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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삶에 대한 손해배상 (2)

『사회, 법정에 서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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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친구의 노트북을 실수로 떨어뜨려 고장 낸 사례를 생각해봅시다. 노트북을 중고로 팔면 3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데, 수리하는 데 50만 원이 든다고 해요. 그런데 친구는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며 반드시 이 물건을 고쳐 쓰겠다고 합니다.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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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극적 손해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적극적 손해는 그 산정이 쉬울까요? 예를 들어 친구가 내 물건을 고장 낸 경우 그 손해는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요? 물건을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을 손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리비가 그 물건의 가치보다 더 많이 드는 때도 있죠.

 

10년 된 친구의 노트북을 실수로 떨어뜨려 고장 낸 사례를 생각해봅시다. 노트북을 중고로 팔면 3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데, 수리하는 데 50만 원이 든다고 해요. 그런데 친구는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며 반드시 이 물건을 고쳐 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50만 원을 주고 수리를 맡겼으니 그 돈을 달라고 청구한다면, 나는 50만 원을 줘야 할까요?

 

판례는 물건이 완전히 부서진 경우에는 그 물건의 현재 가격이 손해이고, 수리가 가능한 때에는 원칙적으로 수리비를 손해로 여깁니다. 하지만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수리비가 너무 과다한 경우에는 현재 물건의 교환가치가 손해(30만 원)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수리비가 과다하기 때문에, 수리비 전부를 손해배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위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수리비, 수리비가 과다하다면 교환가치 감소액이라는 기준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갑돌이는 ‘마음소리’ 애견숍에서 10만 원에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았습니다. 갑돌이는 강아지에게 ‘센세이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오랜 기간 함께 생활했습니다. 갑돌이에게 센세이션은 가족과 다름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센세이션이 을순이가 운전하던 자전거에 치여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수의사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센세이션의 생명이 위태롭다며, 수술비가 200만 원 정도가 들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갑돌이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며 당장 수술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을순이를 상대로 수술비 200만 원 및 센세이션이 다친 것에 대한 갑돌이의 정신적 피해액 100만 원, 즉 합계 300만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죠. 그러자 을순이는 지금 센세이션을 팔면 5만 원도 받기가 어려운데, 300만 원을 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갑돌이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 화가 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 사례3

 

노트북의 경우를 〈사례 3〉에 적용하면 물건(애완견은 법적으로 물건입니다)의 수리비가 과다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물건의 현재 교환가치가 손해로 평가됩니다. 그럼 손해는 5만 원이겠죠(물론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지만 실무상 그 금액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론은 부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생명을 가진 동물을 생명이 없는 물건과 똑같이 취급하기 때문이죠.

 

애완견을 단순히 중고시장에서 물건 파는 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갑돌이 입장에서 5만 원만 받으라면 너무 억울한 상황이죠. 그렇다고 을순이에게 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도 이상합니다. 을순이가 사고를 더 크게 내서 센세이션이 즉사했다면 그 손해배상액은 5만 원과 소액의 위자료일 텐데 센세이션이 즉사한 경우보다 센세이션이 다친 경우에 더 많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부당하게 보일 여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에서는 여러 가지 특별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독일에는 “동물을 치료하는 금액이 동물의 가액을 초과한다는 것만으로 그 지출이 과도한 것은 아니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손해를 정할 때 개인적인 가치를 모두 고려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일반 물건의 경우에도 추억이 깃든 냉장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동차 등 수많은 예외가 생기기 때문이죠. 개인이 입은 정신적 고통은 원칙적으로 위자료 배상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사례 3〉과 유사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자전거 사고로 인한 물적 손해는 그 교환가치를 초과할 수 없으므로 강아지 치료비가 강아지 가격을 초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애완견의 경우 보통의 물건과 달리 소유자가 그 애완견과 서로 정신적인 유대와 애정을 나누고, 생명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에서 피고에게 강아지 가격이 넘는 치료비의 지급을 명했습니다. 즉 강아지의 교환 가격보다 높은 치료비를 지출하는 일이 사회 통념상 가능하다는 것이죠. 다만 이 사건은 1심에서 종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유사한 사례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사례 2>와 <사례 3>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례 2>에서 A가 교통사고로 죽지 않고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죠. 이 경우 가해자는 A의 평생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A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해자가 <사례 3>에서 본 것과 유사한 논리로 A를 사망하게 한 경우보다 A를 다치게 한 경우에 더 많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허용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존재를 배상하라


그럼 〈사례 1〉로 돌아가봅시다. 이와 같은 사례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는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원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가치의 무한함에 비추어볼 때, 인간 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존재가 타인에게 자신의 출생을 막아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워 법률적 손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태어남으로써 치료비 등 여러 비용이 정상인에 비해 더 많이 든다고 해도, 장애 자체가 의사 등 다른 사람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닌 선천적 장애이기 때문에 아이 자신이 손해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김똘똘의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반면에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한 나라도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심각한 장애가 있거나 고통 받는 어린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 장애를 지닌 삶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도 없다. 의학적으로 생명의 연장을 스스로 중단하는 것이 허용되는 이상,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리 손해배상 문제라고 해도 인간의 존재 문제를 법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손해배상의 판단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가치를 결국에는 돈으로 환산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침해된 경우 그 손해배상액을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더 알아봅시다! 손해의 증명


현행 민사소송에서 변론주의원칙에 따라 피해자인 원고는 손해의 발생 사실 외에 구체적인 손해액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 구체적인 손해액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축구선수 A는 1991년경 프로축구단 엘지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후 외국 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귀국 시에 엘지 축구단으로 조건 없이 복귀하기로 하되 엘지 구단이 받게 되는 이적료를 구단과 A가 5:5로 배분하기로 약정했습니다. 이후 A는 1998년경 프랑스 프로축구단으로 이적했는데, 그 과정에서 엘지 구단으로부터 엘지 구단이 받은 이적료 중 절반을 받았습니다. 이후 A는 1999년 다시 국내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는데 엘지 구단과 별다른 협상을 하지도 않은 채 수원 구단과 입단을 결정했습니다. 이에 엘지는 A를 상대로 입단 계약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A는 엘지 구단과 당초 체결한 계약, 즉 엘지 축구단으로 복귀하기로 한 약속을 위반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로 인해 엘지 구단은 원하는 팀의 구성과 운영에 지장을 받거나 홍보와 광고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손해액이 구체적으로 얼마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안의 경우 엘지 구단이 입은 구체적인 손해액을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 법원은 증거 조사의 결과와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밝혀진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채무불이행과 그로 인한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제반 정황 등의 관련된 모든 간접 사실들을 종합하여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범위인 수액을 판단할 수 있다”는 법리를 발전시켰고, 위 사안에서 A가 당초 지급받았던 이적료, 엘지 구단에서 활동한 기간과 프랑스 리그에서 활동한 기간 등을 종합하여 엘지 구단의 손해배상액을 3억 원으로 인정했습니다.

 

최근 민사소송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위 판례의 법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에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 조사의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배상 액수로 정할 수 있다”는 법조문이 신설되었죠. 앞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이 법률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손해를 산정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회, 법정에 서다허승 저 | 궁리출판
법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반 성인들에게도 법과 친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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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승(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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