사방에 모아두고 화염병도 준비해 두었다. 서울 8개 관구 경찰서의 지원을 받은 경찰 병력 삼천여 명은 공작창 일대의 큰 길과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정문 바리게이트 쪽으로 돌격하고 투석이 시작되자 카빈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기관총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자동소총인 엠투 카빈의 연발 사격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담을 넘어서 공장 마당으로 진입한 폭력단들은 화염병에 대하여 수류탄도 던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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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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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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