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시간

괴로운 열매는 그것대로 거두고 새 씨앗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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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나는 오늘 기대하는 하루, 기대하는 칠월, 기대하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2019.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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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 있는지 몰랐다. 내가 뿌린 씨앗을 생각해보게 된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 정리가 필요할 때 걷고, 반대로 아무 생각 하고 싶지 않을 때도 걷는다. 이유 없이 걷고 이유를 만들어 걷는다. 나는 자주 이것을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로 선택하는데, ‘몸이 이동하고 있을 뿐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걷기가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걷기를 통해 끈덕지게 달라붙는 무겁고도 비 생산적인 생각들을 박박 긁어 떼어내고는 한다. 다리가 알아서 마음껏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동안 생각의 때가 한 겹 두 겹 벗겨진다.

 

아픈 곳이 늘었다. 언제나처럼 걷다가 불편함을 느낀 순간에는 아차 움찔했다. 한편으로 당황했지만 생각해보면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개개의 고통은 짧고 나름 귀여운 맛이 있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매번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하필 나는 미련하게도 '버틸 때까지 버티는 인간’이다. 버티는 사이 통증 마일리지는 차곡차곡 쌓여 병원 행 티켓 정도는 충분히 나올 지경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안 아픈 곳이 없게 되니 더는 안되겠다 싶었다.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몸이 비뚤어져 있다고 했다. 당연히 예상했던 바라 덤덤했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어디 한군데는 틀어져 있을 테니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골반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났고 다리는 한쪽이 짧고 목과 어깨는 심하게 뭉쳐있다. 체지방은 넘치고 근육은 부실하다. 어라 이렇게 쓰면서 보니 이거 점쟁이의 사과나무같기도 한데, 무튼 전문적인 것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이러나저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뚤어진 채로 몸을 계속 쓰니 몸은 점점 더 비뚤어지고 속도 틀어지고 마음도 삐뚤어 고약해 지고(이건 아닌가). “운동을 안 하니까 체력이 말이 아니네 아하하하.”했지만 웃을 시간에 움직여야 했다. 방심은 금물인 것을, 한치 앞을 몰랐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의 소리를 적극 수용하여 무위의 생활을 해온 것이 벌써 얼마인가.


그간의 나 자신을 반성하며, 그러나 무위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으니 숨쉬기 외에 간단하게 몸을 쓰는 시간을 일과에 넣는다. 우선 30분, 한 시간으로 시작해본다. 틈틈이 신경 써서 몸을 일으키고 움직인다. 여전히 자주 많이 걷지만 자세에 더 주의하기로 한다. 어깨 등 허리 골반 무릎, 하나씩 점검하고 보니 웬걸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세다. 괜찮다. 차차 나아지겠지. 뿌려온 씨앗의 괴로운 열매는 그것대로 거두고 새 씨앗을 준비한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가운데는 외적인 요인도 많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뿌려놓은 태도의 씨앗들 때문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들 중 어떤 열매는 위에서 말한 ‘베아티투도’처럼 기쁨과 행복으로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어떤 열매는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오기도 할 겁니다. 그때 우리는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제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뿌린 씨앗을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그때 시간은 진정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 될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겪는 모든 일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재판관으로 어떤 시간을 맞이하고 싶은가요?
-한동일,   『라틴어 수업』  128-129쪽

 

가장 달라진 것은 한 달 후 무언가 달라져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이 일들은 마이너스가 된 것을 겨우 다시 제로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이 될 테지만 말이다. 작든 크든 상관 없이 기대라는 것은 확실히 사람을 바꾼다.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데도, 명확하게 보장되는 것이 없는데도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이것이 우리가 갖는 특별한 기분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고맙게도 나는 오늘 기대하는 하루, 기대하는 칠월, 기대하는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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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형욱(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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