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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연애, 그 찌질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무 날도 아닌 날』 최고운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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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운의 에세이 『아무 날도 아닌 날』 출간기념으로 열린 북토크쇼. 바갈라딘의 사회로 최고운과 서민과 함께 술 한 잔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날, 독자들은 기분 좋게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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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도 아닌 날’이었다.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것 같은 농담 같은 날. 지난 5월 30일이 그랬다면 그랬다. 지나가는 봄날이 아쉽다며 술 한 잔 당기기에도 좋을 날, ‘앨리스’라는 필명으로 ‘주색(酒色)’을 감칠맛 나게 발설하는 최고운과 기생충학으로 뜬 인기 작가 서민이 서울 혜화동 벙커1에서 입담을 펼쳤다. 최고운의 에세이 『아무 날도 아닌 날』 출간기념으로 열린 북토크쇼. 바갈라딘의 사회로 최고운과 서민과 함께 술 한 잔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날, 독자들은 기분 좋게 취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

 

서민 : 30대에 들개처럼 지냈었다. 술 마시고 자고 일어나면 기차역에 있고(웃음). 이 무렵에 최고운 작가가 함께 술을 마셔주면서 격려해줬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최고운 : 스무 살 무렵에 남자는 여자보다 살짝 하등하다고 생각했었다. 동년배 남자들은 유치하고 어려 보였다. 그래서 동년배 남자는 함께 놀기만 하는 존재라고 여겼고 당시의 이상형은 ‘가방끈’ 짧고 얼굴 예쁜 남자라고 말했었다. 그런 때 지적인 매력을 풍기는 서민 작가를 만났고 우정을 쌓았다. 지금은 자주 보지는 못하나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불쑥 연락해도 답을 준다.

 

서민 교수가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대한 리뷰를 남기면서 여성 작가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깨고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의 글쓰기를 응원했다. 서민은 이 책을 읽은 감상이 어떠했으며 최고운 저자는 첫 책을 낸 소회가 어떤가.

 

서민 : 책을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20년 전 『마태우스』라는 소설을 낸 적이 있었다. 절판된 책인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면 부끄러워서 훔치고 싶다(웃음). 그런데 최고운의 『아무 날도 아닌 날』은 20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낸 것 같아서 부럽다.

 

최고운 : 10여 년 전 어딘가에 기고를 해서 첫 고료로 4만 원을 받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온오프에 기고를 꾸준히 해왔다. 책은 온라인에 쓴 글과 달리 종이에 박히는데, 내가 어떻게 책을 써,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그만뒀었는데 출판사에서 타이밍에 맞게 연락이 왔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에 이렇게 책이 나왔다.

 

책을 내고는 기대하지 못한 반응도 벌어진다. 강연도 하게 되는데, 책을 내고 첫 강연에서 화장을 하지 말고 브래지어를 벗자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최고운 : 강연 제안을 받았었는데, 부끄럽고 부족하다고 해서 시도하지도 않으면 영원히 할 수가 없잖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며 강연 요청을 수락했다. 책에는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고 썼지만, 실은 그런 것은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어렸을 때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한국에는 젊은 여성들에게 과하게 집중된 제약 같은 게 있다. 그런 것에서 나를 조금씩 내려놓기 위해 화장에 너무 신경 쓰지 말기로 하고, 브래지어는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을 옥죈다. 속옷을 입지 말고 화장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이전부터 있었는데, 사적인 나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첫 강연에서 그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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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오뎅 바 마담이 되겠다고 저자 소개에 써놨는데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 있나?

