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꽃과 서점을 둘러싼 귀촌

아무렇지 않게 걸어주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법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지난 반 년 간, 권 대표는 아주 조금씩 제주도에 적응해 나갔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려가는 희노애락을 SNS로 들여다보자면 『타샤 튜터 나의 정원』에 나오는 타샤 튜터의 귀촌기를 떠올리고도 남았다. (2019. 01. 09)

1-1.jpg

 

 

1971년, 타샤 튜터는 쉰여섯의 나이에 버몬트 주의 땅 30만평을 구입한다. 오랜 시간 꿈꿨던 18세기 무렵 농가주택을 모델로 집을 짓는다. 3년에 걸쳐 온실을 만들고 연못을 뚫는다. 『타샤 튜터 나의 정원』 에 나오는 내용이다.

 

처음 이곳, 남양주에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꾸린다던가 근처에 빈 땅을 얻어 농장을 짓는다던가. 실제로 주변에 주말농장이 있었다. 곳곳에 비닐하우스며 텃밭이 즐비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일도 아닐 듯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평소의 느긋하고 게으른 일상에 젖어들었다. 우연히 제주도 꽃집 겸 서점 ‘디어마이블루’를 전까지는 말이다.

 

 

2-1.jpg

 

 

2007년,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읽은 후 추리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음먹고 나니 길이 보였다. 북스피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몽땅 내고 있었다. 나는 이 출판사를 목표로 삼았다. 북스피어에서 책을 낸다면 미야베 미유키 옆에 내 책이 놓이겠지, 얼마나 멋지겠어! 라는 치기어린 생각의 발로였달까. 그리고 희한하게도 이 목표가 날 진짜 추리소설가로 만들었다.

 

작년 6월, 이런 북스피어가 국제도서전에 참가한다기에 코엑스를 찾았다. 그랬다가 얼마 가지 않아 길을 잃었다. 방향치인 탓이다. 당황하자 일행도 잃어버렸다. 아, 연락하자 생각하며 핸드폰을 찾아보니 핸드폰도 없었다. 나이 마흔에 미아가 되어버렸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  같은 국제전을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면 북스피어 앞이었다.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내게 친절하게 말을 붙여주신 분이 있었으니 북스피어 부스에서 책포장으로 여념이 없는 플로리스트였다. 또래나 조금 위일까 싶은 플로리스트는 바쁜 손을 잠시 멈추고 내게 말을 붙여왔다.

 

“뭔가 도와드려요?”

 

 

3-1.jpg

 

 

가끔 아무렇지 않게 걸어주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다. 나는 이 플로리스트의 도움으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두꺼비의 보은이란 말이 있듯이 평소 바보개구리로 불리는 나는 보은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싶었다. 플로리스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 글이 하나 떴다. 이 플로리스트가 제주도에 꽃집 겸 서점 ‘디어마이블루’를 오픈한다는 사연이었다.

 

인연이다 싶었다. 내가 남양주로 귀촌했듯 그해에 제주도로 귀촌했다니, 게다가 내 생일 전날 꽃집 겸 서점을 오픈했다니, 나는 플로리스트의 이름 석 자 권희진을 단숨에 외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었다. 당신이 도와준 그 마흔 살 미아가 나였소, 밝힌 후 18일 00시를 기해 함께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불을 밝히고 후! 불며 소원을 빌면 참으로 멋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보기보다 낯을 가린다. 또 염려했다. 이렇게 갑자기 들이대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소심한 마음에 덧글만 달았다. 서점 오픈 축하드려요, 라고.

 

 

4-1.jpg

 

 

지난 반 년 간, 권 대표는 아주 조금씩 제주도에 적응해 나갔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려가는 희노애락을 SNS로 들여다보자면  『타샤 튜터 나의 정원』 에 나오는 타샤 튜터의 귀촌기를 떠올리고도 남았다. 덕분에 눈동냥만으로 흐뭇했다. 어쩐지 이곳 남양주에서 원격으로 동거동락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래서 나는 또 다짐했다. 제주도에 가자. 만나자. 책을 사든 꽃을 사든 밥을 사든 어떤 방식으로든 보은을 하자, 라고.

 

태어나서 네 번째로 찾을 제주도 애월의 풍경은, 권 대표가 꾸리는 ‘디어마이블루’의 꽃과 함께하는 서점은, 내가 늘 꿈꾸던 타샤 튜터의 정원과 닮은꼴일 것만 같아 설렌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 튜더> 저/<리처드 브라운> 사진/<김향> 역17,820원(10% + 5%)

정원은 하룻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하지요. 하지만 나는 정원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 타샤 튜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 타샤 튜더. 그녀의 정원의 최근 풍경을 담은 대형 사진집이 출간되었다. 2006년 출간된 『타샤의 정원』이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