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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지된 책 <자본론>과 어떻게 만났는가.

어느 지식인의 <자본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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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르크스를 신이나 영웅처럼 떠받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공산 국가에서 마르크스를 진리와 권위의 성전에 모시는 바람에 우리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자본론>은 거듭해서 읽을 만한 책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사회 현실과 정의를 사유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이 거대한 독초로 인식되어 접촉해서도, 읽어서도 안 되는 사회에서 성장했다. 나보다 한 세대 위인 소설가 천잉전같은 사람들은 몰래 독서회를 만들어 『공산당 선언』『자본론』을 읽기도 했다. 나는 그들보다20년 늦게 태어났다. 이는 타이완 계엄사령부 시절이 20년 더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시장에서는 마르크스와 『자본론』, 공산주의와 관련된 책이 죄다 몰수되었고 한밤중에 몰래 집회를 여는 좌익 단체들은 단속 대상이 되었다.

 

자본론을 읽다



나는 마르크스를 알았고 『자본론』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지식은 주로 ‘삼민주의’三民主義 교과서에서 얻은 것들이었고,이들 교과서에서는 마르크스와 공산주의가 대단히 황당하며 오류투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황당하고 오류 투성이인 사상의 원본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점에 가서 책 구경하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조금 커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법을 배웠다. 좀 더 컸을 때는 마침 타이완의 도서관이 점차 개가식으로 바뀌는 시기였던 덕분에 도서관의 책장 사이사이를 떠도는 습관을 키웠다.


대학 2학년 때, 타이완대학교 법과대에 일본어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나는 우연히 법과대 도서관을 이리저리 구경하며돌아다니다가 서고 지하실에 이르렀다. 멀리서도 먼지 냄새가 느껴질 듯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곳에 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서 스위치를 찾아 전등을 켠 다음 서가를 한 칸 한 칸 살피는데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다. 이곳에 소장된 책들은 전부 도서 목록에 없는 것이었다. 갓 도착한 새 책이라서가 아니라 타이완대학교 법과대 자체보다 더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도서 목록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법과대가 아직 ‘타이베이법상法商학교’라 불리던 시대부터 남아 있던 장서였다. 다시 말해서 이 책들은 1945년에 일본인이 떠난 뒤 30여 년간 이 곳에서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먼지로 뒤덮인 이 지하 서고에 청춘의 아름다운 시간을 쏟아 부었다. 다행히 당시의 나는 기침 한번 하지 않는 튼튼한 몸이라 십 수년 동안 쌓였던 먼지를 한껏 들이마셔도 문제가 없었다. 그곳에 있는 책은 대부분 일본어로 된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독일어로 쓴 책이었다. 나는 먼저 다섯 권 한 질로 된 일본 공산당 좌파의 거물 가와카미 하지메河上肇의 『자서전』을 찾았다. 가와카미 하지메의 약력을 읽고 그가『가난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 이야기』는 일본에서의 공산주의 발전에 관한 책으로 마르크스의『공산당 선언』에 버금가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지하 서고에서 『가난 이야기』는 찾지 못했지만 그의 책이 타이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흥분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책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섯 권이나 되는 그 을 어떻게 지하 서고에서 다 읽을 수 있겠는가? 나는 모험을 기로 마음먹었다. 도서 목록에 없는 책들이지만 일제 강점기의 청구 번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법과대에 갈 때마다 도서관 대출 창구에 있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고 한 번도  적이 없는 직원이 대출 업무를 맡으면 가와카미 하지메의『자서전』과 내 도서 대출 카드를 내밀었다. 책 제목을 본 직원이 대출해 줄 수 없다고 하면 나는 코를 문지르며 책을 도로 서가에 가져다 두었다. 그러다가 네 번째 되는 날, 사정을 잘 모르는 직원을 만났다. 그는 책에 도서 대출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것만 확인하고는 도서 대출표를 붙인 다음 일제 강점기의 낡은 번호를 도서 대출 서류에 기입하고 책을 내주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지하 서고에 있는 책들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지하 서고에 갈 때마다 뭔가 보물을 발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의 그 흥분과 기대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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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 책장 사이를 몇 번이고 드나드는 동안 나는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할 어떤 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은 정말로 그곳 어느 책장 밑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상중하 세 권으로 된 일본 이와나미문고의 『자본론』이었다! 이번에는 감히 기존의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책 표지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자본론’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황을 모르는 직원이라 해도 이런 부분에는 민감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자서전』은 한 번 읽고 싶은 정도에 그쳤지만 『자본론』은 읽고 싶을뿐만 아니라 소장까지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있는 복사기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법과대 도서관에 갔다. 문과대 수업은 듣지 않고 하루 종일 남몰래 복사기 주위를 맴돌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재빨리 가서 몇 장 복사하고, 누군가 다가오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떴다. 며칠에 걸친 작업 끝에 『자본론』 권의 복사가 마무리될 무렵 뜻밖에도 복사기가 고장 나고 말았다.


복사기가 망가진 것은 할 수 없었지만 새로 바뀐 복사기를 보는 순간 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전에는 복사가 끝나면 직접 복사한 장수를 계산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전을 집어넣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매일 집에 있는 동전을 전부 모아 도서관으로 가져다가 동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복사를 계속했다. 복사를 마치면 복사한 것을 집으로 가져와 조심스럽게 옷장에 감춰 두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몇 장만 꺼내 팔절지 크기로 접어 책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는 동안 한 장 한 장 몰래 꺼내 읽다가 학교에 도착하면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금서를 읽고 있음을 누군가 알아챌까 두려웠다.


