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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7화 : 우리 식구가 될 사람 맞네 그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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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날짜를 잡아 사흘 먼저 신금이가 김포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사실을 아뢰도록 하고, 이백만과 이일철이 찾아가 청혼을 하는 순서를 정하였다. (2019.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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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금이는 얼떨결에 보따리와 가방을 꾸려가지고 그녀를 따라 나섰는데 거리에 나오니 일행으로 따라왔던 몸집 큰 아낙네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따라오지 않는가 하여 금이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고 고모가 그런 눈치를 채고 물었다.


 “머 저 집에 방귀라두 뀌어놓구 나왔남? 왜 자꾸 돌아보고 그래?” 


 “같이 오셨던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나 해서요.”


 막음이 고모는 걸음을 멈추었다.


 “같이 오다니 내가?”


 “예, 키 크고 뚱뚱한 분이든데……”


고모는 두 손바닥을 찰싹 치고는 탄식했다.


 “올케를 본 모양이네. 맞어! 우리 식구가 될 사람 맞네 그려.”


하고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금이에게 물었다. 


 “자네 원래부터 그런 이들을 보고 그랬나?”


사실 그녀는 그이가 헛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발설하고는 금방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늘 그런 내색은 어디 가서 하지도 말라고 하도 많이 주의를 받아서 웬만한 상대가 아니고는 아는 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치장에서야 상대가 만만한 소녀들이었으니 그랬다 치고 앞에 서있는 사람은 서방님짜리의 고모가 되시는 분이 아니던가. 


 “경우에 따라서 틀려요. 오늘 일은 유난하네요.”


신금이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갈 심산이었다. 다행이 고모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던 길을 가면서 말했다.


 “그이가 일철이 이철이 엄마 되는 이여. 집안 대소사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쓱 나타나군 하지. 걔들이 보통학교 다닐 때 올케가 죽어서 내가 오라버니 집에 가서 그 애들을 키웠잖아. 이철이는 사람이 건성건성 무심해서 지 엄마가 와도 못 보지만 일철이는 자상하고 정이 많아 엄마를 가끔씩 보는 모양이더만.”


막음이 고모는 올케가 홍수 때에 활약한 이야기나 언젠가 일철이가 죽은 엄마에게서 떡을 얻어먹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해 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기 때문이다.아무튼 신금이는 막음이 고모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일철의 아내감이 아니라면 고모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안댁이 백주 대낮에 며느리 될 아이에게 보였겠는가. 이막음은 샛말의 집으로 걷다가 다시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글쎄 나두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한데 내가 우리 집 아저씨 만난 건 순전히 올케 때문이라구.”


하면서 그녀는 전날 주안댁이 와서 애들 떡해 주라고 절구에 쌀을 찧고 있던 일이며, 이튿날 일어났더니 올케가 또 나타나서 대낮에 어디 좀 가자고 하여 집수리하는 일터에서 남편 될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사실대로 금이에게 해주었다. 신금이는 절대로 놀라거나 어처구니없다고 하지 않았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막음이 고모가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이건 일철이 하구 나밖에 모르는 비밀이야. 이제 자네가 알게 되었으니 우리 셋이 한통속이 되었구먼 깔깔.”


금이는 오늘은 어째서 일철의 어머니가 고모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오로지 자기와 시어머니짜리의 첫 대면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금이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는 이일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눈에 뭐가 씌워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샛말 강목수의 집에 갔더니 남정네들은 모두 일하러 나갔고 두 아이도 학교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집은 조그마한 삼 칸 한옥이었는데 마당도 넓고 가운데 마루와 방 앞의 툇마루가 윤이 반들거렸다. 이막음의 살림솜씨가 빈틈이 없어 보였다. 원래 초가집이었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남편이 큰 맘 먹고 기와를 얹었다고 한다. 막음이 고모는 금이의 짐을 빼앗듯이 들어다 건넌방 옆에 달린 조그만 격자 방문을 열고 던져 넣었다. 


 “여기가 자네 방이여.”


그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는 잡동사니 목공 도구들을 넣어두는 방이었는데 며칠 전에 일철이 이철이가 와서 깨끗이 정리하고 도배까지 했다고 한다. 신금이는 방에 들어가 앉아 이리저리 새로 한지를 바른 벽과 창호를 둘러보고 아마도 그들 아버지의 공방에서 집어온 듯한 백동 장식이 붙은 반닫이를 가만히 열어 보기도 했다. 옆의 구석에는 고모가 얌전히 개어놓은 요 이불 위에 수놓은 무명 보가 씌워져 있다. 새로 창호지를 바른 격자 방문 가운데에는 손바닥만한 직사각형의 유리를 붙여 놓아서 눈을 갖다 대면 마당과 대문 쪽이 한눈에 보였다. 금이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깥을 내다보는 시늉을 하자 막음이 고모가 말했다.


 “우리 한쇠 일철이가 얼마나 자상하고 꼼꼼한지 그 유리를 집에서부터 들고 와서 종이도 두 겹을 대어 꼼꼼히 붙였다구. 자네가 갑갑할 거라구 말이야.”


신금이는 또한 창문 세 군데에 노란 은행나무 잎이 종이 속에 붙여져 있는 걸 보았다. 겹 종이 속에 붙어있는 은행잎은 햇빛을 받아 노란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도 아마 일철의 솜씨였을 것이다. 방직공장에서 이직을 전제로 한 권고사직 형식이어서 신금이는 이주일쯤 막음이 고모네서 머물며 퇴직 처리 등 생활정리를 하였다. 일철은 먼저 신금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아버지 이백만에게 인사를 드리고 두 사람의 혼인 의사를 밝혔고, 이백만은 두 사람을 마주 보고 있던 자리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더니 눈물을 닦았다. 


