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첫눈에 끌리는 제목을 짓고 싶을 때

이름 속에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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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안에서 답을 찾을 때, 내용과 겉돌지 않고 딱 안성맞춤인 제목이 떠오른다. (2019.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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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한창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당선자들이 TV에 나와 미모와 지성을 뽐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 아버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나에게 ‘김주미(金主美)’란 이름을 붙였다. 한자의 뜻을 풀면 주인 주와 아름다울 미, 즉 ‘아름다움의 주인, 아름다움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이 아이를 미스코리아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단다.

 

초등학교 때 한자를 배우면서 내 이름의 뜻을 얘기했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하나같이 “네가 무슨 미스코리아냐”며 비웃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름에 담긴 의미가 부끄럽지 않았다.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에게 난 소중한 존재였고, 누구보다 기대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라는 걸 이름이 증명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름은 내 자존감의 표상이 되었다. 나를 소개할 자리가 있으면 늘 이름의 뜻을 풀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딸이 지성과 미모를 갖추길 바라며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자라면서 외모가 이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커 가면서는 이름의 뜻풀이를 내 식으로 바꿔서 소개했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글을 지어 삶의 주인이 되고 더불어 나의 글과 강의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말해주기 때문인지 가끔 탤런트 박주미 씨와 헷갈리는 사람은 있어도, ‘주미’라는 이름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각인되는 이름을 갖고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글쓰기에서도 이름 짓는 일은 중요하다. 프로그램 기획서를 받았는데 프로그램명이 가제가 아니라 확정이라면 이미 기획의도와 구성 전략이 상당 부분 갖춰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매주 에피소드 제목이나 코너 제목을 소개할 때도 제목부터 기대감을 갖게 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주목 받는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목의 유형은 역할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정보 전달형’ 제목이다. 시청자들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소개해주고 작품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삼시 세 끼」나 「효리네 민박」,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제목만으로 이미 출연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제작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콘셉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관심 유도형’이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청자들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제목으로 ‘대통령의 금고―수인번호 503번의 비밀’이나 ‘아침의 살인자―배산 여대생 피살 사건 미스터리’ 같은 제목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방송을 통해 어서 그 비밀을 보고 싶게 만든다.

 

서점에 가서 독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들의 제목들을 살펴보자.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는 책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정보 전달형 제목들은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있는지 명확히 제시한다. 『개인주의자 선언』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등은 제목만 보아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지향점을 눈치챌 수 있다. 『거래의 기술』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미움 받을 용기』 와 같은 책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말을 연이어 배치하거나, 단어 조합이 신선해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관심 유도형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제목들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처럼 의문문을 사용하여 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만들고, 저자가 과연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내용을 확인하고 싶게 한다. 구체적인 숫자나 사례를 제시하여 독자들이 책을 펼치게끔 만드는 제목도 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7번 읽기 공부법』 , 『3층 서기실의 암호』  등 관심을 끌기에 좋은 책들이다.

 

제목이 정해지면 점검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제목은 부르기 쉽고,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특히 TV 프로그램의 경우 제목을 로고타이프(Logotype)로 제작해야 한다. 로고타이프 또는 로고는 방송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어 상표처럼 쓰는 글자체를 말한다. 로고로 표현해야 하는 제목은 특정 방송이 지니는 이미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로고타이프는 시청자에게 한눈에 각인되어야 하며 프로그램 처음과 끝, 광고 영상 등 모든 콘텐츠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구로 제목을 정하는 것이 시각화에 도움이 된다.

 

제목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는지도 살펴야 한다. 기획 단계에서 제목이 정해지면 여러모로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방송 현장에서는 편집을 하고 대본을 쓰는 후반작업에 가서야 제목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화면에 타이틀 자막을 입히며 극적으로 제목을 바꿔서 사용한 사례도 있다. 방송 제목에 대한 영감이 마지막까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방송 내용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핀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주인공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비유를 찾아내거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전문가가 주제에 관해 한마디로 정의내린 바를 인용해 제목을 만든 적도 있다. 작품 안에서 답을 찾을 때, 내용과 겉돌지 않고 딱 안성맞춤인 제목이 떠오른다.

 

이 책  『망한 글 심폐소생술』 을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책의 기획안을 쓰고 출판사와 의견을 나누며, 출판 계약을 맺고, 본문을 쓰는 긴 시간 동안에도 책의 제목을 확정짓지 않았다. 책의 기획의도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정도의 가제목을 선정해 놓고 집필을 이어갔다. 원고를 모두 완성한 후, 편집자와 함께 퇴고 과정을 거치고 책 표지와 내지의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책에 꼭 맞는 제목은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인쇄될 제목은,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어 고심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제목을 짓는 일련의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제목과 내용 사이에는 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제목에서 이미 반전이 되는 내용이나 프로그램의 결론을 얘기해 버린다면 이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반대로 두루뭉술한 제목을 써서 내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추측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암시적이라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면 시청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꼭 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제목은 작품의 내용에 관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청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하는 것이 좋다.

 

제목을 쓰고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히 생각하면 다른 대상과 나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구별 짓는다는 말에는 이름 속에 그 대상만의 특성을 담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게 정한 이름은 대상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나아가 이름에는 지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이 담기기도 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이든 어떤 텍스트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자신만의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 즐겨 찾고, 회자되는 이름을 만드는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떠한 글을 쓰고자 기획 중이거나 남들과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작품 이름 또는 제목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길 바란다. 이름 속에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김주미 저 | 영진미디어
짧은 문장부터 한 편의 글까지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비롯해,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지 등 글쓰기 기법과 ‘작가’로서의 태도를 모두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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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주미(작가)

방송국에서 라디오작가와 TV 구성작가로 20년 일했다. 이후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문화원에서 글쓰기와 드라마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방송작가 시절부터 겪어온 글쓰기의 시행착오를 기록, 공유하고자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연재했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받았다. 현재 미디어 비평가이자 작가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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