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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만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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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 활주로에 닿는다. 여자들이 가방 이곳저곳에서 히잡을 찾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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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을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이방인에게도 환하게 웃어주던 너희들 덕분이야.

부디 비겁하지 않은 남자가 되길 바라며…

 

 

그놈의 히잡 때문이다

 

출국 심사를 받는 동안에도 ‘환대’라는 단어의 실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테헤란일 거라며 혼자 웃음 지었다. 반면 그 여자는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머리에서 히잡을 벗어 던지고는 ‘아주 지긋지긋했노라’고 ‘다시 오자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를 놨다. 우리 두 사람이 한 도시를 달리 추억하는 것은 그놈의 히잡 때문이다.

 

여행 중에는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험을 종종 하지만 테헤란은 급이 달랐다. 숫자조차 읽을 수 없는 페르시아어, 변기 옆에 휴지 대신 달린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도꼭지. 거기에 더해 히잡으로 대표되는 남녀 차별까지!

 

모든 것이 낯설어 결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던 테헤란을 ‘친절한 사람들’이 구원했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 중 둘에 하나는 ‘웰컴 투 이란’이라고 인사해 주고, 열에 하나는 여행 중 위험한 일을 당하면 주저 말고 연락하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이쯤만 해도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친절함에 고마운데 백 명 중 하나쯤은 ‘오늘 저녁, 너를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기요. 우리 초면이잖아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현관을 두드렸다. 일가친척이 모두 나와서 자기 동네에 찾아 주어 고맙다며 극진히 맞이해 줬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다시 찾아온 것처럼 ‘반갑네, 친구’하고는 포옹으로 인사한 뒤, 함께 춤을 추고, 음식을 함께 나눴다. 그들의 환대에 취해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사람들은 없다’고 그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히잡을 치켜올리던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것은 ‘너도 이걸 써봐야 그런 말을 쉬이 못 할 텐데’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테헤란에 머무는 동안 이방인을 극진히 맞이하는 그들의 친절함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그 여자는 남성들에게서 여성 전용칸을 지키기 위해 이 도시의 여자들과 함께 소리를 질러야 했고 복장이 단정하지 않은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염산 테러를 걱정해야 했다. 테헤란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도 뭔가 찝찝했지만 이 고마운 사람들을 놓칠까 봐 그 여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내가 이곳 사람들의 환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던 것은 고작 남자라는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성별도 특권이 될 수 있어서 더운 날씨에도 히잡으로 머리를 감싸야 할 필요가 없고, 엉덩이를 가릴 수 있는 긴 상의를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 내가 그 여자를 위한답시고 ‘그래도 사람들은 좋잖아’하며 부조리를 옹호할 때마다 얼마나 얄미웠을까?

 

우리 두 사람이 테헤란을 달리 추억하는 것은 그놈의 히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 도시를 ‘환대’의 실체라 여길 수 있었던 것은 히잡을 쓰지 않아서도,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비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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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색색의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넘긴 이란 여성들을 볼 날이 올거야.

그리고 저 천조각 속에 가려진 그들의 아름다움까지도.

 

 

히잡 때문이 아니라고

 

페르시아의 설화로 알려진 <아라비안나이트>. 셰에라자드가 천 일 동안 왕에게 들려줬던 기상천외한 이야기만큼이나 테헤란은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많은 사연이 담긴 도시이다.

 

비행기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 활주로에 닿는다. 여자들이 가방 이곳저곳에서 히잡을 찾아 쓰기 시작한다. 준비해 둔 스카프를 수화물로 보낸 터라 급한 대로 입고 있던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썼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자를 쓴 사람은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이 나의 이상한 행색을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그 남자 뒤에 숨는다. 반면 남자는 시내까지 타고 갈 택시 비용을 대신 흥정해 준 이란인이 무척이나 고마운지 기분이 한껏 들떠 있다.

 

자동차 수리 공장으로 가득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바깥은 전부 남자들 세상이다. 호텔 로비에 나섰다가 또다시 노골적인 시선에 갇혔다. 집 외에 어떤 공간에서도 히잡을 벗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호텔 스텝들과 수다를 떨고 온 남자가 자기도 여기 사내들처럼 수염을 길러보면 어떻겠냐고 거울 앞에 서서 묻는다.

 

지하철을 탔다. 평일 대낮인데도 출퇴근 시간 2호선이 떠오를 만한 인구밀도다. 열 량이 넘는 공간 중 ‘한 칸 반’ 만이 여성 전용이다. 남편과 동행한 여자는 남성 칸에 함께 오를 수 있지만 남자들로 가득한 지옥철에서 끈적한 눈빛을 견디느니 좁은 여성 칸으로 가는 게 낫겠지 싶다. 그러나 지하철의 80% 이상이 자신들의 것이건만 그것도 모자라 여자들의 구역을 넘본다. 고얀 놈들! 그 남자는 속도 모르고 지하철에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연락처를 두 개나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길을 걷는다.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코에 반창고를 붙였다. 맨살이라고는 얼굴과 손만 드러낼 수 있는 거리에서 얼굴에 붙은 하얀 이물질이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란인은 본래 크고 높은 코를 가졌다. 하지만 정작 콧대가 낮고 코 망울이 작아야 미인으로 인정받는다. 밖으로 내보이는 신체 부위가 한정적이니 화려한 화장이나 수술로 얼굴을 치장한다. 히잡 아래에서 작은 코가 더 예뻐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 아니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미’를 추구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이란 여성에게는 얼굴밖에 없다. 남자는 수술했다는 걸 비밀로 하지 않고 저렇게 밖에 나다녀도 되니 좋은 거 아니냐고 맑은 얼굴로 되묻는다.

 

이란은 미국과 유엔 등의 경제 제재 해제 조치 이후 신흥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4위의 산유국이자 세계 2위의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미래가 무척이나 밝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이 감옥 없는 쇠창살에 사는 이란 여자들의 삶과 자유의 간극을 좁혀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남자와 내가 이란을 추억하며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의 간극이 메어지거나 좁혀질 수 없는 것처럼.

 

왕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살벌한 상황에서 셰에라자드는 탁월한 말솜씨 덕분에 매일 아침 사형이 유예되었다. 하지만 이란의 여성들은 종교와 남자라는 절대적 권력 앞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지독한 굴레를 아직 벗어날 수 없다.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도시로 주저 없이 테헤란을 꼽지만 나는 여자이기에 이란을 추억의 나라 어디쯤으로 묻어두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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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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