 

최고운 : 출판사에서 저자 소개 글을 보내라기에 술과 개와 남자와 일기쓰기를 좋아한다고 보냈더니 출판사에서 난감해하더라. 좀 더 써달라고 해서 좀 더 덧붙인 것이 지금의 소개 글이 됐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나는 늘 술이 생각난다. 이 음식에는 어떤 술이 어울릴지를 생각한다. 장난처럼 ‘술안주 포토그래퍼’라고 썼는데, 누가 진지하게 언제부터 그런 직업을 갖게 됐냐고 묻기도 하더라(웃음). 북유럽의 오뎅 바 마담은 그저 꿈이다. 나는 추운 것을 못 참아서 북유럽에 놔두면 못 살 것이다. 북유럽 음식이 별로인 것 같아서 오뎅 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썼다.

 

술을 꽤 좋아하는데 주량이 어떻게 되나?

 

최고운 : 계속 마신다. 책을 내고 나서 동아일보 인터뷰를 했다. 기사가 나고 이튿날 어머니가 지인과 먼 친척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았나 보더라. 기사에 내가 술잔을 들고 찍은 사진이 나갔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고는 10년 동안 술을 주야장천 마시더니 신문에 났다며 좋아하셨다. 스무 살 무렵에는 소주 7병 정도를 마셨다. 지금은 절반 정도 마시지 않을까 싶다. 컨디션이 좋으면 폭탄주 40잔 정도는 먹기도 하고. 술집에 가면 메뉴판을 펴서 주류는 위에서부터 한 병씩 시키기도 하고 달력에 술 먹은 날을 동그라미를 치기도 했었다.

 

서민 : 아버지가 소주 10병 정도 드셨다. 그런데 나는 소주 2병을 마시면 잔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한때 술을 잘 마시려고 체중을 불린 적도 있었는데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더라. 최근 아내와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책을 보면 최고운 저자의 금주 결심도 나오는데, 실제로 술을 끊어보기도 했나?

 

최고운 : 술을 끊어본 적도 있다. 세달 정도? 중간 중간 휴지기를 주는데 이 기간에는 일주일에 세 번은 무조건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하게 잘 마시기 위해서(웃음). 너무 술을 마셨다 싶을 때는 금주 결심을 할 때도 있다. 지금까지 마신 술값을 계산해 보면 나는 중형차 정도를 뽑고도 남지 않았을까 싶다.

 

술 먹고 진상 짓도 했을 것 같은데.

 

최고운 : 『아무 날도 아닌 날』은 내 얘기인데 이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남는 건 없는데 웃으며 재밌게 넘겼다거나 찡하게 남았다는 독자도 있었다. 목차만 봐도 부럽다는 분도 있었고 다양한 감상이 있었다. 일단 내 얘기이지만 실수담 같은 것은 재밌게 포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술 아닌 연애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겠다. 연애를 끊임없이 하는 원천이 있다면?

 

최고운 : 감정을 숨기거나 묵혀 놓지 못한다. 내가 속마음을 숨기는 ‘포커페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연애는 특히 그게 안 돼서 뒤끝이 없다. 연애가 끝나면 나도 힘이 든다. 그래서 바닥을 쳤다가도 곧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다음 연애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보인다. 내가 평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취미 등이 있으면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소개팅은 한 번도 해보질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소개팅이나 선은 거의 외모와 스펙 중심인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술, 개, 여행 등에 주목한다. 그런 것에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발견한다. 어렸을 때는 남자를 하등한 존재로 봤다. 스무 살 무렵에 아우디를 타고 다니던 남자가 내게 대쉬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차는 네 아버지 것이지 네 콘텐츠가 아니라며 튕겼다. 지금은 그것도 네 콘텐츠라며 받아들였겠지만(웃음).

 

연애는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책에 연애의 끝에 대한 기준을 말하기도 했다.

