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담은 ‘우리’의 초상, <카트>
영화 <카트>
사회적 부당함을 부각시켜 공분을 자아내게 하기 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에 공감하게 만드는 많은 이야기들을 품어내면서 공감이라는 정서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이상적인 결론이라는 건 없다. 우리는 낭만적인 믿음으로 방관하며 살 수 없는 시대 앞에 섰다.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을 선택한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지 44년 후 2014년 11월 13일,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대상 정리해고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6년을 싸워온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절규한 날이었고, 마침 수능시험 날이었고,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영화 <카트>는 그 날 관객에게 열렸다.
효율이 아닌 형평에 대하여
44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대체 누구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살아왔던 것일까? 의지할 곳도 안길 곳도 없이 우리 사회의 등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는 걸까? 노동문제를 품은 최초의 상업영화로 불리는 <카트>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리고 과격하지 않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살아온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부당함 속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들의 외로운 투쟁은 엄연한 현실이다. <카트>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현실 속 내 이웃,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카트>는 주말이면 커다란 카트를 덜덜 끌면서 대형 마트를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가 수도 없이 스쳐지나 만나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만나왔던 그들이 사실은 심한 육체노동과 함께 감정노동까지도 견뎌야 하는 노동자라는 전제가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의 시작에 우리는 소수의 정규직 직원과 자주 선 채 ‘여사님’이라 불리는 대형 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하루를 함께 한다. 5년째 모범사원으로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을 앞둔 선희(염정아)는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는 비정규직 사원이다.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20대 미진(천우희) 등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각자의 입장은 다르지만 거친 강도의 노동을 견뎌내는 비정규직 사원들이다. 어느 날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 그들에게 해고는 생존의 위협이다. 누군가의 선동 없이, 뜻을 모은 비정규직 사원들은 혜미를 중심으로 노조를 꾸리고 회사를 상대로 한 투쟁을 시작한다. 예상대로 회사는 회유를 통해 분열을 조장하고, 생계가 어려운 노조원들은 자연스럽게 이탈의 과정에 선다. 정규직 사원인 동준(김강우)은 노조 편에 서서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해고의 수순을 맞이한 정규직 사원도 가세하면서 노조의 힘은 순간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대 회사를 상대로 한 약자들의 싸움은 이상적 결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 <카트>의 가장 큰 장점은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한 명의 영웅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투쟁하여 승리하자는, 노동운동의 슬로건에 연연하지 않는 유연함에 있다. 부지영 감독은 다양한 인물들의 처지와 개인의 삶에 따뜻한 시선을 나누면서 이들의 투쟁을 선동하거나 강하게 주장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만든다. 또한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의 처지를 혀로 핥아주는 조금 더 따뜻한 연대감을 나누게 만든다. 여기에 주인공 선희의 아들(도경수)에게 미성년 노동자의 역할을 더한다. 감동적이지만 작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간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문제는 해결되지도, 그 부당함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이, 그리고 그 모독의 시간을 견뎌온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 한다고 나지막하게 설득한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은 따로 있어.”
두 번 반복되는 이 대사가 무색하게, 혜미의 아들은 과잉진압 과정에서 큰 부상을 당하고, 선희의 아들은 편의점 사장에게 억울한 폭행을 당한다. 이를 통해 부지영 감독은 신에게 위탁된 낙관 대신, 지금 우리들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태일 열사 분신 44년 전과 후,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늘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무시되고 묵과해온 ‘형평성’을 상실하게 되리란 메시지를 아이들의 현실에 접목하는 연출력은 꽤 자연스럽다.
그렇게 <카트>는 사회적 부당함을 부각시켜 공분을 자아내게 하기 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에 공감하게 만드는 많은 이야기들을 품어내면서 공감이라는 정서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분노가 아닌 공감의 눈물이었고, 그런 마음으로 부당함에 고통 받는 내 이웃을 돌아보자는 영화의 메시지는 성공적으로 마음에 안착한다. 쌩얼을 두려워하지 않는 염정아의 새로운 얼굴이 신선하고,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문정희와 중견배우 김영애, 황정민은 영화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고, 너무 많은 인물을 보여주느라 분산된 카메라의 시선 안에 든든하게 캐릭터를 잡아준다. 엑소의 아이돌 멤버 D.O로 알려졌지만, 신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이 빛나는 도경수는 <카트>에서 신선함을 맡았다. 도경수 덕분에 10대 관객이 많다는 것도,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전달되리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순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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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