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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5화 : 우리가 국제당 노릇을 해야지요
『마터 2-10』 연재
야마시타 최달영은 며칠 전부터 들르던 주점에서 두 사람의 남자 직공들을 점찍고 있었다. 그들은 탁주 한 주전자를 비우고 두 번째의 주전자를 마실 때쯤부터 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소리도 커졌다. (2019. 10. 16)
미야께가 검거된 이후 그의 아내 미야께 히데는 경성제대를 나온 제자들의 도움으로 병목정에서 고서점을 열었다. 그러다가 조선인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명치정에서 ‘거북의 집, 가메야’라는 고서점을 개업하여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출옥 이후 미야께는 아내가 열었던 고서점을 정리하고 1937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부인 히데와 함께 일본에 돌아간 그는 다시는 대학에 복직할 수 없었고 산기슭에서 버섯을 재배하며 살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야 교직에 복귀했다. 그는 여든 두 살의 나이로 죽기 일 년 전까지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생전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장서는 동경의 동북대학에 ‘미야께 문고’라는 이름으로 기증되어 보관 되었다.
최달영의 야마시타 정탐조는 새로운 작전에 들어가 있었다. 경성 일대의 경찰서 고등계는 경성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류재익의 탈출 사건으로 두 달 이상이나 비상근무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는 잡히지 않았다. 공장이 밀집된 영등포 지역은 수만 명의 직공과 이들 주변에 모인 일용 노동자에서 가두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파악되지 않은 유동 인구가 또한 수만 명이었다. 그들은 영등포와 인천이 한 구역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파악했는데 인천에서 직장을 가졌던 사람이 영등포로 옮기거나 그 반대로 영등포의 직공이 인천으로 이직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방직 기계 화학 전기 제분 등과 유사한 공장이 인천에도 그대로 밀집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일본에도 본사가 있는 대기업이었고 대륙과도 연계되어 있었다.
마쓰다 경부가 경무국 회의에 참석했다가 돌아와 새로운 지침을 전달했다. 그것은 지난번에 영등포 서에서 체포한 김형신과 이번에 경성 서대문서에서 체포한 경성제대 교수와 류의 조직원 등을 취조한 결과에 의하면 공산당 재건파와 대륙에서 파견된 국제당의 조직이 통합을 꾀하고 있다는 첩보였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지난번 야마시타 조가 검거했던 여공들의 독서회에서 사용된 문건들을 살펴보더라도 김형신 일파가 들여와 재출판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마쓰다 경부가 말했다.
“국제당의 조직이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것을 그 사건으로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재건파의 수괴인 류는 이들과의 접촉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을 터이다. 국제당과 관련 있는 불온 모임을 사찰해내야 한다.”
“지난번에 놓친 방우창이 혹시 인천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야마시타 조의 조장인 최달영이 말했고 마쓰다가 물었다.
“확실한가?”
“그 자가 영등포에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모리 반장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 도주했다면 경성이나 인천 쪽입니다. 노동자들의 동향을 보면 영등포에서는 이직을 하여도 경성 쪽으로는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산까지는 연결이 됩니다만 그곳은 아무래도 총독부 직영의 철도국이나 그에 관련된 공장이 많아서 즉시 파악할 수 있지요. 빈민지역인 토막촌도 영등포와 인천에 비하면 규모가 적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지역에서는 인천을 살펴봐야 합니다.”
마쓰다 경부가 고개를 끄덕였고 야마시타가 말했다.
“방우창과 안대길이 같은 사건으로 입건되었지요. 안대길이 곧 출감합니다. 그자의 동향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요오시, 인천에 정탐조를 보내기로 하자.”
경부의 말에 모리 반장이 질문했다.
“인천서에 협조 요청을 할까요?”
마쓰다는 대뜸 그에게 힐난조로 말했다.
“이봐, 그들은 방우창의 이름도 모르고 있을 거다. 우리가 차라리 인천 경찰서에서 잡아달라고 부탁을 하지 그러나? 비밀 작전을 해야 한다.”
야마시타가 말했다.
“지난번처럼 잠복근무하겠습니다. 덫을 놓고 미끼를 던지면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국제당 노릇을 해야지요.”
경부와 반장은 즉시 찬성했다. 야마시타는 늘 그랬듯이 세 사람의 형사 보조를 데리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하인천의 방 두 칸짜리 서민 주택을 월세로 얻었다. 본서에서 가져온 자료들은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 팸플릿 등속이었고 대륙에서 발간된 기관지 종류도 있었다. 이들은 격문도 준비했는데 준비해 간 등사기로 백여 장을 찍어냈다. 공장지대의 길에다 함부로 뿌리면 노동자들도 집어 보겠지만 오히려 신고가 들어가 인천의 경찰들을 자극하게 될 것이 염려되었다. 이들은 보름 만에 방직공장의 여공과 기계공장 노동자 그리고 정미소 노동자들의 숙소가 모인 곳이며 이들이 모이는 식당 밥집 술집 등을 파악했다. 그리고 한두 명씩 개별적으로 모여서 냉면이나 국밥 또는 막걸리를 마시는 남녀 젊은 직공들에게 접근했다. 야마시타 최달영은 며칠 전부터 들르던 주점에서 두 사람의 남자 직공들을 점찍고 있었다. 그들은 탁주 한 주전자를 비우고 두 번째의 주전자를 마실 때쯤부터 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소리도 커졌다.
