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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작곡가와 모차르트

<음악저널> 8월호 NOW AND FUTURE AI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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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으로 인공지능이 예술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개성을, 인간 또한 인공지능에게 부여할 수 있느냐에 문제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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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펼쳐진 ‘인공지능’ 바둑기사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한 이벤트였다. 바둑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반향이 더욱 컸다. 바둑은 인류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놀이이자 동양의 전략적 사고와 철학이 축적된 지혜의 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공지능이 바둑판을 정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시 말하면 인공지능이 수천년 축적된 인간의 지혜를 압도할 수 있는가와 동일한 물음이었다.


이미 2015년 10월 알파고는 프로 바둑 기사와의 대국에서 승리한 바 있었다. 또한 서양의 체스에서는 ‘딥블루’가 이미 1997년, 최고 수준의 프로 기사를 꺾은 바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5번의 대국에서 4승 1패로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을 압도했다. 또한 알파고는 올해 5월, 역시 최고의 프로기사 중 한 사람인 중국의 커제 9단의 대국에서도 3연승을 거뒀다. 알파고의 승리 이후, 우리 사회는 한동안 일종의 ‘인공지능 포비아’(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보통 기술과 기계의 발전으로 인간이 도태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 증기기관과 방직기가 많은 직조공들을 비참한 상태에 빠뜨렸듯이, 컴퓨터 기술과 인공지능 또한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뒤흔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두려움은 오히려 무엇이 기계에 의해 대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다시 말해 무엇이 진정한 인간의 능력인지를 되묻고 성찰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 고용정보원은 2020년 이후 단순 반복업무는 자동화로 대체되고 사람은 감성적 능력과 소통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직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다시 말하면 감성과 고통의 기능은 기계화로도 대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AI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 본연의 능력인 감성과 소통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알파고-이세돌 대국이 있은 직후인 2016년 4월, 발간된 과학기술 잡지 <퍼퓰러사이언스>에는 ‘알파고는 AI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게재되었다. 이 글에서 이인식 지식문화연구소장은 알파고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AI가 아닌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정한 의미의 인공 지능은 문제해결능력, 학습능력, 지각능력, 자연어이해능력, 자율성 등 5가지 능력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 능력 중 학습능력에만 국한된 연구의 산물이다. 즉 인간의 뇌가 수행하는 복잡한 일 가운데 일부만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인식 소장은 바둑이 아닌 스타크래프트 대결에서는 알파고의 패배를 점쳤다. 이는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알파고-이세돌 대국 승패예측 설문에서 69%가 알파고의 승리를 점쳤던 것과는 다른 판단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바둑과 달리 손가락의 감각과 순간적인 직감, 즉 신체화된 감각이 보다 더 많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신체적 감각이 차별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둑에는 모든 경우의 수를 빠르게 분석하는 알파고가 우위에 설 수 있었지만, 신체와 뇌 사이의 역동적인 조합이 필수적인 다른 활동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알파고 뿐 아니라 AI 연구 일반에서도 감정, 무의식 등은 배제되어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여러 논의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만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음을 알려준다. 특히 예술 분야와 같은 인간의 창조활동은 여전히 인간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인간성의 무궁무진함


2016년 8월에는 그런 기대감을 확인시켜 주는 공연이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벌어졌다. 경기필하모닉은 ‘모차르트 vs 인공지능’이라는 제목으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했다. 곡목을 알려주지 않은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한 후 인터미션 때 어느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를 스티커로 붙이도록 한 것이다. 이 블라인드 테스트는 모차르트의 원작과 인공지능이 모차르트풍으로 작곡한 곡 가운데 어떤 곡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로 행해졌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높아진 관심 때문인지 이 날 공연에는 빈 좌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관객이 찾아왔다.


필자는 이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지휘자 성시연과 경기필의 연주는 단정하면서도 명징했고 두 곡 다 모차르트스러운 요소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월’은 모차르트 음악을 재료로 하여 결과물을 산출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필자는 모차르트의 곡과 인공지능의 곡을 구분할 수 있었으며 로비에 마련된 투표란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후 발표된 결과에서는 514대 272로 모차르트의 원곡이 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이비드 코프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월’의 곡은 모차르트 음악의 여러 패시지들을 재료로 하여 조합해 낸 작품이었다. 이 곡은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모차르트의 소리를 잘 들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모차르트답지는 않았다. 곳곳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모차르트의 악구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과하고 경직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구성적이어서 모차르트다운 흐름과 어조, 작법 상의 개성을 들려주지는 못했다.


