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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며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베스트 플레이어』 이세돌은 과거와 다른 바둑기사가 되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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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마음(!)과 예상 밖의 패배, 그것도 전력을 다해 붙었는데 미지의 강적을 만나 연패를 당하며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이세돌 9단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도움이 될 책을 두 권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한 주간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세돌이 ‘1패’ 정도 하는 서비스를 하면서 쉽게 알파고를 이길 것이라 누구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첫 판이 끝난 후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전염병 바이러스가 ‘공포’와 함께 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판에서 이세돌 9단이 전력투구를 한 것이 분명했는데도 매번 패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공포는 현실에 가까이 온 것으로 실감을 하게 되었다.

 

영화 <터미네이터><매트릭스>가 선사하는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수군거림은 영화 팬으로부터 나왔다. 공부와 스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알파고는 구글이란 아빠를 둔 금수저에 하루에도 만 번이 넘는 대국을 쉬지 않고 두는 노력파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IBM이 만든 체스 컴퓨터 딥블루(Deep Blue)는 1996년 4대 2로 인간에게 패한 후 1997년 1년만에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파스파로프를 꺾었다. 20년이 지난 2016년 알파고는 훨씬 경우의 수가 많아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던 바둑에서 세계 4위 이세돌을 꺾었고, 세계 1위 커제가 와도 이세돌과 다섯 판을 둔 다음이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겨우 1주일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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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폭풍 성장(!)을 보게 되는 인간 본연의 심리

 

알파고의 마음(!)과 예상 밖의 패배, 그것도 전력을 다해 붙었는데 미지의 강적을 만나 연패를 당하며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이세돌 9단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도움이 될 책을 두 권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알파고부터.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다. 알다시피 테드 창은 ‘당신 인생 이야기’로 유명한 SF소설가다. 내놓는 소설마다 독창적인 설정과 치밀한 전개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데, 특히 나는 그의 소설들이 SF적이면서 비유적으로 인간정신세계의 정수라 할 만한 측면을 SF의 뼈대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서 인문과학서적들보다 더 많은 통찰을 줬다.

 

소설은 중단편 수준으로 짧다. 가까운 미래. 주인공인 애나는 동물원에서 동물 조련사로 일하고 있다가 벤처 게임 회사의 블루감마에 취업을 했다. 프로그래머나 기획자도 아닌 그녀에게 맡겨진 일은 바로 회사의 상품인 가상 애완동물인 디지언트를 조련하는 일이었다. 블루감마는 가상인터넷 세계인 데이터어스(Data Earth)를 창조하고 다양한 종류의 가상애완동물을 판매해서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계획했다. 신생아 수준으로 태어난 디지언트들은 주인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걸음마를 하고, 언어를 배우고, 세상에 대해 배워나간다. 이 과정을 애나가 함께 해내가면서 그녀는 보람을 느끼고 실제 그녀가 동물원에서 갓 태어난 새끼를 키우고 조련하던 것과 거의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시장 환경이 변화하면서 회사는 데이터어스를 포기하도록 결정을 한다. 이에 애나는 디지언트를 독자적으로 키우면서 회사가 포기한 서비스를 자생적으로 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든다. 그러던 중 애나가 키우는 디지언트는 서서히 자라나 자신만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되고, 결국 애나의 품을 떠나 더 먼 곳으로 넘어간다. 이는 마치 작년 개봉했던 영화 <그녀(Her)>에서 사만다가 진화해서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던 주인공을 떠나는 결말과 유사하다.

 

인공지능(AI)은 이런 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해나가고, 아기가 자라나 10대가 되고, 어른이 되어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것이 심리발달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듯이 발전의 끝은 독립으로 결말을 맺는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의 마음은 아마 애나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알파고의 물리적 나이는 두 살 남짓이다.

