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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요령
『중국집』 ,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중국집’과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는 모두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이미 ‘프로페셔널’의 위치가 된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적 DNA를 간직한 채 동시에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들어간 일종의 ‘덕업일치’의 보고서다. (2018. 10. 29)
언스플래쉬
프로페셔널리즘을 위해 필요한 요소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돈을 잘 벌면? 가족이나 연인과 좋은 관계?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종교적으로 만족스러운? 모두 일리 있는 대답이다. 무엇을 삶의 가운데에 놓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나는 ‘일하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이 아니라 행운에 속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러 측면서 즐길 수 있는 경지가 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몹시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대개의 경우는 이렇다. 좋아하는 일이기는 하나 어렵고 힘이 들고 경제적 보상이 적으면 지속하기 괴롭다. 반대로 시간 여유도 있고, 에너지가 덜 들지만 썩 내키는 일이 아니라면 역시 지속하기는 어렵다.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걸린다. 운이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내 일’로 택해서 하고 있다 해도 10년, 20년 같은 일을 앞으로도 즐기며 하기란 더욱 어렵다. 다른 출구가 필요하다. 직업을 10년마다 바꾸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 일’이란 게 정해지고 나면 그 일을 최소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오랫동안 꾸준히 해나가야한다. 기분이 좋건 나쁘건, 몸이 아파도, 가족과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같은 수준의 능력치를 보여야만 한다. 아마추어가 할 수 없는 프로페셔널리즘의 핵심이다. 인간이 로봇이 아니기에 지루함과 권태, ‘왜 내가 이걸 해야하지?’라는 간헐적 근본적 회의, 컨디션이 안좋은 날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대처하는 능력은 프로페셔널리즘을 위해 필요한 요소다.
두 번째가 ‘26년차 중식 마니아’
그런 의미에서 일을 하면서 자기만의 즐기는 방식을 찾은 사람의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조영권의 『중국집』 이다. 저자 조영권은 26년차 피아노 조율사다.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피아노 판매와 조율을 함께 하고, 평일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피아노를 배달하고, 오래된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이 이 사람의 일이다. 매우 전문적이고, 동시에 반복적 일을 하는 셈이다. 직접 본인이 가야하고, 누구를 시킬 수도 없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능력도 올라가는 면에서 전문적이고, 피아노의 종류는 다양하고 고쳐야할 것도 여러 가지겠지만, 결국 피아노의 상태를 점검하고 음을 조율한다는 흐름에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셈이다. 그것도 매번 다른 손님을 만나 한 번의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 그의 일의 90%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몸이 아프거나, 집에 급한 일이 생기거나, 생각보다 보상이 적은 건이라면 썩 내키지 않는 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마다하지 않고 전국을 다닐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 책의 제목이 ‘조율사’가 아니라 ‘중국집’인 이유다. 그는 저자 소개의 두 번째가 ‘26년차 중식 마니아’다.
구성이 일단 재미있다. 1/4정도는 공저자 이윤희가 그린 만화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반 정도는 저자의 글이고, 나머지 1/4는 저자가 직접 찍은 식당의 내외부와 그가 먹은 음식의 사진이다. 모두 38곳의 전국 방방곡곡의 중국집이 나오는데, 맨 뒤에는 친절하게도 지도와 주소까지 소개해준다. 글, 만화, 사진 그리고 주소. 딱 떠오르는 컨텐츠가 있지 않은가? 바로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 다. 일본 드라마로도 한국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는데, 상당히 유사한 구성이라 더욱 친근하게 책을 펼쳐 넘길 수 있었다. 수입 물품을 파는 독립 영업인 고로 상이 조율사로, 그가 일본 전국을 다니면서 상담을 하고 난 후 여러 가지 식사를 즐기는데 반해 이 조율사는 딱 한가지 중식만 먹는다는 것이 유사하면서 다른 점이다.
구성도 비슷하다. 중년의 남성 조율사가 출장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첫 에피소드를 보면 전주를 가는 주인공이 만화로 나온다.
“사실 장거리 출장은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나는 그 어떤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내 유별난 취미 때문... 전주하면 역시 그걸..”
조율을 하는 전문적인 장면이 나온다. 피아노 조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어렵지 않게 대방출이 된다. 두 세 시간의 작업을 끝내고 나면 그는 자신에게 보상을 준다.
“허기가 밀려온다. 물짜장을 먹기에 최적의 상태. 진미의 물짜장을 만나기 위해 중앙동 웨딩거리를 향했다.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어느새.. 진미.”