반면 함께 연주된 모차르트의 ‘교향곡 34번’의 1악장은 단순히 경우의 수들의 조합을 뛰어넘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일관성 속에서도 드문드문 나타나는 의외성, 무엇보다도 감정을 다뤄나가는 작곡가의 의지 등을 들려주었다. 이는 결국 모차르트라는 한 인간의 ‘성격’으로 표현될 수 있는 특성이다. 에밀리 하월은 모차르트의 일부 악구를 활용할 수는 있었지만 모차르트의 ‘성격’ 자체를 모방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 인공지능이 예술가의 독특한 말투와 몸짓, 특정한 표정과 습관, 그리고 미묘한 감정 등과 같은 개성적 영역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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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역의 가치


같은 날 경기필은 코리안심포니 상임작곡가인 김택수의 신작 ‘숨(Sum for Orchestra)’을 세계초연 했다.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작곡된 이 곡은 기하학적 컨셉과 음향적 밀도를 설정한 뒤 컴퓨터가 자동으로 음과 리듬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부분적으로 인공지능이 작곡에 참여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곡가 김택수와 인공지능이 협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에밀리 하월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었다.


모차르트의 악구들을 형식적으로 조합한 전자의 경우와는 달리 ‘숨’에는 김택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작곡의 방향, 즉 목표가 정해져 있었다. ‘포물선’’성운’’적정’’점찍힌’ 등의 제목이 벡터(Vector)라든지 분산, 중화 등과 같은 수학 및 과학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지라도 이미 작곡가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의도한 음 현상을 반영한다. 개념을 음으로 치환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창의적 사고의 전형이다. 서로 다른 영역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영역전이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장르에서도 이러한 영역전이적 사고는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어 슈페르트는 괴테의 시 <마왕>을 읽고 격렬한 말발굽 소리를 피아노의 수직화음 연타로 표현해 냈다. 두 가지 다른 물리적 실체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유사성을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있을까. 슈만은 하이네의 시 <원망하지 않으리>에 들어있는 반어적 의도를 읽어내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성악의 노래 아래 격렬한 원망을 토로하는 피아노 반주를 달아놓았다. 이러한 반어의 효과를 인공지능이 흉내낼 수 있을까. 김택수 작곡가의 곡에서 아직 인공지능은 작곡가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수행할 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김택수는 이미 관객들에게 전하고픈 음악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곧 그의 개성이자 그의 성격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러한 창의성과 상상력의 실현을 위해 작곡가 자신이 적합한 표현수단을 스스로 선택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 구체적인 표현을 일부 인공지능에게 맡긴 것뿐이다. 이 경우에 작곡가의 개성은 여전히 작품 속에 나타난다. 아마도 이 때문에 김택수는 스스로 쓴 악곡해설에서 ‘인간과 로봇의 결정적인 차이는 작곡을 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고 언급하였을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아직 예술가 자신의 개성을 본뜨지 못한다. 그의 개성이란 단순한 경우의 수의 조합이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그의 생득적 특성과 후천적 경험, 예술가로서의 의지,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 영성 등이 함께 작용하여 생겨난 일관성 있는 정신이다. 결국 앞으로 인공지능이 예술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개성을, 인간 또한 인공지능에게 부여할 수 있느냐에 문제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 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따져보고 기술이 가져올 부작용을 염려한다. 음반이나 DVD가 극장을 황폐화 시킬 것인가부터 일렉톤은 오케스트라를 도태시킬 것인가 등이 그러한 염려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 기술의 발전이 오페라 세트를 간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하여 오페라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처럼 엘렉톤(야마하에서 제조한 최첨단 디지털 악기로, 생생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구현이 가능하다) 또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협연을 하기 어려운 연주자들을 위한 좀 더 저렴한 연습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AI 또한 단순 작업으로부터 예술가들을 해방시켜 보다 새로운 창의성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AI시대에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를 예측해 보는 것, 그리고 AI와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 공존, 협력할 수 있을지를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글 나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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