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 2-10] 31화 : 니 깡다구로 왜 자살한 거냐?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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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는 우리가 국회를 방문하여 농성에 대한 이유와 해결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하고, 오체투지로 이곳까지 시위하며 기어 올 예정이야.” (2019.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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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진오는 어느 결에 다시 침낭 속이었다. 진기는 아직도 그의 옆에 비스듬히 누워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진오가 그에게 물었다.


 “야 니 깡다구로 왜 자살한 거냐?”


 진기는 피식 웃었다.


 “지난 일은 왜 물어보구 그래. 사는 게 의미가 없어져서 그랬다 왜?”


 “인마 니 꽃사슴하구 애들은 어떡하라구.”


 “내가 곁에 있어두 별루 달라질게 없잖아. 애들두 나처럼 살아가게 될 텐데.”


이진오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애들두 우리처럼 굴뚝에 올라가든지 다른 세상을 만들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될 테지.”


 “내가 바라는 게 너무 많았나부다.”


진기가 좀 풀이 죽어서 중얼거리자 진오도 어쩐지 울컥해져서 말했다.


 “니가 바라는 게 많긴 뭘 많았냐?”


그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진오는 고개를 돌렸고 바람에 간간히 떨리고 있는 비스듬한 텐트 자락이 보일 뿐이었다. 진기는 가버리고 없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단단히 여미어 놓은 텐트의 앞자락 사이로 새어든 빛 때문에 붉은 천의 색이 선명해졌다. 진오는 그때쯤이면 저절로 눈을 떴고 휴대폰에서 식사 당번을 맡은 동료의 진동음이 울릴 때까지 침낭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여덟 시 반에서 아홉 시 사이에 조반을 맡은 동료가 굴뚝 아래 당도한다. 아침 해 뜨는 시각은 그 무렵에 일곱 시 반을 넘어서 사십 분 사십오 분 하는 식으로 늦춰지고 있었다. 가을까지 조반을 폐지하고 있다가 겨울이 오면서 주위에서는 아침 공복이 혹한을 견디기에 매우 불리하다고 하여 다시 동료와 쉼터의 뒷바라지 팀들에게 폐를 끼치기로 하였다.


삭발했던 머리털은 겨울이 되자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제법 자라나 삐죽이며 귓가를 덮기 시작했다. 수염은 작은 공작가위로 대충 자를 수 있었다. 진오는 나름대로 자기 규율을 지키고자 했는데 아무리 농성 중이라 하여도 행색을 폐인처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전날 저녁에 더운 물을 담은 페트병을 식사와 함께 올려주면 그것을 침낭에 묻고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그는 작은 손거울로 가끔씩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확인을 하곤 하였다. 볼이 좀 패이고 여윈 느낌이었지만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다른 계절에 매일 두 세 차례씩 해오던 운동을 이제는 팔굽혀 펴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로 축약해서 점심 이후 오후 시간에 실행하고 있었다. 이 모든 노력들에 의미가 있다고 그는 다짐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 그는 여덟 시에 침낭을 빠져 나와 미지근해진 페트병의 물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아침 기온은 영하 이십 도가 넘었다. 물기를 닦아내고 얼른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다. 팔굽혀펴기를 삼십 번씩 삼 세트를 했고 다리 굽혀 펴기를 또 그만큼 했다. 털모자에 가려진 이마에 땀이 어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덟 시 삼십오 분에 휴대폰의 진동이 우웅 소리를 냈다. 진오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 선배 저예요.”


목소리로 진오는 그가 정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아침 식사당번을 담당하기로 자원했다며 십여 일 전에 말해주었다. 그는 임시직이었지만 부근 공사장에 일거리를 잡았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쉼터에 들러 음식을 받아 그의 농성장에 전해 주면 점심에는 막내 최군이나 때로는 쉼터 살림을 맡은 여성 노동자들이 오기도 했고 저녁에는 늘 그와 같은 또래인 김형이 왔다. 그도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뒷바라지를 하던 것이다. 최후로 남은 해고자 다섯 사람 중에 류 씨는 경기도의 채소농장에 일거리를 잡고 있어서 주말에만 찾아와 동료들과 동행하여 미안함을 달래는 정도였다. 오히려 진오가 그에게 열심히 일하며 버티고 있으라고 격려했다. 정이 굴뚝 아래 도착해서 식사를 올려주기 전에 휴대전화를 통해서 말했다. 


 “낼 모레 이백일인 거 기억하시죠?”


 “응, 어제 김형이 말해줘서 알았네.”


 “이번엔 행사를 좀 할라구 그럽니다.”


 “삼백일 때 크게 하고 이번에두 약식으루 대충 넘어가지.”


진오는 그동안 목격했던 다른 농성자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 년 정도가 지나야 사회에서 작은 여론이 일어나고, 눈치를 살피던 회사 측에서 협상하는 시늉이라도 보이게 되어 있었다. 물론 협상이 그맘때에 타결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적어도 뭐래? 하는 식으로 자본 측에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사실 싸움의 시작은 밑에서나 위에서도 그때부터 겨우 첫걸음을 떼게 되어 있었다. 


 “선배는 그냥 우리에게 손이나 흔들면 되구요, 노조와 각 사회단체 분들이 밑에서 뭘 좀 할 겁니다.”


 “추운데 고생은 너무 하지 말라구 그래.”


그가 어제 비운 용기들을 배낭에 넣어 내려주었고 밑에서는 아침 식사가 담긴 보온 용기와 식수를 올려주었다.


