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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애서가의 고백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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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는 입장에서는 까다롭고 지난한 작업이었으나 책이라는 존재의 물성만큼이나 이 책도 매력적이다. 사실은 은근히 까다로운 존재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 사람이다. (201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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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에는 책과, 독서하는 사람을 담은 여러 그림이 나온다. 물론 그림만큼이나 여러 작가와 화가가 등장한다. 이 책은 예술과 책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훑으면서 예술과 책, 화가와 문인, 독서와 인생의 관계를 상하좌우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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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술가들은 자주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런 그림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든다. ‘예술가 자신은 책을 즐겨 읽었을까?’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다. 중세의 예술가 마사초는 책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뒤러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한편 루벤스는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는 데 공을 들였다. 일례로 어떤 귀족이 루벤스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다짜고짜 ‘라틴어’로 질문을 던졌는데, 이에 루벤스는 유창한 라틴어로 막힘없이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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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경우 성경을 매우 꼼꼼히 읽었던 것 같고 고대 신화에 대해서도 해박했던 것 같지만 그 밖의 책에 대해서는 어땠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텍스트 자체에 대해 매우 경건한 태도를 보였음은 확실하다. 〈예언자 안나〉를 비롯하여 나이 지긋한 여성이 성경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몇 점이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나는 신약의 『루카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다. 일찍이 과부가 되었던 그녀는 여든넷이 되도록 성전에서 단식을 거듭하며 기도했는데, 아기 예수를 처음 보고는 메시아가 도래했다고 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성녀를 그렸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빛이 책장을 밝히는 가운데, 당장이라도 책장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눈과 손으로 글자를 좇고 있다.(본문 124쪽)

 

한편 열심히 학문에 매진한 예술가들에게도 나름대로 애로가 있었다. 뒤러는 라틴어를 읽을 수는 있었지만 쓸 수는 없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라틴어를 공부했지만 시원치 않았고, 그리스어는 아예 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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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인물이지만 스스로는 실질적인 방향성을 지닌 유형에 가까웠다. 그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관념의 유희를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피렌체의 메디치 궁정에서는 식자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알레고리와 이론의 향연이 유행했는데, 레오나르도는 여기에 끼지 못했다. 메디치 궁정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는 레오나르도보다 나이가 일곱 살 많은 산드로 보티첼리였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궁정이 원하는 온갖 암호들을 그림에 담았다. 그 결과 오늘날 보티첼리의 그림은 아름답기는 한데 의미를 좇기 어려운 그림으로 남은 반면에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의미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고 뉘앙스는 매우 풍성하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만 예술가가 책을 많이 읽는 게 과연 그의 인생과 예술에 도움이 될까? 현대미술의 방향을 확 바꿔 놓은 마르셀 뒤샹의 독서 수준은 당시 프랑스 중등 교육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은 책을 안 읽는다고 했다. 우아하고 절충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 보여 준 앙리 마티스는 알아주는 독서인이었지만, 야성적이고 전복적이었던 파블로 피카소는 책이라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카소가 예술과 시대에 끼친 영향은 상식에 가깝다. 

 

화가만이 아니다. 수전 손택은 『우울한 열정』에서 세기의 지성으로 유명한 롤랑 바르트가 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했다. 장정일 역시  『독서일기』  에서 전설적인 문학 평론가 김현이 쓴 『행복한 책읽기』를 다루면서, 김현이 증정을 받은 책만 읽은 것 같다고 썼다. 바르트와 김현의 이름만으로도 경도되는 수많은 애서가들의 뒤통수를 치는 말이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의 저자는 둘이다. 템스 앤드 허드슨의 편집장을 지낸 제이미 캄플린은 중세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의 독서의 역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수집했을 것이고, 마리아 라나우로는 거기에 맞는 그림을 찾고 관련 사항을 정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독서의 역사와 조형예술, 그리고 그림에 대한 통찰을 전개해 나간다. 옮기는 입장에서는 까다롭고 지난한 작업이었으나 책이라는 존재의 물성만큼이나 이 책도 매력적이다. 사실은 은근히 까다로운 존재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 사람이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제이미 캄플린, 마리아 라나우로 공저/이연식 역 | 시공아트
중세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책의 역사, 각각의 주제에 맞는 그림,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에 탐독할 것이다. 디지털의 시대에도 변치 않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 책을 삶의 중심에 놓는 이들은 진정한 애서가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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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연식(번역가)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제이미 캄플린>,<마리아 라나우로> 공저/<이연식> 역 26,600원(5% + 2%)

책으로 만들어진 우리 삶의 모든 순간 그림에 담긴 책의 뒷이야기 그림과 책은 모든 예술을 통틀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다. 따라서 그림에 여러 책이, 책에 여러 그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저자는 책과 그림이 유기적인 관계를 뛰어넘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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