 

최고운 : 지나온 세월이나 시간을 놓는 것은 힘들다. 나는 상황에 따라 결혼했다가도 이혼할 수도 있고 그 이후의 삶도 있다고 보는 사람이 삶에 더 충실하다고 본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따지고 들면 모두 기회비용인데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가 그것을 멈추지 못하고 미련이 남아서 질질 끄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이 떠나거나 변한 것은 숨길 수 없다. 그만 만나자는 사람에게 매달려도 봤다. 그거라도 안하면 후회가 더 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매달렸다가 훌훌 털고 기운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쁜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다. 여자든 남자든 자기 팔자는 자기가 꼰다. 나쁘고 이상한 남자한테 꼬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서민 교수는 결혼을 했는데, 결혼은 연애와 어떤 다른 지점이 있을까

 

서민 : 결혼은 극한의 인내심이 필요하다(웃음).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애인보다 더 편한 친구여서 결혼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결혼은 자기랑 맞는 사람과 하면 학대나 구타 등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웃음). 그런데 결혼하지 않으면 남들이 딱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면 결혼도 해보는 것도 좋다(웃음). 
 
연애할 때 꼭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최고운 : 나는 욕을 너무 잘 하는데(웃음) 나처럼 욕하는 남자를 만나진 않았다. 내가 감정적이고 거친 부분도 있지만, 운전할 때 성격이 나오는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를 시작할 때 사소한 것에 넘어가는데 헤어질 때 보면 그 사소하다고 여겼던 부분에서 위기가 오더라. 무엇보다 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민 : 공무원과 초등학교 교사가 좋다는 남자는 피하는 게 좋겠다. 그건 맞벌이는 좋지만 집안일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거든(웃음). 가사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데, 집안일을 많이 하겠다는 공증을 꼭 받아야 한다(웃음).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최고운 : 같은 실수를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고 차이가 있다. 물론 똑같은 수렁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반복이라고는 해도 하나는 내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내가 싫다고 한 부분이 자꾸 보이는 것은 같은 실수에 빠진다기보다 애정의 유효기간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 상담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상담하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는데.

 

최고운 : 라디오나 TV 등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의 연애사를 사연으로 보내곤 하는데, 그게 의아하다. 나를 몰라서 객관적으로 말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겠지만 100%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일부 각색하거나 이미 답을 갖고 있는데 확인을 받고 싶은 경우도 있다. 차라리 술을 한잔 마시면서 주변 사람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스무 살 때는 서른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지만 서른이 되니 마흔을 바라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최고운 : 지금 나는 삼심대 후반이라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 때는 서른이면 어른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십대 때 어른이었던 사람은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이었던 거지. 서른이 되니 곧 마흔인데 그 나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 윤여정씨가 한 프로그램에서 스무 살이 남긴 고민에 대해 나도 예순 일곱을 처음 사는 것이고, 너도 스무 살을 처음 사는 것이니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서민 : 삼십대 때는 사십대가 완전 늙은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사십대가 돼도 사랑, 욕망, 아름다움 다 있더라. 오십대도 그런 것들이 나를 기다리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산다. 육십, 칠십 역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책에 세월호 이야기를 넣었다.

 

최고운 : 책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다르긴 한데 그 꼭지는 꼭 넣고 싶었다. 나는 혼자 잘 놀고 즐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연은 생길 수밖에 없고, 어느 날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인데 내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더라. 평범하고 약한 존재끼리 연대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얘기를 넣었다. 

 

“언제나 싫은 것을 찾아내는 데 망설이지 않았고, 적절하게 욕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끔은 모나고 까칠한 성격을 조금은 둥글고 모나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살다 보니 호불호가 확실한 것을 상당수의 사람들이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결국엔 무례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닌가? 모난 돌에 정 맞는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가파르고 험한 길을 만나게 되면 누구든 모난 돌에 발 디딘다.”(122~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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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도 아닌 날최고운 저 | 라의눈
이 책은 실직, 실연, 연애, 섹스의 함정에 숱하게 빠졌다가 다시 기어 나오기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효와 남 탓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현재까지의 저자의 삶을 술과 안주로 축약한 것이다. 여타 에세이들의 흔한 모르는 삶에 대한 가르침이나 교훈 혹은 일말의 깨달음이나 감동 보다는, 언제나 마음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저자의 ‘에로하고 싶지만 코믹한 날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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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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