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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2화 : 이전에 머물던 만주로 돌아갈까 합니다
『마터 2-10』 연재
지산이와 장산이는 두 살 터울이었고 마치 한쇠 두쇠의 어린 시절 행동거지를 쏙 빼닮아서 이백만에게는 청춘이 돌아온 듯하였다. (2019.11.11)
신금이와 막음이 고모는 출산 전부터 아기의 이름 장산이를 알고 있었다. 신금이가 지산이의 아우가 될 장산이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 같은 어두운 기색이 주위에 감돌며 아가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색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작은 아기를 담은 대나무 광주리가 보였다. 광주리 위에 흰 천이 둘둘 감겨있는 걸 보았다. 아기가 죽겠구나. 그녀는 하도 서러운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 막음이 고모가 산모를 위하여 준비했던 미역국을 끓여 들여오다가 그걸 보게 되었다.
“머야, 왜 방정맞게 울고 그래?”
“아니에요, 대견하고 좋아서 그래요.”
막음이 고모는 자식처럼 스스로가 키운 두쇠 이철은 감옥에 가고 애비도 못 본 아기가 불쌍해서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한여옥이 몸을 풀고 삼칠일 지났을 무렵에 신금이가 아가와 산모를 버드나무집으로 데려왔다. 시아버지 이백만이 건넌방을 비우고 공방에서 침식을 하겠다며 작은 며느리와 손자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큰며느리 신금이에게 여러 번 청하였기 때문이었다. 막음이 고모는 아들이 둘이라 모두 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자기가 두 모자를 돌보겠다고 우겨 보았지만 신금이가 이백만의 간곡한 뜻을 전하자 짐을 싸면서 말했다.
“아이고 우리 오라버니 그노무 고집을 누가 말려? 이제 떡집은 나 혼자 하게 생겼구먼 뭐.”
지산이와 장산이는 두 살 터울이었고 마치 한쇠 두쇠의 어린 시절 행동거지를 쏙 빼닮아서 이백만에게는 청춘이 돌아온 듯하였다. 이백만은 장산이가 백일이 되자 예전의 가난한 살림도 아니라서 조촐하게나마 치르기로 했다. 막음이 고모가 신금이에게 격식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아침에 삼신상을 차리는데 흰밥에 미역국 그리고 백설기에 수수팥떡에 과자며 과일을 올려놓고, 작은 상에 백지를 깔고 흰 쌀과 흰 실타래와 지폐를 얹어 놓았다. 장산이를 안은 한여옥이 상 중앙에 앉고 양쪽 좌우에 막음이 고모와 신금이가 나란히 앉아서 합장 배례하면서 아기의 장수를 기원했다. 백일잔치란 아낙네가 주동이라 이백만은 공방에 앉았다가 제례가 다 끝난 뒤에 안방으로 들어와 가족상에 둘러앉았다. 그때까지는 이철이가 감옥에 들어간 일 빼고는 이백만의 집안은 다른 조선 사람들에 비해서 평온하고 먹고살만한 시절이었다.
철쭉이 피었다가 질 무렵이었으니 오월 말 유월 초쯤이었을 것이다. 지산이와 장산이가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장산이가 먼저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더니 지산이도 곧 동생을 따라서 감기 증상을 보였다. 두 아이가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안방 건넌방에서 함께 앓았고 신금이와 한여옥은 서로 의논해가며 어린 것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아기들이 사흘 동안 열이 나고 얼굴과 가슴에 열꽃이 피어나자 그제야 이게 보통 감기가 아니란 걸 눈치 채게 되었다. 막음이 고모가 달려와서 들여다보고는 어두운 얼굴이 되어 대뜸 말했다.
“머야 고뿔이 아니라 홍역이구먼. 두드러기를 보니 그런 거 같네!”