 

알파고는 물리적 하드웨어가 있는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형 학습능력을 가진 소프트웨어로, 스스로 대국을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전략을 개발해내면서 알아서 진화해나가고 있고, 발전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버지 하사비스도 모른다. 그래서 이세돌 9단과 대결을 할 때 겸손한 제스추어인지 모르지만 승리에 대해서 예측하지 못했고, 실제 알파고가 승리를 하자 예상 못한 결말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하사비스와 딥마인드 팀과 알파고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과 같은데, 인간의 성장의 끝과 사멸의 과정이 정해져 있는데 반해, 인공지능은 어디로 뻗어나가서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차이다. 거기서 우리는 공포를 느끼는지 모른다. 자라나 자기 애비의 목을 노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 본연의 불안의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알파고의 마음은 가늠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하사비스의 마음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판후이를 훌쩍 넘어서서 난공불락의 완전체로 거듭난 알파고의 폭풍 성장(!)을 보게 되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이 짧은 소설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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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책은 매슈 사이드의 『베스트 플레이어』다. 저자는 영국 BBC방송국의 스포츠 해설자이자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면서 동시에 영국 탁구 대표선수를 지낼 정도의 경험이 있는 선수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선수들이 어떻게 최고의 스포츠 선수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 심리에 대해 취재하고 기존의 연구들을 모아서 『베스트 플레이어』란 책을 펴냈다. 이 글을 쓰는 일요일 저녁, 이세돌 9단은 3패 끝에 첫 번째 승리를 해냈다. 3번의 무력한 패배에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기보를 반복해서 복기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전략을 바꿔서 알파고를 공략했던 것이 승리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때 이세돌 9단과 같은 세계적 플레이어들의 마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베스트 플레이어』에서는 샤킬 오닐,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와 같은 세계적 운동선수들의 사례를 통해 제시했다. 먼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등장한 나이키 광고에서,

 

나는 9000개 이상의 슛을 실패했다.
거의 300개의 게임에서 패배했다.
승리에 쐐기를 박을 26개의 슛을 놓쳤다.
나는 아주 많은 실패를 거듭한 삶을 살았다.

 

라는 내레이션을 한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선수인 조던이 광고에서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를 고백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조던은 “나는 정신력과 심장이 내가 지닌 어떤 신체적 강점보다도 강하다는 말을 해왔고 이를 끝까지 믿었다”라고 실패를 극복한 과정을 설명한다.

 

이세돌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엄청난 벽을 만났다고 좌절하기보다,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을 만났다고 여기고, 패배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더 큰 성장을 위한 계기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가진 것이다. 더욱이 부진한 경기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을 제안한다.

 

1단계에 자신의 믿음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점’을 찾아낸다. 2단계에는 이전 시합에 드러난 부정적인 면을 통합해서 약점을 강화하는 훈련을 한다. 3단계는 다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는 방향으로 초점을 바꾸어 다음 게임에 대한 자기 의심을 사라지게 한다. 이런 과정을 단계적으로 잘 거치면서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비록 비이성적일지 모르지만 유지하는 것이 베스트 플레이어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뛰어난 선수와 평범한 선수를 구분 짓는 점이 바로 이런 긍정적 믿음을 증가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낙관적 태도로 몰입해내는 일종의 ‘기량 플라시보’가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의 패배가 줄 수 있는 부정적 면을 억누르고 감정적 충격을 차단하며 다음 게임에 몰두 할 수 있으며 자기 기량 이상을 해낼 수 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때 감정이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이와 같이 감정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실제 능력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 이를 잘 활용해내는 것이 역사적인 베스트 플레이어들의 특징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이세돌과 연관 지어 어떻게 맺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었다. 4연패가 된 결과를 갖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류의 글을 쓰는 것이 솔직히 설득력이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히도 이세돌이 1승을 해냈기에 한결 마음 편하게 글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을 거친 후에 이세돌은 과거와 다른 바둑기사가 되리라 예상한다. 이런 압박과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고 또 이를 극복하고 이겨낸 경험을 해낸 인간이 지구상에 몇 명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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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저/김상훈 역 | 북스피어
테드 창은 이처럼 SF 속 인공지능 로봇과 현실 속 기술의 발전 양상에 괴리를 느꼈다.『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그가 느낀 괴리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의 다른 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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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플레이어 매슈 사이드 저/신승미 역/유영만 해제 | 행성B온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탁구 국가대표 선수이자 금메달리스트이다. 평범한 소년이었던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국 최고의 탁구선수가 되었는가를 들려준다. 아울러 축구, 골프, 테니스, 육상, 체스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저자가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베스트 플레이어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면밀히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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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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