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게임 - 뮤지컬 <주홍 글씨>

비극적인 운명의 하모니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죄를 지은자, 죄를 숨긴 자, 죄를 밝혀내는 자 (2017.11.09)

 주홍글씨 (2).jpg

 

왜 지금, 이 이야기였는지

 

소설 <주홍글씨>는 1850년대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쓴 작품으로, 17세기 중엽, 청교도의 식민지였던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금욕주의, 엄격한 도덕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청교도 사상 속에서 발생한 간통 사건을 통해, ‘죄’ 에 대해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뮤지컬 <주홍글씨> 또한 원작 소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나이 많은 남편과 반강제적으로 결혼 한 후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남편은 행방불명 되고, 먼저 보스턴에 도착한 헤스터는 몇 년 후 아버지를 모르는 딸을 낳게 된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보스턴 사람들은 헤스터를 간통녀로 몰아가며 재판에 그녀를 회부하고, 아이의 아버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녀는 가슴에 간통을 뜻하는 'A(adultery)'자를 평생 가슴에 붙이고 사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행방불명 되었던 헤스터의 남편이 7년 만에 마을에 나타나게 되고, 그는 칠링워스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헤스터의 주변을 맴돈다. 우연한 기회에 그 마을의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칠링워스는 두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주홍글씨 (3).jpg

 

뮤지컬 <주홍글씨>는 원작 그대로 사건이 전개 된다. 헤스터는 함께 간통을 저지른 딤즈데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모욕을 견뎌내고 희생을 감내한다. 사실 자신이 모든 죄를 받으며 고통을 받을 테니, 그는 용서해달라고 비는 그녀의 모습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간절하고 애절하게 서로를 그리워하는 헤스더와 딤즈데일의 사랑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녀리고 여린 이미지로 대변되는 헤스터의 캐릭터는 19세기 초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존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녀의 캐릭터가 주는 메시지는 조금 불편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왜 그녀 혼자 이 모든 희생을 감내 하는지, 왜 그녀의 일생이 이토록 처참해야 하는지가 와 닿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고통 속에 살게 한 엄격하고 폐쇄적인 사회와 그 사회에 길들여진 마을 사람들의 오독과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묘사했던 원작의 날카로움 역시 무대 위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당시 시대의 신념에 맞선 당당한 여성이라고 하기에 헤스더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연약할 뿐이다. 그 부분을 무대 위로 옮겨 오려 했던 의도가 진부하고 단조로운 사건의 전개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을 그대로 따랐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라도, 무대 위에 그려내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못하다보니 나아가 작품의 몰입까지 방해한다. 딤즈데일 목사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이지이다. 명예와 덕망 때문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물이지만, 그가 가진 고뇌와 괴로움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못한다.<주홍글씨>를 보며 내내 든 생각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무대 위로 옮겨 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각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상징을 느껴야 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죄에 대한 날카로운 심리 묘사나, 사회에 속한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 보다 세밀하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주홍글씨 (4).jpg

 

뮤지컬 <주홍글씨>는 지난 2013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 이듬해 우수작품 제작 지원작에 선정되었다. 2015년 초연 된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발하는 2017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에 선정되며. 2년 만에 관객들 앞에 다시 찾아왔다.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박정아 작곡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소극장 뮤지컬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신선한 연출로 눈길을 사로 잡은 바 있다. 뮤지컬<주홍글씨>는 오는 11월 19일까지 대학로 TOM에서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

기사와 관련된 공연

    • 부제:
    • 장르: 뮤지컬
    • 장소: 대학로 TOM 1관
    • 등급: 17세 이상 관람가 (고등학생 이상)

오늘의 책

시인 김겨울의 첫 시집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왔던 김겨울 작가가 시인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본래 시인일지도 모르겠다. 김겨울 시인은 우화라는 이야기의 형태를 빌려, 담대하게 불가해한 인생의 의미와 슬픔이 가져다주는 힘을 노래한다. 다 읽고 나면, 이 시인의 노래를 가만히 서서 듣고 싶어질 것이다.

수사학이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

‘설득을 위한 기술'로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28가지 대화법을 담았다. 대화와 설득에 번번이 실패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싸우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사가 귀찮은 사람이라면 필독

무기력. 전 세계를 뒤덮은 감정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3년이 결정적이었다. 매킨지 조사로는 세계 직장인 42%가 무기력한데 한국은 51퍼센트로 높은 편이었다. 희망은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가 무기력을 극복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어린이들이 던지는 유쾌한 한 방

궁금한 건 뭐든지 파헤치는 '왜왜왜 동아리' 제대로 사고쳤다?! 반려견 실종 사건을 파헤치던 동아리 아이들, 어른들이 이익을 위해 선택한 일들이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후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세상을 바꿔나가는 개성 넘치고 활기찬 아이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