 “에미도 없이 내가 뭘 한 게 있어야지. 거저 키운 셈이구나. 하여튼 탈 없이 학교도 마치고 당연히 직장도 잡을 것이니 내야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이게 다 니들 복이니라.” 


혼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날짜를 잡아 사흘 먼저 신금이가 김포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사실을 아뢰도록 하고, 이백만과 이일철이 찾아가 청혼을 하는 순서를 정하였다.


때는 초겨울이었지만 그날따라 날씨도 맑았고 바람도 그쳤다. 썰물 때를 맞추어 염창나루에서 배를 타고 순식간에 김포에 당도하여 처가에서 점심을 먹기 좋은 시각이 되었다. 나룻터에 내리자마자 금이의 막내오라비가 나와서 기다리다가 일철의 교복 행색을 보고 말을 붙여 마을까지 안내를 받았다. 집 마당에 들어서니 금이의 양친부모와 맏오라버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맞았다. 금이네 아버지 어머니는 이일철의 훤칠한 키와 교복 교모에 망토를 걸친 학생 차림새를 보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딸에게서 미리 듣기는 했어도 그만하면 썩 훌륭한 신랑감이던 것이다.


혼인식은 일철이 학교를 졸업하는 이월로 정했고 장소는 영등포 철도관사의 공회당에서 올리기로 하였다. 주례는 이일철의 보통학교 오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조선인 교사 최모 선생이 나서주었다. 그는 연이어 아우 이철의 담임도 맡은 적이 있어서 이백만과도 안면이 있었다. 사범학교를 나온 조용하고 얌전한 중년 교사였는데 그는 나중에 이철이 수배되어 곤경에 처했을 때 그의 시골집에 한동안 숨겨주기도 했다. 일철은 그를 늘 존경하고 따랐으며 가끔씩 찾아가 의논도 하는 사이였다. 신금이는 최 선생의 죽음이 일철이 북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도 말해왔다.   


신금이는 결혼식 당일의 기억을 말할 적마다 세세한 부분까지 늘어놓을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몇 가지의 일들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좋은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아끼는 것들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구식혼례야 시골에서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 댕기며 수십 번을 보았지. 일가친척에 동네 사람들 하얗게 모아 놓구 차례 지내듯 음식 차려놓고 궁둥방아 찧으며 맞절하고 또 절하고 혼례주 마시고. 하루 종일 눈감고 소경 노릇하며 벌서지. 근데 우리는 개화 혼인식이 좋더라. 딴따라라 풍금 소리에 발맞추어 입장하고 주례가 성혼 선언하면 신랑신부 팔짱 끼고 퇴장하는 게 끝이야.”


무엇보다도 사진을 찍는 게 특별한 일이었다. 식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가 다시 입장하여 단둘이서 그리고 양가 부모님 모시고 찍고 나서 친척들이며 친구들과 더불어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때만 해도 다리가 달린 사진기를 앞에 놓고 사진사가 무슨 붉은 안감을 댄 검정 보자기를 카메라 위에 둘러 씌우고는 제 머리를 그 안에 들이밀고 한참이나 뭔가 조정을 하는 꼴이 매우 지루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였더란다. 그러기를 또한 몇 분간 하고서는 드디어 머리를 내밀고 줄이 달린 작은 공을 손아귀에 쥐고 다른 손에는 넓적한 판때기를 쳐들고 자아 웃으세요, 라든가 모두 앞을 보세요, 라고 말하고는 또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사진사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 싶을 때에 판때기의 마그네슘을 터뜨리며 동시에 공을 누르는 식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하얀 빛이 번쩍! 하면서 사진이 찍히는데 모두들 아이쿠 눈을 감아버렸는데 어쩌나 싶은데도 나중에 사진이 나온 걸 보면 대충 굳어진 얼굴이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도 간혹 눈을 감거나 게슴츠레하게 나온 사람이 있거나 놀란 토끼눈을 말똥히 뜨고 있기도 한다.


신금이는 젤 먼저 양가 부모님들과 사진을 찍을 때에 앞자리에 버젓이 앉아있는 주안댁을 보았다. 그녀는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었다. 신부 금이는 양친부모가 섰는데 신랑 일철에게는 편부 이백만뿐이라 처음부터 누이동생 막음이 고모가 엄마 대신 역할을 했던지라 신랑 옆에 나란히 서있다. 그런데 신금이의 눈에는 주안댁이 앞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막음이 고모 옆에 가서 서는 게 보였다. 그녀는 일가친척들 차례가 되어서도 물러가지 않고 그대로 신랑의 곁에 붙어 있었다. 천만이 십만이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부부와 그 자식들까지 나란히 섰는데 그때까지 주안댁은 거기 서있었다. 그렇지만 물론 나중에 나온 사진에는 보이지 않았다. 식이 다 끝나고 이일철 부부는 이튿날 철도국 후생부의 선처로 온양온천 철도여관에 갔는데 방에 들어가는 순간 태어나지도 않은 지산이의 갓난아기 모습을 보았다는 신금이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신랑 이일철이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하객들 가운데서 보았다고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말을 맞추어 보면 막음이 고모도 앞자리의 올케를 보고 있었다고 그랬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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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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