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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6화 : 어떻습니까? 독서회에 들어오신 소감이
『마터 2-10』 연재
류재익 등의 당 재건파는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백여 명이 검거 되었지만 지하에 많은 남녀 활동가들이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국제당의 활동가들은 류재익 등의 중앙이 도피에 들어가자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이들을 흡수해 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2019.10.21)
최달영 야마시타는 준비해 온 자료들을 등사하여 독서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읽고 나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는 십여 명의 회원들에게 믿을만한 동료 노동자들을 데려오라고 모임 때마다 권유했다. 기계공장에 나가는 오 군이 자기 일터의 조장이라면서 모임에 데려와 소개했다. 조장 장 아무개는 용인으로 오랜 견습 기간을 지낸 발전기 기술공이었고 나이도 서른이 넘은 남자였다. 그런 정도라면 공장에서도 반장 급 대우를 해줄뿐더러 일반 용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말발이 먹히는 고참인 셈이었다.
사실 방우창은 인천으로 도피해 온 뒤에 개항 초창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던 오래된 정미소로 찾아 갔다. 그는 영등포 철도 공작창에서 자기 선반기를 담당했던 기술자여서 정미소 정도의 공장에서는 대번 반장으로 모실 정도였던 것이다. 인천에도 부두 하역 노동자 가운데는 원산 부두 파업을 겪고 이동해 온 태로계의 활동가 몇 명이 있었다. 이들은 일 년이 못되어 각급 공장에 들어가 있던 경성과 강원도 경기도 등지에서 온 활동가들과 연줄이 닿게 되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김형신의 국제선과 닿아서 그들이 발송하는 기관지와 유인물을 받아 보고 있었던 터였다. 이들 중에는 공산당 경성재건파의 선도 있어서 방우창은 이들 양쪽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일꾼이었다. 그는 도피하여 인천에 오자마자 태로계의 좌장인 부두 하역장의 십장 조씨에게 자신의 상황을 보고했다. 도피자에게 가장 좋은 은신처는 결국 일터라는 결론이 나서 그는 인천에 오자마자 취업을 했다. 조씨의 소개로 부두 건너편에 늘어선 가장 오래된 일본인 경영의 정미공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직접 일터로 가서 선반기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할당 받은 기계 부속품 몇 개를 깎아 보였고 일본인 공장장과 기사는 흔쾌히 그에게 전담할 기계를 내주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단골 주점에 모여 인근에서 돌아가는 상황들을 점검하곤 했는데, 하루는 어느 기계공장에서 일하는 장 아무개라는 조장이 자기 밑에 있는 조원 두 사람이 독서회에 나간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보고했다. 당연히 그들은 어떤 선이 들어와 있는지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태로계는 울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이 있었으며 국제당 조직선은 상해에 있었으니 이들은 방향이 다르다 해도 결국 국제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류재익 등의 당 재건파는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백여 명이 검거 되었지만 지하에 많은 남녀 활동가들이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국제당의 활동가들은 류재익 등의 중앙이 도피에 들어가자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이들을 흡수해 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서로의 선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았고 오히려 분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태로계의 좌장 조 십장은 기계공장의 장씨와 방우창에게 새로 생긴 독서회를 파악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장씨가 자기와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조원을 따라 야마시타 정탐조가 공작 중인 독서회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일요일 오후 두시라면 공장 노동자들이 금쪽같이 생각하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가족이 있는 자들은 모처럼 김밥을 싸가지고 월미도 유원지에 소풍도 가고 친척집이나 부모 집을 방문하고, 청춘 남녀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 대신 화사한 계절 옷으로 갈아입고 랑데부를 하고 배구나 축구 시합으로 오후 한나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장 조장을 데려온 직공 오 군이 독서회를 주관하고 있는 최에게 먼저 그를 소개했고 독서회가 시작되기 전에 다시 그를 좌중에 소개했다.
“저희 공장 발전반의 조장으로 있는 장형을 모시고 왔습니다.”
장은 애써 평범하게 한마디 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최는 정탐답게 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흰 무명 반팔 셔츠에 작업복 바지 차림의 그는 평범한 노동자로 보였다. 얼굴은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입은 반쯤 벌린 방심한 표정으로 토론하는 젊은이들을 번갈아 쳐다보곤 했다. 그가 다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미리 내준 ‘콤뮤니스트’ 라는 팸플릿의 일부분을 무릎 위에 내려놓은 채로 그는 차츰 무료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등사된 글씨를 읽지는 않고 대충 들치며 소제목만을 훑어 보는듯했다. 두 시간의 독서회가 끝나고 야마시타 최달영은 처음 온 장씨에게 몇 마디 묻기로 했다. 장씨에게도 그것은 원하던 바였다.
“어떻습니까? 독서회에 들어오신 소감이.”
장 조장도 최달영만큼 노련한 사람이어서 연신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머 무식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공장의 노임이 좀 올랐으면 하는 생각은 하구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야겠지요.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헌데 선생께서는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계신지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오군이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이 분은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상해에서 오셨구요.”
