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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왜 저래? 의문이 생긴다면

『내가 우울한 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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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야”라고 하기 전에 먼저 어떤 이야이긴지 한 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여기에 딱 떨어지는 책이 한 권이 출간되었다. (2019.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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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과학기술과 더불어 문명의 발달은 삶을 매우 쾌적하게 만들었다. 과거와 달리 방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지난 세대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이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게 익숙한 세대라고 자부할 만하다. 그런데 여전히 비합리적인 것에 끌리고,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판단을 반복한다. 

 

살을 빼야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하루 종일 절식을 하다, 늦은 저녁 TV에서 먹방을 보다 보면 배달 앱을 켜서 야식을 시킨다. 똑똑한 사람도 사랑을 할 때에는 바보가 된다. 더욱이 연애할 때와 결혼을 앞두고는 파트너를 선택하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십 년간 중요한 결정을 매일 매일 하면서 회사를 키운 대기업 총수가 능력이 모자라는 큰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서 몇 년 만에 회사가 망가져버린 일도 있다.

이런 비합리성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돌이켜보면 이를 설명해보려고 심리학, 철학, 종교가 학문으로 발달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가 더 얹어졌다. 바로 진화론이다. 아무리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종족이라고 해도, 그 뿌리를 캐 올라가면 침팬지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고, 거기서부터 쌓인 여러가지 요소들이 몸과 마음 깊숙이 남아있다 여전히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솔깃해지는 이야기다. 물론 바로 저항감이 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는 우리 조상 덕분?

 

“이건 아니야”라고 하기 전에 먼저 어떤 이야이긴지 한 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여기에 딱 떨어지는 책이 한 권이 출간되었다. 박한선의  내가 우울한 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때문이야』  다. 저자 박한선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서울대학교에서 신경인류학 박사과정을 전공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환자를 직접 경험하였고, 의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연구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신경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경인류학, 생소한 학문이다. 저자는 이를 신경생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정신의학, 집단유전학, 인지과학, 민족지학등을 총망라한 학문이며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적응, 뇌와 마음의 작동에 대해 알려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류학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솔직히 이 모든 학문을 다 때려 박으면 설명하지 못할 게 없을 거 같아 신뢰가 가면서 한 편으로 설렁탕이면 설렁탕, 냉면이면 냉면 한 가지만 팔아야 제대로 된 식당인데 마치 이건 분식집 식단표 같다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저자는 다양한 인간행동을 신경인류학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식욕과 비만이다. 아침마다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결심하면서 먹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기 일쑤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에게 먹을 것이 풍족해진 것은 겨우 100년 남짓, 그보다 훨씬 긴 99.9%의 시간 동안 인간은 굶주림과 싸워왔다. 그 덕분에 달고 기름진 것을 매우 좋아하도록 유전자에 각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달거나 기름진 음식은 모두 양질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진짜 맛있다는 미학적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먹어보면 단위 무게에 비해서 많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어서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라는 신호를 갖고 있는 덕분이다.

 

두 번째는 절약 유전자 가설이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나면 행여 에너지가 남으면 그걸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다음 음식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그걸 잘 저장하도록 세팅해 놓았다. 칼로리 잉여가 있으면 지방으로 저장을 하는 것이다. 마치 곰이 가을에 열심히 먹어서 지방으로 축적을 하고 나서 겨울잠을 자러 가듯, 인간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은 에너지를 다 사용하지 않고 절약하고 잉여를 어떻게든 만들어 지방을 만든다.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을 빼려고 하면 잘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을 적게 먹어도 살이 안 빠지는 건, 스트레스 상황을 원시인일 때 굶주림이 지속되는 겨울 시즌과 동일한 위기 상태로 인식한 덕분이다. 적게 먹어도 지방을 만드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먹방에 눈이 가고, 금요일이 되면 곱창이 당기는 이유도 신경인류학적으로 설명한다. 쾌락의 시대에 음식을 먹어서 얻는 값싼 쾌락이나, 일이나 공부를 통한 달성하기 어려운 성취, 모두 뇌의 입장에서는 보상중추의 자극이 일어난다. 뇌의 입장에서는 구태여 어려운 것이라도 더 값을 쳐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간단하고 빨리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달고 기름진 음식을 탐닉하고 과식을 하게 되는 행동을 반복한다. 사는 게 힘들수록, 경쟁이 치열할수록.

