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인테리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나만의 작은 의식

내 공간에 입장했음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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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을 준비한다면 저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로망이나 갖고픈 아이템이 있을 것이다. 내겐 어린 시절부터 갖고 싶었던 현관에 나만의 열쇠를 둘 트레이와 콘솔이 그것이었다.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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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미국 시트콤과 성장 영화를 즐겨봤다. 그 이유는 다소 지엽적인 관심사에 있었다. 예를 들면 <아빠 뭐하세요?>에서 스포츠팀 굿즈를 활용한 인테리어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의 톰 행크스의 꼬마 아들에게서 노랑 후드와 빨강 점퍼를 매치한 캐주얼 코디를,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서 헐렁한 박스 티에 하이넥 컨버스와 칠부 청바지를 걸친 백인 청소년의 느낌을, <퍼펙트월드>에서 케빈 코스트너에게 반팔 남방을 흰 티에 받쳐 입는 법 등등 부모님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생활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특히 <스피드>의 키아누 리브스부터 미국 청소년 영화의 주인공 소년들까지, 그들은 늘 검정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중학생 무렵 돌핀시계를 시작으로 전자시계를 마치 손과 발처럼 몸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체화했다. 아마도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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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리 집, 동네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풍광과 생활상이 펼쳐지는 미국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구숙정과 왕가위를 만나 잿빛 도시를 질주하는 홍콩 청춘들의 밤에 귀의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궁극적으로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궁금했고, 일종의 사대적 감수성이긴 하나 우리네 풍경과는 다른 풍부한 색감을 가진 동네 풍경과 특유의 여유에 일정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부산한 아침에 라디오 알람을 듣고 일어난 부모들과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아일랜드바나 식탁에 둘러앉아 대용량 콘프레이크와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커다란 종이팩 주스를 늘어놓고 식사하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풍요로운 풍경 같은 것들. 물론 당시 우리네 슈퍼에서도 ‘델몬트 무가당 오렌지주스 100’이라 하여 대용량 주스를 팔긴 했다. 그러나 용기가 유리병이란 것과 보통 집에서는 그 병 안에 오렌지주스가 아니라 주로 보리차나 당시 선풍적으로 유행하던 결명자차가 들어 있는 정도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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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커다란 간극 때문일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우선, 집에 들어서는 현관의 풍경부터 달랐다. 비교적 나이를 먹고 본 <모던패밀리>나 <빅뱅이론>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이 현관이었다. 으리으리한 할아버지 집부터 삼남매가 복작거리는 쿨 대디의 집, 아늑한 게이 부부의 집 모두 현관 옆에는 온가족이 외투를 걸어놓을 수 있는 옷걸이나 열쇠 등등을 놓아둘 수 있는 콘솔이 놓여 있었다. 쉘든과 레너드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도 ‘winter is coming’이 새겨진 존 스노우의 검과 함께 열쇠를 놓을 수 있는 트레이가 있다.

 

그랬다. 미국영화 속 주인공들의 집은 브루클린의 스튜디오든, 맨하튼이 아파트든, 캐러반이든, 2층 목조주택이든 대부분 현관 옆에는 열쇠 등 늘 외출할 때 가져다녀야 하는 짐, 이를테면 열쇠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콘솔이나 작은 탁자나 무엇인가가 있고, 그 위에는 다양한 소재로 만든 작은 바구니나 트레이가 있었다. 종이 쇼핑백을 한 아름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열쇠를 현관 옆에 던져놓는 지극히 일상적인, 어쩌면 시나리오 지문에도 나오지 않을 그런 행위와 공간들이 가을 낙엽처럼 계절이 몇 번이나 돌고 도는 동안 내 뇌리 속에 쌓이고 치워지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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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게도 당연한 것이 됐다. 독립생활을 준비한다면 저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로망이나 갖고픈 아이템이 있을 것이다. 내겐 어린 시절부터 갖고 싶었던 현관에 나만의 열쇠를 둘 트레이와 콘솔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혼자 살게 된 27만 원짜리 원룸부터 지금까지 현관 옆에는 늘 열쇠나 지갑 등을 담을 수 있는 트레이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전 세입자가 두고 간 화방 이름이 찍힌 스툴부터, 벤치, 콘솔, 테이블 등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현관에는 늘 밖에서 가져온 무언가를 내려둘 공간, 집 안의 첫인상을 부드럽게 바꿔줄 전시 공간을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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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후 돌아오면 어린 시절 봐왔던 그들처럼 밖에서 가져온 무언갈 현관 앞에, 늘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요즘은 번호키나 생체인식이 대세다 보니 열쇠가 사라지는 추세지만, 선글라스, 보안경, 지갑, 이어폰, 아이폰, 클러치, 손세정제 등등 매일 외출 시 갖고 다니는 물건은 여전히 많다. 현관 옆에 이런저런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마련한 작은 공간은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내 공간에 입장했음을 확인하는, 혹은 오늘도 내 요새로 안전하게 돌아왔음을 안도하게 하는 행위이자 인테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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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나 종류는 상관없다. 소재도 취향에 달린 문제다. 작은 협탁에서부터 벤치나 서랍장 수준의 콘솔, 테이블까지 다양하다. 중문이 없거나 현관과 생활공간의 분리가 불명확한 원룸에 산다면 이케아의 웨건 타입의 아일랜드 바나 가로가 좁은 형태의 가벼운 테이블을 둬서 공간도 분리하고 트레이와 바구니를 둘 공간을 만드는 걸 추천한다. 하단부를 천이나 커튼으로 가리면 신발장이나 수납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트레이의 경우 유리, 가죽, 요즘 유행하는 브라스(동), 은, 나무, 라탄 등 다양한데, 콘솔에 맞춰 고르고 한 번씩 변화를 주면 즐겁다. 나의 경우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길 때 악투스 같은 라이프스타일 숍에서 하나둘 사오는 편이고, 국내에서도 많이 유통되는 'fog linen'의 제품을 비롯해 마페씽, 인포멀웨어, TWL, 짐블랑, 블로마, 루밍, 코지홈 등등의 사이트와 숍에서 살펴보는 편이다.

 

참고로, 우리네 현관은 신발장을 제외하면 비우는 것이 미덕이다. 살짝 단을 내 대청마루에 오르는 것처럼 만들고 때로는 중문까지 설치해 공간을 완벽히 분리한다. 알게 모르게 신을 벗고 집 안에 들어가는 우리네 삶의 양식과 풍수지리 인테리어가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보면 현관은 밝고 넓고 깨끗하게 가꾸라고 한다. 정면에 거울, 부엌, 화장실이 보이면 금전적으로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산과 같은 움직이는 물건도 운을 옮기고 흐트러트리니 가능한 두지 말고 비우길 권한다. 그래서 내 재정 상황이 이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도 알아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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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교석(칼럼니스트)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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