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청춘들의 데뷔작
응답하라, 독립영화 ‘될 아이들’
이미 그들은 앞선 몇 년간 독립영화의 발견이었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크게 ‘될 아이들’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방송매체를 통해 더 많은 대중과 설레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_ tvN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전 살짝 긴장하고 있다가 만나서 그 사람의 눈빛, 말투, 행동, 태도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 설렘이 찾아온다. 아주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는 않았지만 속 깊은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독립영화 속 배우들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2008년 <장례식의 멤버>에서 쀼루퉁하게 내민 입술로 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이주승을 만났을 때 설렜다. 데뷔작은 아니었지만 김정훈 감독의 <들개>에서 만난 변요한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청춘의 모습으로 크게 ‘될 아이’ 냄새 풍겼다. 크고 작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천우희는 늘 풋풋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가다 <한공주>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런 점에서 독립영화를 본다는 것과 그 속에 반짝이는 원석을 만나는 경험은 늘 설레는 일이다. 훈훈하고 따뜻하고 아련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응답하라, 1988>에는 샐 틈 없이 촘촘하게 박힌 배우들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는데, 이미 그들은 앞선 몇 년간 독립영화의 발견이었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크게 ‘될 아이들’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방송매체를 통해 더 많은 대중과 설레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다가 대체 저런 아이는 어디서 튀어나왔지 궁금하다면, 그들의 반짝 반짝 빛나는 첫 영화를 되찾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잉투기> 류혜영
까칠하고 다혈질이지만 속 깊은 보라 역의 류혜영은 2013년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통해 데뷔했다. ‘잉여들의 격투기’의 줄임말인 이 영화를 통해 엄태화 감독은 모니터 뒤에 숨어 있지 말고 냉혹한 현실로 뛰쳐나오라고 청춘들을 다그치고 격려한다. 류혜영은 주인공을 현실로 끌어내는 영자 역할로 등장해 다혈질이지만 끝내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청춘들의 암울한 현실을 땅을 기면서 그려내지만 냉소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2014년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를 거쳐 2015년 개봉한 윤준형 감독의 <그놈이다>에서는 주원의 여동생으로 등장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2016년에는 조연이긴 하지만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와 함께 <해어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는 류혜영과 함께 주목해야 할 배우가 있는데, 실제로 엄태화 감독의 동생이기도 한 엄태구는 이미 10편이 넘는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잉투기>를 전환점으로 <소수의견>, <차이나타운>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고 최근에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 캐스팅되었다.
<소셜 포비아> 류준열
독립영화계의 보석 이주승, 변요한과 함께 영화를 이끈 류준열은 <소셜포비아>의 발견이었다. SNS라는 도피 공간에 똬리 튼 괴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친구 혹은 내 속에 움트고 있고, 익명의 폭력성이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영화였다. 홍석재 감독은 더불어 SNS라는 가상세계에 빠진 사람들이 특이한 일부가 아니라, 지금 우리 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피씨방이 아니라,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곳은 젊은이들이 사회라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칼을 가는 대학 강의실과 노량진 학원가이다. 류준열은 현피를 이끄는 양게라는 인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머리띠에 치아교정기를 낀 체 건들거리는 모습 때문에 <응답하라, 1988>에서 코믹 캐릭터로 등장할 줄 알았는데 가장 과묵한 역할로 등장 반전매력을 뽐내고 있다. 엑소의 리더 수호와 함께 한 최정열 감독의 <글로리데이>, 이호재 감독의 <로봇, 소리>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99, 면회> 안재홍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블록버스터급 인기를 누렸던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을 데뷔작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안재홍은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로 데뷔했다. 스무 살의 어설픈 치기를 그려낸 세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지만 대학생, 재수생, 군인이 되면서 소원해진 세 친구의 1박 2일 군대 면회 여행을 통해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환하는 영화였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많았던 어설픈 청춘들의 모습이 반갑고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건축학개론>과 다른 방식으로 90년대를 소환하는 영화 속에는 SES와 핑클, 무테안경, 삐삐와 다마고치 등 추억 아이템이 가득하다.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거쳐 안재홍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은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이다. 군대보다 더 살벌하고 험악한 현실을 겪는 군 제대 복학생의 삶을 그려낸 코미디 속에서 안재홍은 더할 나위가 없다. 최근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도리화가>에는 동룡 이동휘와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빛나는 배우들
독립영화로 발견되진 않았지만 등장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들도 있다. 고경표가 늘 신인 같아 보이는 것은 어설픔 때문이 아니라, 무채색의 느낌이 감도는 신선함 때문이다. SNL 코리아를 통해 변태미 과시하고, 2013년 한 해 윤인수 감독의 <청춘정담>, 또래 청춘 배우들과 함께 한 <무서운 이야기 2>, 차승원과 함께 한 장진 감독의 <하이힐>에 등장했다. 그리고 고경표가 등장하면 왠지 함께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배우는 박보검이다. 고경표와 박보검은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차이나타운>, <명량>에 함께 출연하며 호흡을 맞췄다. 어느 씬에 등장해도 단정하면서 반짝거리는 젊음이 느껴지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리고 어디 있다가 지금에서야 나타났는지 싶게 매회 울컥하는 감동을 전하는 선우엄마 김선영은 <응답하라 1988>의 진정한 발견이다. 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얼굴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김선영과 중년 썸을 타는 택이 아빠 최무성은 <악마를 보았다>에서 인육을 먹는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내공 깊은 배우다. 연극배우 출신이며 2005년 <사탕>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연애의 온도>에서는 라미란과 불륜 커플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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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