여기까지 만화가 나오고, 물짜장의 유래에 대해서 한 페이지 정도 소개가 된다. 면발에 대한 품평, 소스와 그릇, 가게 분위기에 대해서 ‘고독한 미식가’ 못지 않게 감칠맛나게 묘사를 하고 마지막에는 물짜장 사진이 딱 등장한다. 첫 에피소드를 보면서 벌써 중국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이런 식으로 전국의 오래된 노포 중식당만 저자는 찾아다니는데, 더욱 인상적인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이다보니 엄청난 산해진미 숨겨진 중식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90%가 자장면, 짬뽕, 볶음밥과 군만두만 반복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처음으로 볶음밥에 올라가는 달걀의 모양새가 지방마다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인천과 부산은 달걀프라이, 전라도는 오므라이스처럼 달걀을 풀어 부친후 밥위에 얹어 나오고, 서울 지역은 달걀을 볶음밥을 할 때 함께 어우러지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심하게 먹었던 중식의 볶음밥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저자는 각 지역의 화상 주방장에게 배운 한국인 주방장들이 식당을 내면서 각 지역별로 비슷한 자장, 짬뽕, 볶음밥 패턴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해석을 한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그동안 몰랐던 피아노의 조율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전국의 숨은 작은 중식당들을 찾아가보도록 만든다.
저널리스트의 영혼을 구한 것은 술, 음악, 하루키
두 번째 책은 조승원의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다. 조승원은 현직 MBC 기자로 2017년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이란 책을 낸 적 있다. 첫 번째 책이 락음악과 아티스트 그리고 거기에 얽힌 술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소설과 에세이에 나온 책을 대망라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정체성이 저널리스트라면 그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술이고 (실제 조주 기능사를 취득했다), 아마도 세 번째가 음악과 하루키 문학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술과 음악을 엮은 책을 냈고, 바로 다음해에 하루키와 술을 다룬 책을 낸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고단하고 신경 날카로워지는 삶을 살면서 피폐해질 수 있는 그의 영혼을 구한 것은 아마도 술, 음악, 하루키였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하루키 작품 90권, 비평서 12권, 술 관련도서 35권을 참고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의 프로페셔널리즘인 팩트 체크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조승원 작가의 페이스북
조승원 작가의 페이스북
꼼꼼하게 하루키의 모든 저작물을 뒤져서 공책에 옮긴 후에 주제(술의 종류!)별로 재분류해서 서술을 했다. 챕터 제목도 ‘하루키와 맥주’, ‘하루키와 와인’, ‘하루키와 위스키’, ‘하루키와 칵테일’이다. 맥주 챕터를 보면 하루키가 실제 마시는 맥주의 종류, 소설의 주인공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브랜드는 무엇이고, 주로 어떤 상황에 마시는지 찾아내서 빈도까지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 하루키 소설이나 에세이의 해당 장면이 인용되어 있다. 그러면서 맥주, 와인, 위스키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끼어들어와 얹어지면서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다. 저자는 서울에서 하루키의 책만 본 것이 아니었다. 동경으로 날아가서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술집과 하루키가 젊은 시절 운영했던 재즈바 ‘피터 캣’이 있던 장소까지도 찾아갔다. 『상실의 시대』 에 미도리가 술에 취했던 실명의 재즈바 ‘DUG’를 찾아가서 사장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저녁때 읽어야 제격이지만, 몰입하게 되면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바로 책을 덮고 냉장고를 뒤져 맥주를 한 병 따게 만든다. 좀 지나면 서가로 가서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더 중증으로 몰입하면 ‘안되겠네’ 발동이 걸리면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거리로 나가 칵테일 바를 찾아 가고 싶어진다. 그만큼 하루키를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하게 부추김질을 하는 책이다.
이 재미있는 하이브리드형의 책의 DNA의 핵심은 하루키도, 술도 아니었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의 DNA가 핵심이다. 강박적 정보수집, 드라이한 문체,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취재력, 가독성 있는 문체와 풍부한 정보의 제공이 모두 오랜 시간 저널리스트로 일을 해온 저자의 내재화된 사회적 DNA의 형질이 분명히 표현된 것이었다. 오랜 시간 기자로 일을 하면서 권태로워지기도 하고, 일에 회의가 들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걸 견뎌내게 한 것도, 하루의 어려움을 버티게 해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증거가 책 도처에 묻어있다.
『중국집』 과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는 모두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이미 ‘프로페셔널’의 위치가 된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적 DNA를 간직한 채 동시에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들어간 일종의 ‘덕업 일치’의 보고서다. 우리가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나가 일가를 이루고, 내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밥벌이 수단만이 아닌 것이 되게 하려면 이런 숨통 트일 것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가능하면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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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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