 

진화론적은 남녀관계, 결혼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전부터 설득력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한 챕터를 할애했다. 저자는 결혼의 규칙을 배우자간 상호의무, 배타적 성 접근권, 양육권, 혼인지속신념이란 네 가지로 설명하며 결국 번식을 위한 일종의 계약이라고 규정한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골반의 크기가 어느 이상 커질 수 없어 충분히 키울 수 없고, 걸 어다니므로 중력의 힘으로 인해 수태한 아이를 오랫동안 간직하지 못한 채 임신을 끝낼 수 밖에 없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를 다른 동물에 비해 오랫동안 돌보아야만 생존을 할 수 있으므로 자연히 결혼이란 계약관계가 여러모로 유리하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보편적 문화로 자리잡았다. 구조적으로 남자는 수유를 못하므로 남자와 여자의 돌봄과 수렵/채집 활동의 역할 분담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환경이 척박한 곳일수록 영아 살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역사학자 프랭크 맥린에 따르면 18세기 영국 아기들은 종종 어머니의 실수로 템스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일부 유모가 어머니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맡기면 곧 죽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성행했는데, 병원 입구에 놓인 아기가 한 해 10만명에 달했고 그중 80%가 1년안에 사망했다. 이런 영아살해는 식량공급패턴과 관련이 있는데, 특정 지역의 가뭄이 일어난 다음에는 영아살해율이 올라가는 것이 통계적으로 관찰된다. 모성애는 위대한 본능임에도 영양을 공급할 환경이 넉넉치 않으면, 이미 낳은 아이의 생존 가능성을 위해 지금 낳은 아이, 혹은 낳을 아이에 대해 저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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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배운다는 마음으로 장단점을 골라서 받아들이라

 

먹는 것, 결혼은 아주 본능적인 행동이 신경인류학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이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회사 생활도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여기까지 나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위계질서가 만들어진다. 리더가 필요한 이유는 집단이 함께 리더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면 안전할 확률이 분명히 올라가는 덕분이다. 그래서 모여서 집단을 만들고 리더를 중심으로 서열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건 인간뿐만 아니다. 집단을 위해 리더가 결정을 내리는 대신, 리더는 자원을 우선 확보할 권리를 갖는 것은 모든 동물이 매한가지기이 때문이다.

 

생물학자 토를레이프 셀데루프에베는 10세때부터 17년간 집에서 키우는 닭을 관찰해서 암탉이 모이를 쪼는 순서를 연구해서 논문을 썼다. 그가 관찰해보니 닭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서열이 분명히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서열을 pecking order라고 한다. 바로 모이를 쪼는 순서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와 직장의 관계를 분명히 해서 감정적 상처를 덜 받고, 악독한 상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그 안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골라서 받아들이려 노력하라는 정도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법이다. 조금 아쉽다. 물론 나라고 분명한 답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국내 저자인 덕분에 우리 사례가 여러 번 인용되어 소개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텃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조선시대에 관료로 처음 부임한 급제자가 선배들의 신래침학(新來侵虐) 풍습을 따라 신고식과 같은 가학적 행위에 시달리다 죽는 일까지 벌어진 일을 소개한다. 율곡 이이는 이에 반대했다가 직을 그만두게 되었을 정도로 전통으로 굳건히 지켜졌다고 한다. 이는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고,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새로운 구성원을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불가피한 일로 인간뿐 아니라 포유류, 조류 어류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집단을 만들어 침입자를 내쫓아 한정된 자원을 지켜내려는 전략으로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신래침학을 굳건히 지키면서 집단 안의 위계만 지키려던 조선의 관료들이 더 큰 외부의 적을 보지 못해 왜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율곡 이이가 이 악습을 없애달라고 선조에게 부탁한 지 23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모 과학잡지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분량도 적당하고, 읽기 쉽게 구성이 되어있다. 반면, 쉽게 일반화하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면서 적당히 끝을 맺는 듯한 아쉬운 점도 있다. 신경인류학으로 모든 걸 설명하고 있지만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똑 떨어지지 않고, 거꾸로 맞추는 느낌도 있다. 더욱이 설명을 하되, 해법은 아쉬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판단과 행동의 근원이 사실은 켜켜이 쌓여온 우리 조상 위의 조상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과 경험이 남아있다 여전히 우리의 지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데에 충분하다. 평소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의문이 들 일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박한선 저 | 휴머니스트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야식을 먹는 의지박약, SNS에 집착하는 관심병, 결혼 전에 생기는 막연한 불안함 등 일상적인 사례들을 통해 현대인의 마음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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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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