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호모 초이스 - <마이클 클레이튼>
인간은 선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
어쩌면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바로 개봉시기와 아무 상관없이 진정으로 쓰고 싶은 영화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좋다. 개봉과 동시에 잊힌 영화여도 좋고, 알려지지도 않은 영화라면 더욱 좋다. 펜대를 잡고,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비슷한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격찬하고, 언급하는 세상에, 나까지 굳이 동일한 내용을 톤만 약간 달리하여 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껏 내가 보아온 영화 중 가장 맘에 드는 엔딩씬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그것은 <마이클 클레이튼>이다. 탐욕적인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 분)은 거대 로펌에서 일한다. 그는 변호사이지만, 변호사는 아니다. 법적으로는 변호사이지만, 기능적으로는 ‘해결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법의 테두리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그는 변호사라는 옷을 입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해결’한다. 그렇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것은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사치스런 고민이다. 그는 과도한 빚에 시달리어 집세 조차 내지 못할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에게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해답은 ‘진실조차 조작될 수 있다’는 거대 로펌에서 물리어주는 덫같은 자본이다.
그는 워커 홀릭이며, 회사에 충성하며, 막강한 현금의 힘을 믿고, 질 좋은 양복이 주는 설득력을 신뢰하고, 고급 요리가 어필하는 매력의 힘을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자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몸과 머리와 감정으로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성공을 원하고, 그 길에 놓인 도덕이라는 장애물을 번거로워한다. 그의 초점은 도덕적 장애물 뒤에 놓인 빛을 발하는 자본과 명예의 축적물이다. 이런 그의 탐욕적인 본능과 정체성의 혼란, 자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은 자신을 도박판으로 내몬다. 결국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직하게는 해결할 수 없는 도박빚이다. 해결사이면서 자신의 인생을 해결할 수 없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그간 고민해왔던 정체성의 혼란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빚은 그에게 올무가 되어 인생길의 다른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그에게 로펌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프로젝트가 맡겨진다. 이 일을 해결하여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자신의 위치를 옮겨야 하는 그에게, 같은 프로젝트를 맡은 동료가 죽음을 맞이한다. 동료는 의문의 자살을 하게 되고, 이 프로젝트로 인해 희생당한 수 백명의 피해자들이 있다고 증언하고, ‘마이클 클레이튼’은 진실을 조작하기 위해서 또 한 번 무엇이 진실인지 파헤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엔딩 씬이다. 동시에, 이 엔딩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등장하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떠난다.
방금 중대한 선택을 한 그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가 묻는다. 마치 관객에게 묻는 듯하기도 하고, 마이클 클레이튼의 향후 계획에 대해 묻는 듯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직업적으로 묻는다.
“So what are we doing?”
‘그래 이제 우리 뭐할까’ 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우리가 뭘하고 있는 거지’ 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이
클 클레이튼은 마치 자신도 아직 모르겠다는 듯이, 어쩌면 뭘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지갑에서 지폐를 대충 꺼내 건넨다.
“50달러 어치만 돕시다. 대충 돌아요.”
대사가 없는 약 2분간 마이클 클레이튼의 표정에는 방금 내린 결정에 대한 갈등과 후회와 아쉬움과 잘 해냈다는 위안, 그리고 당장 내일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이 차례로 지나간다. 택시기사의 대사가 주인공 뿐 아니라 관객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듯이, 마이클 클레이튼을 주목하는 카메라는 주인공 뿐 아니라 마치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야 비로소 ‘토니 길로이(각본&감독)’, ‘시드니 폴락(제작)’, ‘조지 클루니(이하 출연)’, ‘톰 윌킨슨’, ‘틸다 스윈턴’, ‘시드니 폴락’의 이름들이, 마이클 클레이튼의 얼굴 맞은편 아래로 겸손히 지나간다.
그리고 마이클 클레이튼은 영화가 완전히 끝날 즈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즉 그만이 알 수 있는 미소를 짓는다. 짧게. 마이클 클레이튼의 표정 변화를 자신의 감정 변화처럼 지켜본 몇 몇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짧게.
이토록 담백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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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