두 여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산이와 장산이를 데리고 사거리 뒷길에 있는 한의원에게 보이러 갔고 홍역이 틀림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홍역은 예부터 백약이 무효라고 알려져 왔고 죽고살기는 하늘의 뜻이라고 그랬다. 나을 사람은 사흘쯤 고열을 앓고 나면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지고 발끝까지 내려가면 저절로 열이 내리면서 일어났고 죽을 사람은 열꽃이 배 부위에서 맴돌 때에 기침이 심해지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에 온 동네에 어린 것들이 홍역 돌림병으로 여러 명 죽었는데 지산이는 열꽃이 발바닥에까지 번졌다가 일어났고 장산이는 숨을 거두었다. 신금이는 이럴 일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어미 한여옥에게는 물론 막음이 고모에게까지 입도 뻥끗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신금이 눈에는 역귀도 보였다고 한다. 지산이와 장산이가 나란히 고뿔이 들어 열 내고 기침도하기 전이었는데 버드나무집 동네 골목에서 신금이가 고년을 보았다고 한다. 황혼 무렵이라 서향의 골목은 안쪽이 어둡고 바깥쪽으로는 역광이 비춰 눈이 부셨다. 신금이가 장 보러 나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작은 계집아이가 집 앞에 서있었다. 고것은 양 갈래 땋은 머리에 노랑저고리 다홍치마를 입고서 마치 사방치기라도 하듯이 깨금발을 뛰면서 놀고 있었다.
“요년, 왜 남의 집 앞에서 방정맞게 뛰어다녀?”
신금이가 날카롭게 중얼거리자 계집아이는 놀랐는지 동작을 멈추고 오뚝 섰다.
“아주머닌 내가 보여요?”
“그럼 보이다마다. 니까짓게 우리집을 노리는 모양인데 시루 속에 갇히고 싶으냐?”
계집아이가 혀를 낼름 내밀어 보이고는 달아나면서 종알거렸다.
“흥, 벌써 들러서 나왔지.”
그 소리를 듣고 신금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낮잠이 든 사이에 고년이 집안에 들어왔다가 나온 모양이었다. 계집아이는 치맛자락을 팔랑거리며 역광이 비낀 골목 안을 이집 저집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신금이가 무당이나 점쟁이 판수를 찾아다닐 정도는 아닌 개화 여성이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장산이가 숨을 거둔 아침에 신금이는 대문간 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바가지에 냉수를 떠다가 고춧가루를 타서는 문 앞에 이리저리 뿌렸다.
“네끼 이 고얀 년, 썩 물러가거라!”
장산이를 애장 시킨다고 상둣도가에서 한 사내가 왔다. 그는 어린 것에게 배냇저고리 입히고 다시 깨끗한 천으로 싸서 대광주리에 넣고 흰 무명을 둘둘 감아서 멜빵을 메어 등에 지었다. 신금이가 애통해 하는 한여옥을 붙잡고 따라가지 못하게 말리는 동안 이백만과 막음이 고모가 상둣도가 사내를 따라 나섰다. 그들은 어느 공동묘지 모퉁이에 애장을 했다고만 나중에 알려주었다. 한여옥은 장산이를 보내고 한 보름 동안을 시름시름 앓더니 한 여름이 되자 멀리 대전 형무소에 갇힌 이철을 면회하고 돌아왔다. 이철을 면회했던 이야기는 한여옥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철도 말을 꺼내지 않아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신금이의 짐작으로는 그때에 한여옥은 장산이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아이 아버지에게 말해 주었을 것이고 자기는 떠나겠다는 뜻을 전했을 것이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한여옥이 이일철 신금이 부부와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동네에서 제일 큰 쌍성루 중국집에 자리까지 맞춰 두었다는 한여옥의 말에 그들 부부는 무슨 일일까 매우 궁금했다.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면서 여옥은 말을 꺼냈다.
“제가 여염의 아낙네로 살 팔자가 못 되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듯합니다. 지난번 장산이 아버지 면회를 가서 저희들 의논은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려 합니다.”
