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필수 아이템 : 선글라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름은 그냥 보내지는 계절이 아니고 ‘한바탕’ 벌어지는 일, 버텨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올해 폭염(=여름)은 사회적 재해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예사 더위가 아니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걸까. 말복이 지나자마자 저녁이 시원해졌으니까 말이다. 시원해진 바람에 그간의 더위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출근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약속이나 한 듯, 카톡방에는 날씨가 선선해져 살 것 같다, 기분이 좋다 등의 즐거움이 넘실댄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여름의 끝자락으로 옮겨가기 막 시작한 지금, 여름에 대해 왈가왈부 하자니 어딘지 모르게 뻘쭘한 기분이 들지만 여름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름밤

여름의 매력은 여름밤이라 생각한다. 숨 막히는 더위에 ‘여름밤’이라기보다 열대야를 보내느라 바빴지만, 선선해졌으니 이상적인 여름밤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여름밤엔 슈가볼의 ‘여름밤 탓’을 들으며, 걷는 연남공원 산책을 좋아한다. 어딘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습하게 불어오는 여름 밤공기의 냄새를 사랑한다. 또 걸을 때마다, 습기가 배어든 풀이라 그런지 식물들의 냄새도 더 진하게 느껴지고, 개천에 흐르는 물소리도 더 경쾌하게 들린다. 그리고 걷다가 느낀 더위 탓인건지 마음이 뜨거운 탓인 것인지 덩달아 느껴지는 설렘도 좋다. 여름밤엔 마음이 붕-뜨는 것 같다.

#여름에 어울리는 시

이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여름과 그 바다가 완전히 끝나버렸는데도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것이고,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들에 대한 것이고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부끄러움에 대한 것뿐
그렇게 삶이 계속되었다
- 황인찬,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지난번 <겨울이 오면 //86chu.com/Article/View/34851> 칼럼에서 황인찬의 ‘종로사가’를 소개했다면 이번엔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이다. 더운 바깥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켠 다음, 거실에 누울 때 생각나는 시이다. 그러니까 더위로 머리가 띵하다 못해 멍할 때 읽으면 일상으로 돌아오게끔 해주는(과장하자면 정신줄 붙잡아 주는) 시이다. 부디 전문을 다 읽었으면 좋겠다. 시 도입부에서는 어떠한 변화를 말한다고 했으나 시가 끝나도 그와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느끼는 기쁨과 부끄러움은 그대로이다. 끝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그 변화인가 보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반복될 것이다. 또 마주할 것이고 그 속에서 일상은 지속될 것이다.

#테라스와 맥주

 나는 소문난 알코올 쓰레기다. 술이 약해서 슬프지만, 여름엔 맥주를 놓칠 수 없다. 맥주는 야외에서 마시는 게 더 맛있기 때문에 테라스가 있는 가게가 좋다. 가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테라스에선 맥주뿐 아니라 브런치를 즐겨도 좋고, 커피를 즐겨도 좋다. 테라스에 앉지 못할 날씨가 오기 전까진 실컷 즐겨야지. 

 맹렬한 폭염 탓에 여름의 매력은 1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지금이나마 여름을 즐겨야겠다. 늘 그랬듯 여름엔 겨울이 나을까 고민하고, 겨울엔 여름이 나을까 고민할 테니 한파가 찾아오기 전에 이번 여름의 기억을 차곡차곡 정리해놓아야겠다. 적당히 선선해진 바람과 햇빛을 쐬며 여름의 끝자락을 즐겨야지! 그리고 태평양 어딘가에서 환승 중인 듯한 가을이 찾아온다면 기쁘게 맞이해주겠다. 얼른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