법과대 지하 서고를 미친 듯이 들락거리는 동안 나는 또 다른 보물창고를 발견했다. 역시 학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으로 타이완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참고서 구역’이었다. 말 그대로라면 그곳에는 ‘참고서’가 있어야 했다. 타이완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한 가지 ‘참고서’밖에 모른다. 초중고교의 교과서를 보조하는 내용으로 시험 준비를 돕는 책 말이다. 감히 단언컨대 타이완대학교 학생 가운데 3분의 2는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제대로 자료를 찾을 줄도 모르고 공부에 어떤 ‘참고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물론 도서관의 ‘참고서 구역’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나는 중앙도서관의 참고서 구역에서 문과대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는 중요한 ‘참고서’를 발견했다. 1960년대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출판한 『서양의 위대한 책들』The Great Books ofthe Western World로, 인류 문명에서 가장 ‘위대한 저작을 모은 전집’이었다. 나는 이 책에 대해 잘 알았다. 역사학과에 들어오자마자 이 전집의 존재를 알고 젊은이의 호기가 끓어올라 당장 50여 권에 달하는 이 ‘위대한 책들’을 전부 독파하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50여 권’이라는 숫자는 결코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출판한 이 책의 배후에는 고전 읽기를 제창하는 동시에 원전을 중시하는 신념이 감춰져 있다. 편집자들은 요점 정리와 풀어쓰기 방식으로는 고전의 진정한 지혜와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전의 내용을 ‘두세 마디’로 농축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학생들은 이 두세 마디로 고전을 이 해했다고 여기게 된다. 이는 고전을 공부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고전의 가치를 파괴하는 가장 큰 죄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고전은 원전 전체를 읽어야 그 내용이생생하게 경험으로 스며들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집은 요약이나 생략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작품을 원문 그대로 다 수록했다.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같은 책도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고전에 쉽게 접근하고 고전을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문이 영어로 되어 있지 않은 저작은 최고의 번역본을 채택했고 종이도 사전용 인디언지紙를 사용하여 한 권이 700~800쪽에 달했다. 파리 대가리만큼이나 작은 글자로 2단 편집되어 수록된 글자의 수는 놀라울 정도였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의 제1권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오디세이아』의 합본이다. 내 거대한 웅지의 실천이 바로 이 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기억한다. 제2권이 ‘헤로도토스’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가 온전히 수록되어 있다. 제3권에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치 않은 이유로 나는 제1권과 제2권은 읽었지만 제3권은 다 읽지 못했다. 나의 호방한 웅지는 책 두 권을 조금 넘어서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대학 2학년 2학기가 되자 대대적인 보수를 거친 타이완대학교 중앙도서관이 마침내 다시 개방되었다. 나는 환하고 널찍한 참고서 구역으로 가서 『서양의 위대한 책들』이 꽂힌 서가를 찾았다. 눈으로 서가를 쭉 훑는 동안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참고서 구역의 『서양의 위대한 책들』에 문과대 도서관에 있는 것보다 한 권이 더 있었다. 이 책 책등에는 달랑 네 글자만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마르크스’Marx였다. 손이 떨리는 것을 애써 달래면서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 조용히 그 책을 꺼내 빠른 속도로 뒤적였다. 틀림없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자본론』의 영문판 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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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또 2~3주 동안 나는 중앙도서관 참고서 구역에서 복사기 사용률이 가장 높은 고객이 되었다. 다행히 참고서 구역의 서적은 대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복사기 사용은 당연한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 염려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매일 문을 나서기 전에 이 구역에 가서 어떤 책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할지 사전에 잘 생각해 두곤 했다(그곳에는 자기 책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 들어가면 재빨리 책 몇 권을 내 자리에 쌓아 놓았다. 물론 문제의 책은 맨 밑바닥에 숨겨 놓았다. 그런 다음 한두 시간 터울로 책을들고 복사기 앞으로 가서 15분 혹은 20분씩 복사를 했다.


이처럼 아주 몰래 나는 책장이 아닌 옷장에 일역본과 영역본 『자본론』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번역본을 대조하면서 세 권을 다 독파했다. 몇 해가 지나 미국으로 유학을 간 나는 하버드 광장에서 좌파 서적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 ‘레볼루션 북스’를 발견했다. 그 서점에서 산 첫 번째 책이영어판 『마오쩌둥 선집』이고 두 번째로 산 책이 독일어판 『자본론』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자본론』을 독일어 학습 교재로 삼아 영어판과 독일어판을 대조하면서 한 번 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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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다양자오 저/김태성 역 | 유유
저자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배경인 헤겔 철학을 설명하는 데에서 서두를 시작하지만 자본과 자본가, 자본주의, 잉여 가치, 노동과 노동자처럼 『자본론』을 읽고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배경이 되는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방대한 계획을 짜고 글을 쓴 마르크스가 결국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한 개념들이 레닌, 카우츠키에서 월러스틴에 이르기까지 후대에서 어떤 이론으로 보충되고 해석되었는지도 함께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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