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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좀 내버려둬라

영화 <웜바디스>, 이기호의「국기 게양대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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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비연애를 기준으로 사람 솔로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각종 괴물까지 못살게 구는데, 제발 좀비는 좀 내버려둬라.

하다하다 이젠 좀비다. 단언컨대 좀비 바이러스나 살인 진드기보다 무서운 건 아무래도 연애 바이러스인 것 같다. 무슨 소리냐고? 영화 <웜바디스(warm bodies)>얘기다. 본 사람 푸처핸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심장박동 제로! 차가운 도시 좀비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름도, 나이도, 자신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좀비 ‘R’. 폐허가 된 공항에서 다른 좀비들과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던 ‘R’은 우연히 아름다운 소녀 ‘줄리’를 만난다. 이때부터 차갑게 식어있던 ‘R’의 심장이 다시 뛰고…”


처음 버스 정류장에서 영화 광고를 보았을 때, 필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연애 지상주의가 인류를 넘어 영혼, 구미호, 늑대인간, 뱀파이어를 정복하더니 이젠 좀비마저 습격하는구나.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신처럼, 이미 죽어서 생명활동이 정지된 존재인 좀비에게까지 연애를 들이밀다니 아 소름. 도대체 어디까지, 누구까지 연애의 영역에 포섭시켜야 속이 시원한갸! 뱀파이어고 좀비고 할 것 없이 자신의 먹잇감인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세상이니, 이제 우리가 고사리와 사랑에 빠지는 일만 남았나보다. 영화는 보지 않았으니 쓰고자 하는 것은 영화 리뷰가 아니다. 다른 종족과의 사랑에 대한 어떤 주절거림이다.


좋게 보면, 이런 사랑은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탈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인간을 사랑한 뱀파이어는 자신의 흡혈 욕구를 참으며 몸부림친다.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전혀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만큼 매혹적인 사건이 또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랑이 지상과제인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익숙한 세계가 뒤집히고 당연시되던 것들과 결별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그래서 사랑은 열린 문인가. 그래서 뱀파이어는, 늑대인간은 구미호는, 영혼은, 인간을 보고 사랑에 빠지던가.

 

웜바디스-사진.jpg


레비나스의 주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 대상을 먹거나, 기술을 매개로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거나, 또는 우리의 인식능력에 표상되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그래야 자신이 유지가 되니까 당연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상을 흡수하고, 나에게 종속시켜 내가 주인인 세계를 구축한다. 반면 이런 세계를 등지고, 나의 바깥 혹은 나와 절대적으로 다른 자에게 가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전자가 욕구라면, 후자는 욕망이다. 로맨스가 더욱 드라마틱해지려면 후자의 욕망,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세상마저 등지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콩깍지로는 덮어버릴 수 없는 불편한 문제가 발생한다. 모험을 감수하는 이는 정해져 있다.


‘괴물’은 사회에서 추방된 절대적 타자이다. 영화 속 세계는 대개 인간과 ‘괴물’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럴 듯한 외모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허락하는 순간, 그는 ‘허용 가능한 괴물’이 된다. 다른 몰상식한 괴물들과는 ‘급이 다른’, 즉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의 교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친화적이며 그 때문에 자신의 집단과 척을 진다. 바로 그 순간 이 사랑에 빠진 괴물은 ‘선’이 되고 사랑을 모르는 괴물은 정체성과 본능에 충실한 죄로, 그리고 사랑을 모른 죄로 ‘악’이 된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라는 웨딩 피치의 명대사를 알랑가 모르겠다. 자신들의 사랑을 전시하듯 키스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악마의 불쌍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던 연출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피치와 케빈의 명치를 쎄게 때리자.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친구가 고사리와 사랑에 빠졌는데, 나는 배가 고프다. 이 고사리를 먹어야겠다. 근데 얘가 고사리를 너무 사랑해서 먹으면 안된단다. 고사리랑 안고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겠단다. 이해가 안 돼서, 비빔밥 해먹게 내놓으라고 했더니 아니 이놈 자식이 고사리를 감싸고 내 얼굴에 선빵을 날리네?! 엌!


‘사랑에 빠진 괴물’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상상력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위협적인 타자를 포섭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속에 나타나는 괴물들이 사랑하는 방식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규범을 따른다. 꽃을 꺾어주거나, 반지를 선물하거나, 안아주거나,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누구 맘대로? 좀비의 사랑 표현이 머리부터 씹어 먹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의 애정 표현이 서로의 피로 건배하는 행위일 가능성은? 