신금이는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고 속수무책인데도 일단 그녀를 말려보았다.
“서방님이 나오시면 다시 재밌게 살아야지 어디루 간다구 그래?”
한여옥은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이나 저는 한번 들어선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지들한테 진 빚이 너무나 무겁거든요. 저는 이전에 머물던 만주로 돌아갈까 합니다.”
한여옥은 결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곳에선 삶과 죽음이 언제나 분명했지요. 정치가 아니라 총 들고 싸우는 전투였으니까요.”
침묵하고 있던 일철이 물었다.
“제수씨는 만주에 어디 갈 데가 있어요?”
“그전에 알던 사람들의 마을을 찾아가 볼 작정입니다.”
“그게 어딥니까?”
“간도 쪽입니다.”
일철은 말했다.
“두만강 쪽이라면 예전과 달리 일본군의 경비가 삼엄합니다. 일단 압록강 연안으로 가셨다가 만주에서 기차로 이동하는 게 안전할 겁니다. 그런데 고등계에서 제수씨의 이동을 그냥 방관하겠습니까?”
“염치없지만 시아주버님께서 좀 도와주신다면……”
신금이는 어쩐지 그 말에 눈물이 나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고는 일철에게 속삭였다.
“여보 이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저라두 이렇게 했을 테니까요.”
일철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입을 떼었다.
“며칠만 말미를 주시지요. 제가 한번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이일철이 경의선 화물열차를 몰고 두어 차례 왕래한 후에 한여옥이 출발할 날짜가 정해졌다. 신금이는 떡집의 전세금을 빼어 여비를 마련하여 동서에게 쥐어 주었다. 그때까지는 막음이 고모가 한 해 뒤에 만주로 이사를 가게 될 줄은 누구도 모르던 시기였다. 한여옥은 용산역으로 가서 일철의 안내를 받아 그가 배정 받은 화물열차에 몰래 탔다. 일철은 이제 기관사였고 기관조수도 조선인이었다. 만주에서의 전황이 급박해지고 대륙의 전장이 확대되면서 일본인은 관동군에 징집되었고 빈자리에 군 입대가 허용되지 않았던 조선인들로 철도원이 보충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철은 한여옥을 기관차 바로 뒤에 매단 첫 번째 화물차에 태웠다. 그곳에는 대개 철도국 자체의 화물이나 유력인사들의 짐을 실었다. 또한 고참 기관수들은 장거리 구간에서 일호 화물차에 침구까지 마련해 놓고 교대로 잠을 자기도 했던 터였다. 화물차의 행거도어 외에 측면에도 쪽문이 있어서 기관차에서 드나들기도 편했다.
한여옥은 상자로 막아놓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기차는 밤새도록 달렸고 평양에서 기관차가 교체될 때에도 일철은 휴게실로 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신의주에 이르러 하루 낮 동안 비번이었던 일철은 제수를 데리고 구 의주로 갔다.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며칠 전에 수소문하여 약조했던 사공을 만났다. 국경 경비초소를 피할 수 있는 도강은 중국과 조선을 오가는 많은 장사치와 노동자와 밀무역자와 항일 활동가들이 이용하는 길이었고 강이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더욱 도강이 수월했다. 한여옥은 만주에서 가장 안전한 양장 차림이었다. 한복은 눈에 띄었고 중국옷은 어쩐지 조선인에게 어울리지 않았으며 양복이야말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었다. 나룻배에 오르기 전에 한여옥은 이일철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언제 식구들을 다시 만나 뵐지 모르겠군요. 조선이 독립하는 그날이 오면 제가 영등포 집으로 찾아가게 되겠지요. 신금이 형님에게도 인사 전해 주십시오.”
이일철도 허리 숙여 인사를 받고는 말했다.
“장산이 엄마를 우리 모두 기다릴 거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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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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