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불씨 - <지골로 인 뉴욕>

소박하기에 불러 일으키는 창작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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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고,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되고, 작곡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사람을 들끓게 만드는 적극적인 예술의 향유법은 바로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입원하여 지난 회는 쉬었습니다. 

기다리신 분께 사과의 말씀드리며, 현재는 퇴원하여 회복중이니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3대 조건은 분위기와 분위기와 분위기다. 허구한 날 칼럼에는 헛소리를, 단편 소설에는 막장 서사를, 장편 소설에는 허풍만 써대는 양반이 무슨 분위기 타령이냐고 한다면, 그 역시 분위기다. 모든 예술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 이 예술의 절대적 요소는 첫 장면에서 장엄히 선포되고, 중간에는 그 지경(地境)에서 택할 수 있는 극단에 이르더라도, 결국은 다시 자신의 자리(즉, 그 분위기)로 안착한다. 아니, 해야한다. 혹은, 그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무대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그 역시 과거의 분위기와 새 분위기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지골로 인 뉴욕


자, 여기 분위기가 멋진 한 편의 작품이 있다. 비록 2주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의 일부를 꿰매고, 손목의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해야 했지만, 안정 따위야 상관없이 서둘러 글쟁이의 타석에 복귀해 타자(打字)하게 만든 영화가 있으니, 바로 <지골로 인 뉴욕>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니 극적인 서사도 없고, 세상이 열광할 슈퍼 스타도 없고, 대 반전도 없는데, 무슨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없기에 흥분되는 것이다. 허벅지를 드러낸 것도 아니고, 몸에 착 감기는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도, 관능적인 사람이 있다. 무리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그 존재가 풍기는 기운 만으로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이런 인물 같은 영화가 바로 <지골로 인 뉴욕>이다(고, 나는 또 생각한다. 역시 아니면 말고). 

 

은근한 영화의 매력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아직 완쾌되지 않은) 나의 혈관 속 피를 활기차게 돌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골로 인 뉴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를 만들고 싶게끔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도 밝힌 적 있지만, 진정 가치 있는 예술은 몇억 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빛나는 별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허술하고 성글어 보이더라도 독자로 하여금 펜을 잡게하고, 청자로 하여금 기타 코드를 외우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연습장에 끄적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골로 인 뉴욕>을 보는 내내,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너무나 만들고 싶어, 일단은 이 글을 써서라도 그 창작욕의 불씨를 꺼뜨려야 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어릴 적 나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와 미술과 음악과 연출까지 맡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당시에는 그림만 그리던 학생이었던지라 미술 외에는 도대체 가능이나 할까 싶었지만, 대학 시절엔 연극 배우를 하고, 지금은 글과 노래를 쓰고 있으니, 가끔은 ‘잊었던 꿈을 이제라도 펼쳐볼까’하는 생각이 꿈틀거리곤 했다. 그런데, 소설책을 낼 때마다 편집과정을 거치고(이 과정에서 협업을 해야한다), 앨범을 낼 때에도 편곡 과정을 거치니(이 과정에서는 재창조를 해야한다), 어느새 ‘아, 나는 협업을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각하게 됐다. 솔직히 말해, 실제로 나는 내 창작물이 바뀌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런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어차피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일은 너무나 까다로운지라 ‘이것도 필요하군’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더욱이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니, ‘영화 시나리오란 이런 것이구나’하며 어렴풋이나마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지골로 인 뉴욕

 

나는 몇 년 전 결심한 바가 있어서 절대로 공언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잠자코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아, 나라면 이렇게 연기할텐데’, ‘한국에서는 과연 저 음악을 쓸 수 있을까’, ‘나라면 저 대사는 다르게 썼을텐데’ 하며 끊임없이 궁리하며 보았다. 그런데, 이 감정은 바로 몇 년 전, 작가가 되기 직전에 다른 작품을 접하며 가졌던 생각, 즉 ‘아, 나라면 이렇게 썼을텐데’ 하며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되고,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되고, 작곡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사람을 들끓게 만드는 적극적인 예술의 향유법은 바로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로 그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보고픈 마음에 불이 피어난다. 그리고 굳이 도전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 마음 속에 피어나는 그 불씨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없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나는 그 영화의 또 다른 감독이자, 배우이자, 작가이므로. <지골로 인 뉴욕>의 경쾌하지만 쓸쓸한 분위기와, 심플하지만 절제된 서사는 이렇듯 불씨 하나를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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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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