 다른 종족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언제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괴물이다. 괴물이 아무리 인간을 사랑한다 해도 자신의 방식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총 맞음. 뱀파이어가 채식을 하고 인어공주가 꼬리를 버리지 인간이 흡혈을 하거나 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왜? 뱀파이어가 채식하는 것은 인간이 흡혈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자신의 생명에 지장을 주는 행위인데도 말이다. 괴물은 그것을 고스란히 감당하며 최대한 ‘인간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인간의 연애관계를 모방하고 수행하는지가 사회화의 표지이자 사랑을 증명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동일화에 성공한 타자, 자신의 기준에서 ‘선하고 유익한’ 타자만을 골라 허용하는 관용은 가증스럽다. 그런데 그것이 ‘금단의 사랑’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포장된다.


이 금단의 사랑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얼마나 인간적인가’의 기준이 ‘인간적인 외모’라는 것이다. ‘웜바디스’의 좀비나 ‘트와일라잇’의 흡혈귀를 떠올려보라. 하긴 어지간히 잘생기지 않고서야 언제 나를 한입에 꿀꺽 할지 모르는 존재를 사랑하긴 쉽지 않겠구나. 난 늑대고 넌 미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인간인 나는 고사리스러운 포즈 뿐만 아니라 고사리스러운 외모까지 갖추어야 고사리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사리는 나의 인간스러운 외모를 사랑해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고사리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로지 고사리만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우월하고 아름답고 고귀하며 ‘특별’한 감정이니까. 인간인 내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장점이나 사랑의 감정은 고사리와의 사랑에 하등 쓸모가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고사리는 고사리의 정체성에 충실한 채로 그저 내가 고사리 흉내를 얼마나 잘 내는지 지켜보면 된다. 그 정도에 따라 사랑은 경로를 재탐색할지, 안내를 종료할지, 계속 고고씽할지 결정한다. 특히 가족이나, 주인공의 주변 (인간) 커뮤니티가 매의 눈을 빛내며 심사에 동참한다. “제 점수는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두 존재를 가장 평등하게 이어주는 듯 보이지만, 결국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괴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랑을 통해 보다 인간적인 존재로 ‘계몽’된 괴물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괴물은 학살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종족과의 사랑 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이기호의 「국기 게양대 로망스」를 추천한다. 소설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에 수록된 단편으로,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온다. 반복한다. 국기 게양대다. 여러분이 아는 그거. 주인공 ‘시봉’은 국기게양대에 달린 국기를 떼다 팔다가, 어느 새벽 자신의 옆 게양대에 오른 사내를 만난다. 그 남자는 수줍게 자신이 국기 게양대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남자는 국기게양대를 뽑아서 옷을 입히거나, 걸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웃거나, 인간처럼 행동하길 기대하지도 않는다. 남자는 그저 국기 게양대를 껴안고, 그 존재를 온전히 느낄 뿐이다. 국기게양대는 국기 게양대대로, 그 자리에 그저 서 있다. 이쯤에서 당연한 질문이 하나 제기된다. “그냥 변태 아냐? 잡았다 요놈!”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와 철저하게 다른 타자를 사랑하는 가장 윤리적인 방식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규범대로 따르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는 ‘공감’이나 ‘동화’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의 타자성을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외재성이라고 보았다. 즉 에로스와 같은 사랑의 경험이야말로 타자의 타자성, 타자와의 차이를 체험할 수 있는 경험라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사랑의 경험에서 의지와 욕망으로 넘을 수 없는 불가능성과 절대적 타자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연인들의 공동체’에서 일자를 넘어서는, 타자에 이르는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을 본다. 하필 고사리와 국기 게양대를 예로 들어서 아니 대체 이 무생물들이 무슨 주체고 의지가 있고 생각이 있는 거야? 뜨악할 수 있으니 좀비와 인간, 하다못해 꽃 파는 여성에게 자신이 속한 상류사회의 모든 것을 속성으로 주입한 후 그녀가 그에 적합한 레이디가 되니 사랑에 빠지는 ‘마이 페어 레이디’를 떠올려도 좋다.


우리는 온갖 금기를 넘어설 만큼 강력한 로맨스를 꿈꾼다. 그러한 욕망은 종종 나의 규범과 정체성과 어긋나는 절대적 타자를 소환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와의 사랑이, 내가 꿈꾸는 방식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나의 욕망에 상대를 온전히 굴복시켰을 때에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사랑은 만병통치약도 신의 손도 아니다. 완전한 타자와의 사랑은, 어쩌면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혼자 국기 게양대를 끌어안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낯설고며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행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연애/비연애를 기준으로 사람 솔로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각종 괴물까지 못살게 구는데, 제발 좀비는 좀 내버려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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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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