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북해도의 봄 맛

하루 한 상 – 스무 번째 상 : 여행 더하기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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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그러니까 일본 홋카이도를 처음 만난 건 작년 6월 초 신혼여행 때였다. 가깝고 시원한 곳을 알아보던 우리에게 이곳은 딱이었다. 면적은 남한 정도지만 인구는 500만 정도로 한산하고 초록색 자연이 넘실대는 북해도. 그때 5박 6일의 시간은 부족했고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가야 했다.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부른 걸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 스무 번째 상은 여행 더하기 일상.

위로의 삿포로 

 

공항에서 삿포로로 향하는 기차에 앉아 보는 창밖은 봄 그 자체였다. 벚꽃은 끝물이었지만 뒤이어 핀 튤립, 잔디 꽃, 라일락은 한창이었다. 연두색 잎사귀들도 넘실넘실 반가운 풍경. 삿포로 역에 내려 1년 전 그때를 떠올렸다. 묵었던 호텔, 걸었던 공원. 그대로다. 겨울이 길고 추운 곳이라 따뜻한 봄과 햇살을 모두들 만끽하고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우리에겐 쌀쌀하지만 가벼운 옷차림으로 멋을 낸 사람들. 더운 지역만 다니느라 봄을 놓친 나에겐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날씨였다.


그리고 숙소 도착. 사 먹는 밥이 물린 터라 주방 이용이 가능한 곳을 찾아봤다. 다행히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5일 동안 근처 슈퍼마켓을 식재료 공급처 삼아 열심히 밥을 해 먹었다. 쌀밥, 된장국, 고기반찬, 야채 절임으로 한 상을 차리기도 하고 파스타와 연어구이의 조합으로 풍성하게 즐기기도 했다. 사 먹는 밥은 몸이 편하고 해 먹는 밥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입안 가득 갓한 따스한 밥을 우물거리니 우리 집 식탁 앞에 앉은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해진다. 잘 먹으니 감기도 며칠 만에 똑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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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오도리 공원의 봄

 

 

따르릉! 두루 돌아보는 북해도 맛 여행

 

이번 북해도행은 즉흥적이었다. 지난 4월 말 히말라야 트레킹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타토파니 온천에 발을 담그면서 말레이시아 다음엔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와중. 남편 왈 “북해도 자전거 여행 어때요?”라고 했고 별 고민 없이 동의를 한 것이다. 삿포로에 도착해서 준비를 시작했다. 장기간 쓸 거면 사는 게 나을 것 같아 큰마음 먹고 자전거 2대와 여러 장비를 장만했다. 막상 떠나는 날이 되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가보자! 회색보다 초록색이 더 많아질 무렵. 반나절 달렸을까 몇 시간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넘어졌다. 다리와 팔에 멍과 상처를 남기고 근처 숙소를 찾아갔다. 우연히도 온천료칸이었다. 북해도 온천에 몸을 담그면서 지난 히말라야 온천에서 한 결정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니 “하루만 더 가볼까”라는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2주일째 자전거로 북해도를 다니고 있다.


자전거로 여행하니 느리게 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하나하나 천천히 일상처럼 여행할 수 있는 것 같다. 각 고장의 특산품도 맛보고 유명하다는 맛 집도 가보는 즐거움의 일상 말이다. 소라치 지역인 후라노의 와인과 치즈, 양파 그리고 아스파라거스. 곡창지대로 유명한 토카치 지역 중심도시인 오비히로의 부타동과 소바. 남부 해안도시 우라카와에서 맛본 사시미 정식 등을 맛보면서 몸으로 그 지역의 기후를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내가 먹은 걸 연료 삼아 달린다는 생각에 맘 편히 먹고 있다. 북해도가 배경인 영화 『해피해피 브레드』『해피해피 와이너리』를 생각하며 따르릉 바퀴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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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노 게스트하우스에서 해 먹은 파스타. 파머스 마켓에서 사온 토마토소스와 아스파라거스를 가득 넣었다.

와인과 치즈도 각각 와이너리와 공방에서 직접 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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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히로의 명물 부타동과 깔끔했던 소바. 토카치 땅에서 자란 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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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우라카와 항구 옆 작은 밥집에서 먹은 사시미 정식. 싱싱하고 푸짐한데 저렴했다.

 

 

돌고 돌아 그리고 여기에 


여행이 길어질수록 일상에 대해 생각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일상이 주는 ‘익숙’과 ‘편안’이라는 감정이 새삼 부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생활인으로 자주 느꼈던 감정은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지루함’이었다. 똑같은 하루, 일주일, 한 달, 계절, 일 년이 돌고 돌아 그렇게 인생을 살아버리는 것.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그렇게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여행으로 안내한 것 같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에서 나온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나버린 엄마의 편지가 생각난다.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그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그런 거면 조금 낫겠지. 아니, 그것보다도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은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같은 삶은 사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젠 안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북해도의 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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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는 돌고 돌아 결국 우리를 태평양으로 데려다 주었다.

 

 

(부록) 남편의 상: 다시 또 돼지


안녕하세요. 매일매일 불꽃같이 페달을 밟고 있는 남편입니다. 달리고 달려 북해도의 중앙 평원 지대, 오비히로에 오니 이곳엔 부타동이라는 돼지고기 덮밥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양념된 고기를 숯불에 구워 밥에 얹어주는 단출한 덮밥입니다. 호텔 조식으로 또 부타동이 나왔습니다. 돼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저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삿포로에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날, 장을 보러 가서 집어 든 것도 돼지고기였습니다. 일본 음식 흉내를 내보겠다고 돼지고기 스키야키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마시다 남은 와인과 마늘, 간장에 돼지고기를 재우고, 파와 양파 당근 그리고 숙주를 넣어 볶아보았습니다. 끝으로 미소 된장을 살짝 비벼보았습니다. 데친 양배추와 알싸한 맥주를 곁들였습니다. 쌀쌀한 북해도의 밤공기와 제법 어울리는 한상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오비히로의 호텔 라운지에는 표지만 봐도 익숙한 만화책들이 쭉 진열되어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슬램덩크』. 얼마 전 강백호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2학년 야구 선수가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나 봅니다. 1권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돼지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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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스키야키 준비, 재우고 남은 와인은 요리사의 전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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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전야, 든든한 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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