장은 다시 사람 좋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상해에서요. 그러면 이곳 사정은 잘 모르시겠군요.”
최달영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저는 다만 중개인입니다. 상해에서 이곳 노동일꾼들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해서요.”
장은 목소리를 낮추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여긴 위험지역입니다.”
최달영은 자기 패를 좀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신문에 보니 국제당에서 나왔다는 김형신이란 사람이 체포 되었더군요.”
장은 다시 예의 그 헤벌레한 얼굴로 돌아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먹고살기 바빠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삽니다.”
그들의 만남은 대충 그렇게 시작되었다. 야마시타는 독서회가 끝난 다음에 숙소로 돌아가서 정탐 조원들과 일일 평가회를 가졌다. 토론을 마치면서 그는 정리를 했다.
“장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무식하지만 임금이라든가 직장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보통의 고참 노동자일 수 있다. 그에게는 이해관계가 가장 관심 있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편으로 만들기 쉬운 상대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는 공장에 잠입한 활동가로서 우리를 살피기 위해서 왔는지도 모른다. 장씨의 동향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편 장 씨는 활동가 주간 모임에 가서 태로계의 조 십장과 방우창 적색노조 계열의 김근식을 비롯한 다섯 명의 핵심들을 만나서 독서회를 참관했던 인상을 보고했다. 그는 자기가 얻어온 팸플릿을 그들 앞에 펼쳐 보였다.
“내용으로 보아 우리가 가진 콤뮤니스트 3집에 뒤이어 나온 4집입니다.”
방우창이 그것을 들쳐보고는 말했다.
“그건 김형신 동지가 원본을 재출간하라고 당부한 것이니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어떻게 저들이 이 기관지 문건을 가지고 있는지? 국내에서 재출간했다면 경성의 남은 조직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또 분명히 상해에서 왔다면 이것 다음의 새로운 문건이 있어야 할 거요.”
조 십장이 말했다.
“어느 쪽인지 파악이 될 때까지 좀 더 기다려 보십시다.”
야마시타 정탐조의 조원 한 명이 장 씨의 기계공장 부근에 행상을 벌여 두었다. 며칠 안 가서 조원들은 교대로 장의 뒤를 은밀히 미행했다. 다음 독서회 기간이 오기 전에 그들은 장의 동선을 거의 파악하게 되었다. 최달영은 조원들만 남겨 두고 자신은 영등포 본서로 돌아가 이제까지의 정탐 사정을 보고했다. 그리고 야마시타 정탐 조에게 상해로부터의 새로운 자료가 필요하겠다는 당연한 결론이 내려졌다. 경무국에 요청하여 최근에 상해에서 발간된 문건들을 입수했다. 열흘쯤 지나서 최달영은 인천으로 돌아갔다. 보조원들이 새로운 사실 몇 가지를 그에게 보고했다. 장은 예사로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 그 증거로 일이 끝난 뒤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거나 휴일에는 만국공원이나 문학산 축항 월미도 등에서 다른 공원들을 만나 야외독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최달영은 이주 만에 열린 독서회 모임에 나갔고 열한 명의 회원 가운데 장씨도 끼어 앉아 있었다. 최달영은 등사판으로 인쇄된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상해에서 나온 공청의 잡지 일부분이며 콤뮤니스트 5집에 실린 논문과 메이데이 투쟁에 관한 격문,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자는 격문 등이었다. 최달영은 언제나 그랬듯이 문건에 관한 보안지침을 주었다. 격문은 각자 소지해도 좋다. 만약 당국에 발각되면 길에서 주웠다거나 낯선 사람이 주어서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문건들은 일단 집에 가지고 가서 면밀히 학습하고 다음 시간에 와서 반환해야 한다는 것. 역시 발각되면 누군가 집 앞에 던져두고 갔다고 말해야 할 것, 등이었다. 이번 시간에는 격문 두 가지에 대하여 토론하고, 잡지와 기관지의 글들은 집에 가지고 가서 읽은 뒤에 다음 시간에 만나서 학습을 해보자고 최달영이 말했다. 그는 여기서는 최갑식이란 가명으로 통했다. 장 씨는 다음 주에 정기 모임 자리에서 동지들에게 문건 자료들을 내놓으며 말했다.
“최갑식이란 사람이 배를 타고 상해에 다녀온 것이 분명합니다. 내용으로 보아서 이것은 최근 국제당의 문건들입니다.”
조 십장과 김근식은 이들 문건의 내용이 당 조직에서 집필되었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쨌든 현지에서 온 목소리였고 그것은 당의 지침이며 운동의 방향을 큰 선에서 제시하고 있었다. 방우창이 말했다.
“모두가 접선할 필요는 없고 그쪽은 장 동지가 맡아서 포섭해 나가면 되겠습니다.”
하인천 근방의 주점에서 장이 몇몇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조원의 보고로 알게 된 야마시타 최달영은 한 달쯤 후인 팔월 중순경에 그 주점 건너편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만나는 방우창을 확인했다. 그가 작년에 영등포의 마루보시 골목에서 놓쳤던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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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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