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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의 세 번째 앨범 <사람의 마음>
본격적인 밴드 사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제부터가 시작
세 번째 정규 앨범에서야 비로소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라는 이름 대신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프레임에 집중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 사람의 마음 >
세 번째 정규 앨범에서야 비로소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라는 이름 대신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프레임에 집중한다. 단번에 인디와 주류를 오가는 높은 위치에 올랐으나 너무나도 빠른 이미지의 소모는 듣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를 우선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이들의 음악은 지속적인 매력 발산이 되지 못하며 일회성으로 소모되곤 했다. 말하자면 밴드 자체보다는 장기하라는 인물 자체에, 노래보다는 코믹한 가사와 분위기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셈이다.
기존 5인조에서 객원 멤버로 참여했던 '양평이형' 하세가와 료헤이의 정식 합류로 일원화 체제의 다원화가 이루어졌다. 멤버 전원이 고르게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그 특정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보편적 「사람의 마음」을 다루며 드러난다. 장기하 본인의 스토리텔링이 주가 되었던 과거에 비해 새 앨범의 주제는 보다 폭넓은 보편적 감정에 기인하고 있고, 이를 간결한 표현으로 알맞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독특한 리딩(Reading) 창법과 코믹한 이미지로 인해 간과되나 장기하는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쓸 줄 아는 아티스트다. 최대한 단순한 구성 위에 기억에 남을 선율이 추가되는 것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던 '반복 청취의 부재'를 해결할 열쇠가 된다. 잔잔한 진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의 메시지를 건네는 「사람의 마음」, 멜로트론의 사용으로 희귀성을 확보하며 짧은 러닝 타임동안 강한 중독성을 안기는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등은 확실한 흡인력을 지닌 변화의 산물이다. 한가로운 스윙과 블루스 리듬의 「구두쇠」와 사이키델릭 대곡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등 친숙함과 함께하는 실험적 면모도 눈에 띤다.
다만 아직까지 완전한 성취를 논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다. 확실한 후렴구가 분명 인상적이나 그곳까지 닿는 방식에서 여전히 과거의 '스토리텔링' 창법이 발목을 잡는 탓이다.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내 사람」의 경우 「그렇고 그런 사이」의 영상 매력에다 잔가지를 쳐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기하표 싱글이지만 2분이면 될 멜로디를 굳이 4분으로 늘려놓은 느낌이다. 이는 과거 청년실업 시절 간결함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의 리마스터링 버전과 비교되며 아쉬움을 남기는 지점이다.
단순한 가사와 흥겨운 신디사이저 루프가 「풍문으로 들었소」의 복고풍 분위기를 조성하는 「좋다 말았네」는 힘 있는 후렴이 인상적임에 반해 절정까지 닿는 길의 심심함이 재미를 반감시킨다. 「알 수 없는 사람」, 「잊혀지지 않네」 등 후반부로 갈수록 과거의 애매한 모습이 짙어지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어정쩡한 싱잉과 멜로디 간의 타협이 앞서서의 흡인력과 대비를 이루며 갈수록 힘이 부친다.
완벽한 결과물은 아니다. 과거와의 부적절한 타협 지점도 보인다. 하지만 음악 자체에서의 단점을 대거 보완하여 밴드에게 정작 부족했던 사운드의 공동(空洞)화를 채워나가는 모습은 분명한 개선의 노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장기하라는 인물의 캐릭터보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사람의 마음'과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팀 음악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작이다.
글/ 김도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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