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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답을 찾아서

『정상성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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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정상성은 어제의 정상성과는 다르다는 메시지와 내일을 위한 친환경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2019. 02. 12)

정상성의 종말 사진.jpeg

 


2006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교 친구 한 명이 당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보러 가자고 했다. 당시 나는 환경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영화는 순식간에 스크린에서 내려간다고! 당장 보러 가야 해!”라는 친구의 거센 재촉과 영화가 재미없으면 밥을 사겠다는 달콤한 공약에 못 이겨 영화를 보러 갔다.

 

좌석에 비딱하니 앉아 팝콘과 콜라를 먹고 마시면서 앨 고어의 웃기지도 않은 미국식 농담을 한 귀로 흘리는 동시에 저녁으로 뭘 사달라고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눈앞에서 두께가 200미터도 넘을 남극의 빙하가 희뿌연 눈먼지를 일으키며 산산이 조각나 부서져 내리는 것이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똑같은 일이 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북극은 말할 것도 없고, 북미와 남미, 그린란드에 있는 빙하는 물론 킬리만자로산의 만년설도 예외 없이 무너져 내렸다.


충격이었다. 물론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북극과 남극이 실온에 꺼내놓은 냉장고 얼음이 녹듯이 서서히 (그리고 얌전히) 녹는 줄로만 알았지, 그토록 거대한 빙하가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장면 이후로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 문제에 ‘지적인’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난데없이 웬 환경서를 한 권 번역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고민했다. ‘환경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과연 이 책을 번역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책을 검토해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이 걱정은 금방 해결되었다. 『정상성의 종말-기후 대재앙 시나리오』 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심도 있게 다루는 책이었기에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번역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문은 곧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불편한 진실〉을 보며 그토록 큰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북극의 눈물〉을 보며 물에 빠져 오갈 곳 없이 허우적대는 북극곰의 모습에 슬퍼했으면서도, 그리고 〈아마존의 눈물〉을 보며 산 채로 불타오르고 잿더미가 되어 쓰러지는 나무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했으면서도, 나는 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일까? 기후변화 문제에 관한 내 지적인 관심은 어째서 적극적인 행동이나 참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일까? 나아가 왜 이런 불편한 의문이 들 때마다 고작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쓰레기를 (적당히) 분류해서 배출하고, 카페에서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이용하는 정도로 지구를 위해 ‘할 만큼 했다’는 변명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라면  『정상성의 종말』 을 읽고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경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책의 상당 부분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환경서나 다큐멘터리가 파괴되는 자연과 죽어가는 생명들, 그리고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탐욕스러운 세력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로 보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이 책의 저자 마크 샤피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후변화가 불러올 경제적 손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그 손실이 우리 모두의 실생활에 끼치는 악영향을 보여줌으로써 감성뿐만 아니라 이성에도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여름철을 대표하는 수입 과일인 체리와 인류의 오랜 친구인 포도의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여태까지 기후변화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체리나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각심을 품을 만한 내용이다. 2장과 4장은 가솔린을 비롯한 화석연료에 관한 내용인데,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우리의 탄소발자국이 얼마나 큰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탄소발자국의 크기를 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3장이나 5장에서는 이제까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비난 받아왔던 브라질이나 중국,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이 사실은 선진국이 소비할 제품을 대신 생산하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단순히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닌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책 전체에 걸쳐 내일의 정상성은 어제의 정상성과는 다르다는 메시지와 내일을 위한 친환경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파리 기후변화회의가 변화를 위한 포문을 연 커다란 사건이며, 인류는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저자의 전망이 틀렸다고 볼 수 있겠다(누군들 트럼프라는 특이점의 등장을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미국에서 ‘가장 붉은’ 주(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이자 전 세계 화석연료 산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에서조차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텍사스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보수적인 도시인 조지타운이, 2018년 여름에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만을 쓰는 도시가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에너지라는 경제적 유인 때문이었다.


근본적 변화는 이성과 감성이 만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한다. 경제적 유인이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우리 감성에 호소하는 고통받는 지구의 목소리에 경제적 유인이 더해졌을 때 얼마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내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윤리적 의무에 더할 경제적 유인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우리 모두 장기적으로는 샤피로 씨의 전망처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정상성의 종말마크 샤피로 저/김부민 역 | 알마
탄소의 숨겨진 비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지역과 어떻게든 그 문제에 대처하려는 지역을 오가며 정치, 경제 및 환경 분야에 일어나는 변화를 끈질기게 추적, 탐구하여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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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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