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아이가 잠든 새벽에
아빠 쳐다보지 마세요
평소에 꾸준히 아이와 관계를 맺는다면
아침에 일어나면 늘 엄마를 마주했던 아이는 엄마없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씽씽이나 자전거를 타며 어린이집으로 가던 풍경에도 엄마는 없다. (2018. 09. 04)
“아빠 쳐다보지 마세요.”
퇴근 후 “아빠 다녀왔어요.” 인사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여느 때처럼 한껏 애정을 담아 아이를 바라봤지만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문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아빠 아빠” 외치던 아이인데. 짜증날 만한 일이라도 있었나 했지만 아내 얘기로는 잘 놀고 있었다 한다. 폭염에 녹아내린 몸을 씻어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빠 만지지 마세요.”
분명 내가 아이 마음을 상하게 했구나 싶었지만, 전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지안아, 아빠가 지안이 쳐다보고 지안이 안는 게 싫어요?”
“응”
“왜 싫어요?”
“……”
“지안이는 아빠한테 섭섭한 게 있어요?”
“네. 아빠가 같이 안 놀아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 이틀 연속으로 같이 놀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이번 주에 처음으로 연이틀 못 놀았다. 하루는 오랜만에 저녁 회식이 있었고, 그 다음 날은 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저녁을 먹고 카페로 나갔던 터다. 평소에 많이 놀아왔으니 이틀 정도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야 퇴근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있으니 ‘많이’ 논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긴 하루의 끄트머리에야 나타나 ‘잠시’ 노는 존재가 아빠였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지안아, 아빠가 미안해.
아이의 마음을 알고 나서 평소보다 좀 더 열심히 놀았다. 아이를 이불 위에 눕혀서 흔들흔들 비행기 태워주고, 요리 장난감으로 샌드위치와 케잌을 만들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접하며 놀았다. 블록으로 큰 병원을 만든 뒤에는 대체 몇 명의 친구를 치료해주었는지 모르겠다. 동료 의사가 된 우리는 호랑이를 수술하고, 코끼리에겐 물약을, 하마에겐 알약을 처방했다. 배가 아픈 곰돌이와 이가 아픈 악어, 꼬리가 아픈 여우를 고쳐주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서운함을 깨끗하게 치료했다. 다시 두 팔 벌리며 “아빠, 사랑해요” 와락 안겼다.
아이가 보채거나 서운함을 토로하는 일은 아이를 키우는 집에선 일상적인 일이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가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것은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너무도 만연한 현실이다. 혼자 유난 떨 소재는 전혀 아니다. 때로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이도 적응해야 한다. 어필할 때마다 보상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 대처라고 할 순 없고 그러기도 힘들 것이다. 아이가 다시 마음을 여는 것을 느끼며 흐뭇하면서도 고민이 생겼다.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내의 복직을 코 앞에 둔 우리에게, 이런 날들은 수없이 찾아올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엄마를 마주했던 아이는 엄마없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씽씽이나 자전거를 타며 어린이집으로 가던 풍경에도 엄마는 없다. 엄마도 아빠처럼 하루의 끄트머리 즈음에 얼굴을 내밀 것이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핀을 꽂을지 엄마에게 요구하던 일, 미세먼지 신호등을 보고 엄마에게 ‘오늘의 공기’에 대해 얘기하던 일, 엄마와 냇가의 물고기를 바라보던 일, 하원 후 동네 커피숍에서 엄마는 커피를 아이는 딸기주스를 앞에 두고 건배하던 일 같은 것은 주말에나 가능할 것이다. 세 살 아이에게도 이제 '추억'이라 부를만한 시절이 생긴다.
엄마와 아빠가 퇴근하기까지, 주말이 오기까지, 아이의 마음 속에는 어떤 요구들이 차곡차곡 쌓일게 분명하다. 아마도 아이는 “쳐다보지 마”하며 관심을 호소하거나, “잠이 안 와”하며 밤 늦게까지 같이 놀자고 엄마 아빠를 조를 거 같다. 엄마 아빠는 각자 방전된 채 퇴근해서, 역할을 나눠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끌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내 놓은 뒤에야 아이와 온전히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중압감에 눌린 우리는 때로 아이의 요구를 손쉽게 들어주거나, 규칙과 좌절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요구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갈팡질팡할 게 눈에 선하다. 그 갈팡질팡의 시간을 어떻게 현명히 극복할 수 있을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구절이 눈이 뜨였다.
우리는 일상의 중압감에 눌려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대화를 회피할 때가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적게 논의한다. -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중에서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만 보자면 엄마 아빠가 때로는 아이의 요구에 충실히 반응하지 못하고, 어느 때는 과하게 반응하기도 하며, 어느 때는 아이의 태도를 바꾸려고 달려드는 등 오락가락하게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요구가 제기되는 순간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것은 아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장 적게’ 숙고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순간은 정답대로 행동할 수 없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아이와 관계를 맺는다면 아이의 불만족도 덜하지 않을까. 정작 겪게 되면 쉽지 않겠지만, 대단히 특별한 방책도 아니지만,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생각해 본다. 어떤 비법을 꿈꾸며 손쉽게 해결하려 하지 않겠다고. 평소에 늘 아이에게 마음을 쏟겠다고. 네가 잠든 후에도 너의 마음을 생각하겠다고.
인생의 발견시어도어 젤딘 저/문희경 역 | 어크로스
시대와 공간의 교차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고민해왔는지, 또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일깨워 주며 함께 고민하는 가운데 더 나은 해법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시어도어 젤딘> 저/<문희경> 역15,120원(10% + 5%)
유럽 지성계의 독보적인 석학 시어도어 젤딘의 역작 시대와 문명을 가로지르며 세상의 모든 지혜를 연결하는 압도적인 지적 여정! “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젤딘의 책을 권한다. 그의 책은 냉소 대신 가능성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알랭 드 보통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의 명예교수 시어도어 젤딘은 독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