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꿈에 대해서 (2)

돌봄을 희생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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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연결된 활동이라면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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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임신, 출산, 육아 이후 수면 패턴만 변한 것이 아니라 수면의 내용도 달라졌다. 어찌 보면 잠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에 잠의 내용도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요약하기에는 범위가 넓은 변화인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꿈’이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해서 그런지, 전에도 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다. 내 꿈은 항상 너무 현실의 연장선 같았다. 일과 관련된 자잘한 문제들,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 같은 것이 꿈에서 반복되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자주 꾸었던 꿈은 시험(특히 수학시험)을 보는 꿈,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 불안해하는 꿈이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나 자극이 획일적이고 전형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내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아이를 힘들게 하는 꿈, 아이를 다치게 하는 꿈 같은 악몽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자주 여행을 하거나(물론 여행을 앞두고 짐을 못 싸서 스트레스 받는 꿈도 꾼다.), 어린 시절의 풍경을 만나는 등 좀더 다채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나는 이런 변화의 원인과 의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중요하고 큰 변화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을 살려서 썼다는 소설 『잠』은 사실 잠이라기보다는 꿈에 관한 소설이다. 꿈을 삶 안으로 지나치게 끌어들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꿈에 관한 쉽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자크의 두 번째 생일날, 카롤린은 깊이 잠이 든 아들 곁에서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접했다.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영원의 틈들을 포착한 그는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잠시 머물다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전율한다.” 이 수가 그녀는 지금까지 알려진 잠의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32쪽)

 

“소설과 시, 그림, 그리고 음악은 너 자신만의 꿈을 요리하기 위해 필요한 최상의 재료들이야. ‘신선한’ 재료들이지.” 카롤린이 아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TV는 정반대라서 보면 안 돼. 패스트푸드와 똑같아서 ‘씹을 필요도 없는’, 지나치게 인공적인 맛이 가미된 꿈밖에 꿀 수 없게 해. 너의 창의력이나 미학적 감각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원초적 감정만 일깨울 뿐이지. 네 꿈속에서는 너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야지 절대 남의 것을 베끼면 안 돼. 이것을 네 꿈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해.”(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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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나 자신의 수면 경험만이 아니라, 아이의 수면 경험 또한 ‘잠’에 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시다시피, 우리 딸은 신생아 시절부터 ‘잠’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았다. 재우기가 어려웠고, 자주 깼고, 자기 전에 한참을 울었다. 사람이 잠을 잘 자는 것이 놀랍고도 감사한 능력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스스로 잠들 수 없다는, 잠을 ‘재워줘야 하는’ 것이라는 충격적일 정도로 생소한 생각을 아이를 기르면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인간과 인체의 신비를 마주한 느낌이랄까.

 

그 덕에 나는 오래 전 힘겹게 읽었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반 100쪽을 조금은 이해(납득)하게 되었다. 잠들기 전의 두려움과 불안, 무서운 꿈 등에 대해 작가가 왜 그렇게 긴 페이지를 할애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20년 묵은 의아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달까. 또 의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해서 잠을 “안의 섬”이라고 불렀던 하이데거나, 잠, 출산, 공부 등이 ‘자아’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이라고 통찰한 레비나스의 타자론, “우리는 매일 아침 죽음에서 깨어난다.”고 했던 다이앤 애커먼의 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벽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재탄생, 새로운 출발이라는 핵심적인 뜻은 변하지 않는다. 새벽을 맞는 와중에도 익숙한 일상과 근심걱정이 몰려들며 자기 좀 보라고 떠들긴 하지만. 깨어나는 동안 우리는 몽롱한 상태와 명료(이 말에도 빛[明]이 들어 있다.)한 상태를 오간다. 아침마다 이 문턱을 넘으면서, 우리는 세상 사이를 넘나든다. 정신의 절반은 안을 향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점점 밖으로 하며 깨어난다.( 『새벽의 인문학』 10쪽)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거나 연결하는 잠과 꿈의 세계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철학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와 닿았다. 잠이 어떻게 의식의 바깥을 만듦으로써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관한 멋진 설명들은 너무나 많아서 다 언급할 수도 없을 정도다.(다 읽을 수 없을 정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느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잠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우리 자신, 그 자체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잠과 양육이 비슷한 면이 있는데, 사실 ‘의식’이라는 측면에서 둘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 보인다. 또 양육이 잠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잠이 양육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처럼 성과주의적이고 생산지향적인 사회에서 ‘잠’은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인간의 (비)활동이기도 하고, 또 취약계층일수록 가장 많이 포기하게 되는 (비)활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돌봄이나 양육과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잠이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연결된 활동이라면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닌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돌봄을 희생시키는 사회가 그런 것처럼 잠을 희생시키는 사회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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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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