“그 반장 쪽발이 자식을 언젠가 혼내주고 말거야.”
“나두 그 자식에게 두 번이나 따귀를 맞았다구. 개새끼!”
야마시타는 탁자 옆을 지나가는 소년에게 넌지시 일렀다.
“얘 총각아,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 다우.”
소년은 그의 막걸리 사발 앞에 안주가 반 접시 정도 남은 걸 보고 의아해서 되물었다.
“아저씨 안주 많이 남았는데요?”
“아니 얘야, 계산은 내가 할 테니 뒷자리에 갖다 드리라구.”
소년이 잠시 후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돼지고기를 담은 접시를 그쪽 탁자에 갖다 주었다. 식은 빈대떡 두 장을 앞에 놓고 아껴 먹던 두 청년은 어리둥절했다.
“어? 이거 우리 시킨 적 없는데.”
“이쪽 손님께서 보내라구 해서요.”
야마시타는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들은 힐끗 돌아보더니 저희끼리 숙덕였다.
“너 아는 사람이야?”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야마시타가 몸을 젖히고 뒷자리에서 말을 건넸다.
“아니 두 분이 재밌게 얘기를 나누시는데…… 나두 좀 끼어들까 해서 말이우.”
“아 예에, 혼자 오셨군요.”
“혼자 술 먹자니 좀 싱겁고 적적하군요 허허.”
“합석하시지요 하하.”
야마시타가 우선 그들의 마음을 놓게 만든다.
“나는 최라구 합니다. 직업은 배 타는 사람이우.”
“저는 김가구요 이 사람은 오가입니다.”
“우린 둘 다 기계공작소에 다닙니다.”
“호오 기술자들이군요.”
“머 아직 몇 년째 데모도요.”
그들은 이제 한 자리의 다정한 술꾼이 되었다. 고향 얘기도 나오고 아직 미혼이고 요즈음 사는 이야기도 나오고 하는데 야마시타가 말했다.
“나는 배 타고 상해를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기관사 조수요.”
그가 또 다시 술과 안주를 시켰고 두 청년은 이제 거나해졌다.
“아까 잠깐 들으니 반장이 일본 사람인 모양이죠?”
“어디나 윗사람은 왜놈들 아닙니까?”
“배에서두 그렇긴 합니다만.”
“그 자식들 남의 나라에 와서 다 뺏어가면서 주인 노릇 하잖습니까요?”
야마시타는 올커니 하면서 말을 꺼낸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여럿이 의논하고 힘을 합쳐서 항의해야 해결이 됩니다.”
“어떻게 힘을 모아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말을 맞추고 생각을 모아야지.”
야마시타는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술자리가 끝나갈 때쯤에 안주머니에서 격문 한 장을 꺼내어 그들에게 내밀어 준다.
“내가 우연히 이런 걸 주었는데 읽어보니 피가 끓습디다.”
다시 어리둥절한 그들과 주점 앞에서 헤어지면서 야마시타가 말했다.
“우리 배가 며칠 후에 떠난다니 날 만나고프면 낼두 이 집으루 놀러 나오시든지.”
그들은 웃는 얼굴로 헤어진다. 야마시타 조가 숙소에 모여 하루 일과를 서로 보고했다. 세 사람의 조원들은 둘씩 하나씩 나가서 그들 조장이 한 것처럼 격문을 나눠주었고 약속은 하지 않았으나 이제 몇 명이나 모으게 될지 기대를 했다.
야마시타가 이튿날 저녁 주점에 나가서 기다리는데 두 직공 청년이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서슴지 않고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청년들은 주춤주춤 그의 앞에 다가와 앉았다. 다가온 술청 소년에게 탁주 한 주전자와 안주를 시키고 야마시타는 말했다.
“머 어제 그걸 보고 놀라지는 않았어요?”
“왜놈들을 물리치고 독립을 하자는데……”
“노동자가 단결하자는 것두요.”
말하고는 직공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
“형씨는 정말 뱃사람이우?”
그는 빙긋 웃고는 돌려서 말한다.
“상해에서 왔다니까. 거긴 여기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라오. 왜놈들과 싸우자는 조선 젊은이들이 많지.”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야마시타는 그들에게 사실 그는 운동자인데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독서회를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두 청년은 흔쾌히 자기들도 배우고 싶다며 응락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와 노동일을 하면서 세상의 장사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알려주고 그들은 그날도 유쾌하게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야마시타 조가 모집한 독서회 회원 희망자는 우선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숙소 부근에 방 두 칸의 다른 집을 얻어 모임 장소로 쓰기로 했다.
야마시타와 조원 한 사람이 독서회에 나갔고 다른 조원 두 사람은 당분간 그들 모임에 끼우지 않기로 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회원들은 두 배로 늘어났다. 그동안 독서회는 네 번의 모임을 가졌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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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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