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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타운 나인틴>의 세 남자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소년을 성장시킨 ‘빨간 책’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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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부터 『체 게바라 평전』, 『코스모스』, 『허삼관 매혈기』와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까지 ‘잘 나가는’ 라디오 PD들의 다양한 독서 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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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PD 셋이 방송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시끌벅적 거친 말과 유쾌한 폭소가 오간다. 마치 탁구 경기를 하는 듯 주고받는 말들이 빠르고 재치 있다.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의 이야기다. 이들의 팟캐스트 이름은 <씨네타운 나인틴>. 팟캐스트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약 2년 전부터는 SBS FM에 <씨네타운 S>라는 이름으로 정규편성 되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방송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넋을 놓고 그저 남자 셋이 모여 정신없이 떠는 수다에 끌려가게 된다. 낄낄거리고, 맞장구를 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라면 이렇게 많은 팬들이 열광하고(저자들도 알만큼 자주 보는 팬들이 있다!), 책을 내고, 여기저기서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이 남자 셋은 흡사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모여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저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베테랑 라디오 PD의 내공이 묻어난다. 지식도 풍부하다. 그야말로 ‘듣는 맛’이 있다.


이들 셋이 자신을 키운 책들, 그 책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책 『빨간 책』을 출간했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부터 『체 게바라 평전』, 『코스모스』, 『허삼관 매혈기』와 보부아르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까지 폭 넓은 이들의 독서편력이 엿보인다. 더불어 이 목록을 따라 한 사람의 일기를 들춰보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책 중에서 권장도서는 한 권도 없었다. 모두 어느 지점에서 지나치게 튀어나온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모범생 친구보다는 삐딱한 친구에게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처럼. 이제 소개할 몇 권의 책들이 바로 그 삐딱한 녀석들이다. (5~6쪽)

 

지난 5월 14일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세 사람이 모여 자신을 키운 책, 그들의 팟캐스트, 현재의 관심사와 사소한 고민들까지 넘나드는 유쾌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시종일관 시끄럽고, 유쾌한 자리였다. ‘빨간’ 책을 쓴 사람들답게 말도 거침없었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내던진 욕설을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 이들의 한바탕 수다를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가 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책을 다 읽은 열일곱 살 소년은 한참 동안 전율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어떤 철학책을 읽었을 때보다 더 강렬한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일종의 축복이었다. 모두가 염원하는 영생의 삶을 이룬 휘스카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는 깨달음!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아마 엄마나 선생님에게 들었으면 달팽이관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을 진부한 교훈이 뼛속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176쪽)

 

먼저 이날 북토크가 진행된 합정 빨간책방에 특별히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등장했다. 그는 마침 이 책이 다양한 책들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를 가지고 읽어보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책을 보고 제일 놀란 건 이 세 분이 지식이었구나, 이 분들이 책을 읽으시는구나 하는 거였어요(웃음). 세 분의 개성을 비교해가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라고 감상을 전했다.
 
이승훈 PD가 이재익 PD에게 먼저 물었다. 가장 말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무엇이었을까? 이재익 PD는 망설임 없이 친구 어머니와 있었던 에피소드(‘금서의 추억 하나’)를 꼽았다.

 

테니스코치 살인사건 이후 나는 <황홀한 사춘기>를 당시 우리 반 부반장 이용* 군에게 넘겼다. (중략) 며칠 뒤 용*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낙담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대사를 꺼냈다.


“재익아, 정말 미안한데. 우리 엄마가 너 좀 보재.”


오, 신이시여! 이놈이 나에게서 넘겨받은 <황홀한 사춘기>(를 포함한 몇 권의 야설)를 엄마한테 들킨 것이었다. (71쪽)

 

이재익 PD는 이어 김훈종 PD의 에피소드 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에 대한 감상도 함께 말했다.


“어렸을 때 램덩크』를 다 가지고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그런 여자와 결혼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무슨 문장을 붙였느냐하면 ‘이제 여러분의 선택은 두 가지다. 토하거나, 욕하거나’(웃음) 그 문장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면 김훈종 PD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일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말했잖아요. ‘어떤 책을 사서 제목과 목차만 읽으면 그 책의 반을 읽은 것’이라고요. 이 『빨간 책』 같은 경우에는 목차만 읽으시면 다 읽으신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목차에 있는 책들을 먼저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김훈종 PD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라고 자신을 설명하면서 “이재익 PD와 비교하면, 제가 1년에 읽는 책이 이재익 PD가 한 계절에 쓰는 책보다 적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직장인인 터라 책을 쓰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것 역시 익숙치 않아 힘들었다고도 전했다.

 

“제 것 빼고는 다 좋은 것 같습니다.(웃음)”라고 말하는 이승훈 PD에 대해 이재익 PD는 ‘어떤 게임이든 상식의 힘은 크다’(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의 에피소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내가 잘 아는 것에 투자하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을 통해 피터 린치는 상식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중략)알 수 없는 최신 기술을 도입하는 회사의 주식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 아는 회사,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파는 회사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이 많이 먹고, 쓰고, 입는 물건을 파는 회사,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놔두고 왜 굳이 자신이 잘 모르는 회사를 연구해서 투자하려고 하는가?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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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를 키운 ‘빨간 책’들


이재익 PD는 20여 권의 소설과 에세이를 펴낸 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 전방위 작가다. 그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나의 경전’이라고 고백하고, 갓 등단해서 만난 젊은 시인과의 술자리를 추억하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 <아빠>를 이야기하고, 나이트클럽 룸에서 『체 게바라 평전』을 읽던 호기 넘치던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한다.


『삼국지』를 사랑해서 중문과에 입학했지만, 중국어를 잘하기는커녕 중국에 발도 못 붙여본 사짜 중국 전문가’라는 수식의 김훈종 PD. 그는 배낭여행에 관심 없던 청년의 피를 확 돌게 만들었던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썸’타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앞둔 열다섯 소년이 발견한 『사랑의 단상』에 관한 난해한 기억을 읊는다.

 

흥미롭게도 이승훈 PD는 강풀의 『26』을 제일 처음 소개하는 작품으로 하면 책을 내겠다고 했고, 협의를 거쳐 『빨간 책』에서 가장 처음 소개하는 책으로 최규석의 『100도씨』를 선택했다.

 

잘못은 저지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에 그 잘못을 어떻게 사죄하고 벌하는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죄와 용서 그리고 화해를 위해 내 나름대로 아주 작은 돌이라도 놓아보고자 이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시공사에서 낸 책에서, 뒤에 내가 이어서 소개할 ‘이 책’을 다룸으로써 그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단죄를 하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아픈 80년대를 치유하는 데 깃털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한한 기쁨이 될 것이다. (11쪽)

 

책은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 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로 구성되어 한 사람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 그 이후의 의식의 흐름이 엿보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재익 PD는 “저는 초, 중학교 때 보던 책을 많이 실었고, 김훈종 PD는 중, 고등학교, 이승훈 PD는 비교적 고등학교, 대학교 이후에 보던 책을 실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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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이재익,김훈종,이승훈 공저 | 시공사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고로 어린 시절 어른들이 추천하는 책이란 무난한 책 일색이었다. 균형 잡힌 가치관을 담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책들. 이른바 권장도서.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권장도서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당연하지, 모범생 친구가 따분한 것과 같은 이치다.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책 중에서 권장도서는 한 권도 없었다. 모범생 친구보다는 삐딱한 친구에게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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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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