오후 다섯 시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여 삼십 분쯤 지나면 주위가 완전히 캄캄해졌고 가로등과 한강철교 위의 조명은 진작부터 켜져 있었다. 저녁밥이 올라오는 시각은 여섯 시로 정해져 있었지만 대개는 여섯 시에서 여섯 시 반쯤까지 들락날락 했다. 때가 퇴근 무렵이라 쉼터에서 여기까지 오는 교통이 제법 혼잡하기 때문이었다. 김형은 음식을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전철을 타고 오든지 쉼터를 방문한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왔다. 김이 도착한 것은 여섯 시 사십 분쯤이었다. 그는 도착해서 의경들이 식사 배낭을 점검하는 동안 두 손을 입에 대고 위에다 외쳤다.


 “어이, 오늘두 별일 없었지?”


 “그래 수고 많아.”


진오도 상반신을 난간에 걸치고 마주 외쳐준다. 도르래를 통과한 밧줄에 점심 때 올라온 배낭을 내려주면 아래에서 김이 메고 온 배낭으로 바꿔 달아맸다. 저녁때에는 더욱 묵직한 게 식사와 책이며 가끔씩 랜턴용 배터리와 더운물이 가득한 페트병 두 세 개가 올라온다. 그럴 때에는 두세 번에 나누어서 올려주기도 한다. 짐이 다 올라오자 휴대전화의 진동음이 울리고 김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레는 우리가 국회를 방문하여 농성에 대한 이유와 해결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하고, 오체투지로 이곳까지 시위하며 기어 올 예정이야.”


 “문화제 한다면서?”


 “시민사회 단체 사람들 모여서 문화제를 열고 우리는 기어서 여기 도착해. 그러구선 자네를 만나러 굴뚝 위로 오르게 될지도 몰라.”


 “너무 먼 거리 아닌가. 날씨도 추운데.”


 “뭘 그래 삼백 일째가 되면 우리 전부 청와대까지 기어갈 생각인데.” 


 “하여튼 사람들 너무 고생시키지 말어.”


진오가 그렇게 말했으나 김은 오히려 진오를 나무랐다. 


 “사람이 물러 터졌구만. 회사측에서는 아직도 콧방귀도 안 뀌는데. 자넨 그냥 거기서 버티면서 밥 잘 먹구 잘 싸구 지내면 되는 거야. 싸움은 우리가 해낼 테니.”


김이 물러가고 진오는 텐트 안으로 들어와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락을 잘 여미어 놓고 저녁밥을 먹는다. 보온 도시락 속의 밥이 아직 따뜻했고 국은 금방 식기 시작해서 굳은 기름기가 입술에 붙는다. 갓 담근 김장김치의 속잎이 고소하다. 가끔씩 양념에 버무려진 생굴이 씹힌다. 그는 따로 싸 보낸 김치 속을 밥 위에 듬뿍 얹어 비빈다. 아, 참기름 몇 방울이 있었으면. 밤에 자다 일어나 할머니의 부엌을 뒤지면 이맘때 무생채가 가득 담긴 보시기가 있었다. 가마솥을 열면 잔불에 아직도 뜨거운 물이 있고 그 안에 담아놓은 밥 한 그릇이 있다. 밥과 무생채를 양푼에 쏟아 붓고 고추장 한 숟가락 얹고 들기름 뿌려서 비비면 누구라도 함께 먹자고 두리번거리며 부를 기세가 된다.

 

그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용기를 챙겨 넣고 물도 마신 뒤에 코가 시릴 정도로 매운바람이 부는 난간에 서서 잠시 도심지의 먼 불빛을 바라보았다. 좋은 계절에는 노래도 가끔씩 불렀었다. 그는 텐트 앞 난간에 늘어세운 이름 쓴 페트병들 중에 금이를 집어 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소녀처럼 귀엽고 예쁜 이름이 마치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소꿉장난을 하던 이웃집 아이 같은 데 할머니의 이름을 동무처럼 성도 붙이지 않고 적어 놓았구나. 그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할머니는 아는 것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고 이상한 옛날 노래도 여러 곡을 진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가 가끔씩 할머니에게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내도 직장 동료들도 배를 잡고 웃거나 그거 어느 태곳적 노래냐고 신기해하던 것이다. 그는 시집장가 노래, 약과노래, 한 알 때 두알 때, 심지어는 인터내셔널까지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신금이 할머니에게 인터내셔녈은 누가 가르쳐주었냐고 물으니 이철이 시동생에게서 배웠고 할아버지도 네 아버지도 할 줄 안다고 말했다. 진오는 랜턴을 켜놓고 텐트 안에 누워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까딱까딱 상투 끝 애기 새서방
 왈낭절낭 말 타고 장가가누나
 우리우리 다 같이 놀리워줄가
 그래그래 그러자 놀리워주자
 새서방 망태 꼴망태 의주벙거지 날라리
 새서방 망태 꼴망태 의주벙거지 날라리
 
 장독 같은 시악씨 늙은 시악씨
 가마 타고 눈감고 시집가누나
 우리우리 다 같이 놀리워줄까
 그래그래 그러자 놀리워주자
 색시맥시 맥맥시 언덕 아래 구럭시
 색시 맥시 맥맥시 언덕 아래 구럭시
 
진오는 구럭시이∼하면서 끝 소절을 길게 끌며 목청을 높인 채 끝을 낸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신금이가 그의 맞은편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장단을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건너 마을 잔칫날 구경 갔다가, 약과 약과 한 조각 얻어 가지고, 엄마하고 나하고 먹으렸더니, 빌어먹을 개한테 그만 떼웠지.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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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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