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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3화 : 그녀가 말하려던 충분한 한마디
『마터 2-10』 연재
어느 날 외롭고 적막해서 페트병 위에 적어 놓았던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 가운데 지숙이 누나 페트병이 금이 할머니 페트병 옆에 기우뚱 서있는 게 보였다. 그렇지, 그녀가 있었다. (2019. 11. 13)
이진오는 아직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오늘이 그가 굴뚝에 올라온 지 삼백 일 째가 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그들은 이 날을 준비해 왔다. 밑에서는 시민단체와 금속노조의 집행부가 주최하는 오체투지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굴뚝 아래 모여서 출정식을 간략하게 마치고 청와대까지 기어갈 작정이었다. 이제 삼월이었으나 날씨는 아직 쌀쌀했고 굴뚝 위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그리고 의사가 올라와 그의 건강을 간단히 체크할 것이다. 또한 홍보부서의 일꾼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전국의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의사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굴뚝에 올라가는 것을 안전상의 문제로 허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카메라를 올려서 이진오 자신이 왜 굴뚝에 올라왔으며 자기들의 요구 사항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농성하고 있는지를 셀프 촬영해야 하였다.
그는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슬리핑백의 조금 열고 팔을 밖으로 빼내어 가차없이 지퍼를 주욱 내렸다. 냉기가 대번에 전신에 스며들었다. 그는 잽싼 동작으로 옷을 겹겹이 끼어 입었고 두툼한 겨울내의 위에 방한복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는 두터운 털 양말을 신은 채 잠자리를 빠져 나와 얼른 방한화를 신었다. 이제 든든해졌다. 휴대전화를 보니 새벽 다섯 시 십 분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 까짓 거 동료들이 오늘은 아침 일곱 시에 온다고 했으니 두 시간은 후딱 지나갈 것이다. 그 사이에 진오는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제 동료들이 올려준 플래카드의 끝자락부터 조심스럽게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에 불려 날아가거나 뒤틀리지 않게 조심했다. 그것을 난간에다 길게 둘러칠 작정이었다. 천의 곳곳에 구멍을 뚫고 매듭 지어 놓은 밧줄을 난간의 철봉에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그는 플래카드를 옆구리에 끼고 끝자락부터 펼쳐 붙들어 맸다. 그렇게 펼치고 매기를 거듭해서 난간의 끝까지 채웠다. “!라하시실 동가장공, 고하단중 각매할분”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거꾸로 보였다. 그는 다섯 명의 동료들 중에 막내인 재주꾼 최군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송해준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또 보았다. 굴뚝 농성 삼백일 기념 문화제를 알리는 전자 포스터였다.
민주노조 사수, 고용승계 쟁취, 분할매각 저지!
청춘을 공장에 다 바친 노동자
단물만 빼먹고, 노동자는 필요 없다는 회사
300일 동안 굴뚝을 공장을 지키는
이진오를 만나러 갑니다
굴뚝 그림을 배경으로 떠있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글자들을 들여다보다가 그는 물을 잘못 삼킨 때처럼 울컥 하며 숨을 멈추었다가 후우 길게 내뿜었다. 지상에서 해고 반대를 외치며 싸우는 사이에 오 년의 무심한 세월이 흘러갔고 노조 지회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분열되었다. 어용노조가 탄생했고 해고는 정당화 되었다. 그는 아직 동이 틀 징조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굴뚝 위에서는 언제나 차디찬 강바람이 몰아쳐 왔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지상에서도 그랬듯이 꽃샘추위는 얄밉게 버티며 물러가지 않았다.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옛말은 계절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네 같은 노동자의 현재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진오는 바깥에 두른 비닐 천막 아래 앉자마자 일인용 등산 텐트 속의 잠자리로 돌아가 다시 눕고 싶었다. 어느 날 외롭고 적막해서 페트병 위에 적어 놓았던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 가운데 지숙이 누나 페트병이 금이 할머니 페트병 옆에 기우뚱 서있는 게 보였다. 그렇지, 그녀가 있었다. 그들보다 몇 년 전에 조선소의 크레인 위에 올라가 일 년 여를 버티어낸 강철 같은 여성 노동자. 아니 남들이 그렇게 부르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냥 젊은 노동자들의 누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시 쓰는 노동자의 말처럼 지숙이 누나는 대지모신처럼 강철을 생명체로 바꾸어버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올라가 농성하던 거대한 쇠 철탑이 태양 빛에 달구어져 누나의 가냘픈 살을 태울 듯 뜨거웠던 계절에 그녀는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아직도 덜 식어 후텁지근한 열기가 남은 크레인 운전실의 쇳덩이 방에서 누나는 꿈을 꾸었다. 철탑의 아래에서 스멀스멀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육중한 사각의 크레인 쇠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은 뿌리로 변하여 구불거리고 꿈틀대며 땅 속을 파고 들어갔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뻗어 나가자마자 아래에서부터 나뭇잎이 돋아나고 갈색 페인트 색은 싱싱한 녹색으로 되살아났다. 쇠가 살아있는 나무로 변하면서 나뭇잎은 무성하게 자라나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위로위로 올라왔다. 드디어 크레인 철탑은 자취를 감추고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이진오는 어떤 책에서도 지숙이 누나의 꿈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은 적이 없었다. 시 쓰는 한 노동자가 그녀의 철탑 농성 시기에 한 줄로 그녀의 반평생을 적었고 진오는 그 몇 줄의 글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열다섯 살에 가출해
