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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을 쓰는 일

사랑은 그토록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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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과 욕망 사이, 고요와 열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연애소설이 흥미로운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있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근사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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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내게 고백을 했다. "엄마, 나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생겼어." 그러면서 엄마도 짝사랑을 해 본 적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기분이 어땠어?" 라며 다시 묻는다.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행복한 마음이 더 커서 괜찮았어.” 하고 대답했더니, 딸아이는 그제야 "응. 나도 알아~" 라며 그 작은 입술로 깊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사랑은 그토록 설레는 일이다.

 

나는 ‘사랑’을 주제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2001년 당시 유일하게 쓸 수 있고 또 쓰고 싶었던 주제였다. 칼럼으로, 에세이로, 라디오방송 대본으로, 그리고 소설로 써 왔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좋았다.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s」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바보 같은 사랑 노래는 이제 충분히 들었고 지겹다고 당신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내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지도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그 바보 같은 사랑 노래들로 채우고 싶어한답니다. 그것이 뭐 잘못인가요.” ‘연애소설’에 대해 나는 같은 말을 하고 싶다. 

 

한데 둘러보면 한국에는 순문학소설, 역사소설, 추리소설, 세태소설, 가족소설 등은 눈에 많이 띄지만, 연애소설 혹은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청춘남녀의 풋풋한 ‘썸’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아닌 정념의 세계로서의 어른들의 짙고 깊은 사랑 이야기 말이다. 당장 퍼뜩 떠오르는 작가는 박범신과 전경린 정도다.
 
사랑은 분명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일진데 소설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작가의 보다 중요한 사회적인 소명이나 책임의식 때문에 사랑을 주제로 쓰는 일이 가볍고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서일까?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들이 포진해있는데 개인들의 사랑은 그에 비해 부르주아적이고 사치스러운 것일까. 혹은 연애나 성에 대한 도덕주의적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기피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들이 보기보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거나 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상상력만으로는 결코 쓸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만은 확실하고 연애소설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이성을 매우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체온이 높은 사람들이어야 하니까.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경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소설은 그 시대의 상식, 도덕, 윤리 같은 것을 재검증하는 의미도 가진다. 상식, 도덕, 윤리는 사회의 규정인 반면, 인간의 마음은 그것들로 통제되지 않으니, 연애소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회통념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다. 사회가 위축되면 개인 간의 사랑도 위축되는 법. 소설을 통해 사랑이 가진 본래의 자유로움에 빛을 비추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어른’의 사랑이라고 해서 에로스적인 이미지로 색안경을 끼고 보면 곤란하다. 어른의 사랑이란, 아주 예전 첫사랑 때 품었던 그 순수한 마음부터, 죽음과 맞닿는 극단적인 열정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의 움직임의 기폭제가 되는 부분을 끌어내서 쓰는 것이다. 잘 생기고 예쁜, 일류대학과 일류직장을 거친 선남선녀가 서로를 좋아하는 이야기 따위가 아니니까(그런 이야기는 소설로 쓸 것도 없다.), 체념과 욕망 사이, 고요와 열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연애소설이 흥미로운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있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근사한 일은 없다. 올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보다 많은 작가들이 연애소설을 써주기를 바라며.

 

 

책소개 

 

은교

박범신 저 | 문학동네

거부할 수 없는 홀림, 그 관능을 좇는 어느 시인의 음악적 살인 인간의 '갈망'을 그려낸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인생의 깊은 심연을 그려온 작가 박범신. 『은교』에 대해 작가는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이라고 소개한다.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저 | 문학동네

독은 독으로 풀고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전경린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이 다시 '사랑'을 이야기한다. 전작 『엄마의 집』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저자는 『풀밭 위의 식사』를 통해 이미 깨어질 것을 알지만 그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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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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