신문배달, 봉제보조, 시내버스 안내양을 거쳐
한성중공업 최초의 여성용접공이 된 사람
26세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3번 다녀오고
감옥 2번 살고, 5년 수배생활을 하다 보니
머리 희끗한 오십대가 되어버렸다는 사람
한국 근현대사, 노동자 민중의 수난사를
자신의 온몸에 새겨 넣은 사람
이 평지의 누구보다 밝고 활달하고
낙천적이었던 사람
누나가 철탑에 올라가 있었을 때에 진오는 지원 투쟁을 위하여 동료들이며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로 달려갔다. 가냘프고 나이든 그녀를 올라가게 한 것은 무슨 힘이었을까. 수년간의 끝없는 노동운동을 통하여 노조는 그녀에게 지도위원이라는 뻣뻣한 직함을 주었지만 그것은 후배들 젊은 노동자들에게는 맏누나라는 말의 다른 명칭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함께 해고당하고 같이 농성하던 동료가 자결한 뒤에 그 죽음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철탑에서 죽기를 작정하고 올라갔던 이야기는 나중에 알려졌다. 일 년 이상을 버티다가 몸은 거의 삭정이처럼 마르고 쇠약해져서 두 눈만 불빛처럼 빛나던 지숙이 누나를 공안당국은 현장에서 체포하여 일 년 반의 구형을 때렸다. 사회에 분노가 번져가자 지숙이 누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조용해진 뒤에 소리 소문도 없이 적막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지쳤는지 아니면 스스로 자기 정리가 필요했는지 사람들을 피하여 은둔에 들어갔고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병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제 그녀의 뜻만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평지를 탈출하여 허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고 가난하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저희가 겪은 억울한 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길은 험한 상황을 버티어내는 길고 긴 과정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온 세계는 우리의 편이 아니며 겨우 한 발자국씩 아주 느리게 변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게 되었다. 그는 가만히 불러본다. 지숙이 누나.
짙은 청색 작업복에 사내처럼 상고머리를 깎은 반백 머리의 그녀가 테라스 난간 위에 서있었다. 진오는 깍새도 진기도 할머니도 여기서 만나던 일을 잊어버리고 새삼 놀라서 중얼거렸다.
“아니 누나가 여긴 웬일이우?”
“우리 후배 지부장이 삼백일을 살아 냈다구 그래서 와봤지.”
“누나가 그랬잖우. 칠십 년대의 전태일 선배와 세기가 지난 이천삼 년의 주익이 형의 유서가 여전히 똑같은 한국사회라고.”
“그건 맞잖아?”
이진오는 신금이 할머니에게 물었듯이 누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린 왜 이걸 계속해야 되는 거요?”
지숙이 누나는 그의 옆에 다가와서 쪼그리고 앉는다.
“힘들면 지금이라두 내려가라.”
그는 한참이나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다.
“나보다두 저 아래 동료들이 어렵게 버티어온 오년이 소중해요. 그러구 우리뿐인가? 천만 노동자라구 하잖아.”
“우리를 무더기로 해고한 회사는 어디로 사라졌겠니? 필리핀으로 갔지. 더 싸구, 더 만만하구, 우리보다 더 힘없는 노동자들이 있는 나라를 찾아서 통째루 옮겨간 거야. 거기서는 이제 겨우 시작인데 수십 명이 다치고 죽어 나갔다더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쟁이었어. 우리 가족이 삼대 빨갱이 집안이라는 소릴 들었거든.”
지숙이 누나가 놀라지 않고 이진오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일제 때부터 전쟁까지 겪으면서 우리 집 남자들 모두가 노동자였거든.”
“이북은 지배자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내세워 자칭하는 것이고, 결국은 한마디 말로 충분할 것 같더라.”
지숙이 누나는 열네 살 무렵의 어느 가을날을 얘기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엄마를 돕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작을 떨군 뒤에 공사장을 전전하며 한두 달에 사나흘 집에 다녀오고 먼 지방까지 나다니더니 허리를 다쳤다며 험한 몰골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곤 푼돈이라도 생기면 소주를 마시고 마을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미운 사람 집 근처에 가서 혼자 고함치다가 돌아와 쓰러져 잠들었다. 남들이 모두 거두어간 고구마 밭에 모녀가 함께 찾아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호미로 흙을 파헤치면 한참 만에 미처 캐지 못한 고구마 이삭이 몇 알씩 따라 나왔다. 그렇게 밤이 깊어질 때까지 너른 밭고랑을 파헤쳐서 한 가마 분량을 캤다. 이제 한 끼를 고구마로 때우면 한 달 식량의 절반이 해결된 셈이었다. 모녀가 가마를 앞뒤에서 들다가 끌다가 하면서 걷는데 누군가가 쫓아왔다. 고구마밭 임자네 할머니였다. 그녀는 씨근거리며 뛰어오더니 대뜸 가마니를 손으로 잡고 두 발로 밟고 섰다.
“이거 우리 밭에서 캔 거지? 누가 허락두 없이 캐 가라구 했냐? 낼 우리가 이삭걷이를 하려구 그랬는데.”
그렇지 않아도 낼 아침에 만나 뵈면 말씀을 드리려고 했다, 다른 일거리가 있으시면 우리 모녀가 도와 드리겠다고 엄마가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가마니를 밟고 서서 고집을 부렸다.
“낼 와서 말할 땐 하더라도 이건 두고 가게.”
모녀는 맥이 풀리고 저녁조차 먹지 못하여 터덜터덜 집골목으로 들어섰다. 엄마가 문 앞에서 주저앉더니 꺼이꺼이 울면서 부르짖었다.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
이진오는 그녀가 말하려던 충분한 한마디가 바로 이 말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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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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