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설정은 왜 여기저기 다른걸까?
영화마다 다 다른 슈퍼맨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작업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슈퍼히어로를 끊임없이 만날 수도 있다. 스토리에서나, 그림에서나 모두 변화, 변주가 가능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캐릭터가 고루해지면 새로운 탄생 신화나 설정을 만들어내며 리부트를 하기도 한다.
슈퍼맨 설정은 왜 여기저기 다른걸까?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캐릭터 저작권은 DC에서 소유하고 있다. 좋은 점은 처음 만들어낸 작가가 죽거나 작업을 중단해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작업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슈퍼히어로를 끊임없이 만날 수도 있다. 스토리에서나, 그림에서나 모두 변화, 변주가 가능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캐릭터가 고루해지면 새로운 탄생 신화나 설정을 만들어내며 리부트를 하기도 한다.
『슈퍼맨:레드 선』 처럼 슈퍼맨이 미국의 농촌이 아니라 소련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일종의 외전을 그려내기도 한다. 단발성으로 나왔다가 인기가 좋으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보면 인기 좋은 슈퍼히어로의 설정이 수없이 늘어나게 된다. 지구-1에서 활약하는 슈퍼맨, 지구-2에서 살아가는 슈퍼맨, 지구-3의 악당 슈퍼맨 등등. 소위 평행우주이고, 멀티버스라고 부른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오랜 세월 DC의 작품들을 꾸준히 보았다면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새로운 독자는 슈퍼맨 설정이 왜 여기저기 다른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디는 슈퍼맨의 사촌이 슈퍼걸이고, 어디서는 파워걸이 되는 것인지 등등. DC의 슈퍼히어로 연대조직인 JLA(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는 지구-1에 존재하고, 지구-2에서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JSA(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가 있다. JLA는 가끔 JSA를 만나 협업을 한다. 동시에 슈퍼맨, 원더우먼이 2, 3명씩 등장하기도 한다. 처음, 가끔 DC의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접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혼란스럽다.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 지구의 위기』의 작가인 마브 울프만은 1980년대에 그린 랜턴의 팬에게 편지를 받는다. DC 유니버스 세계관의 연속성이 혼란스럽다는 내용이었다. 마브 울프만의 답장은 이랬다. ‘조만간 무엇은 DC 유니버스에 포함되고, 무엇은 DC 유니버스에 포함되지 않는지 명확히 구분해주겠다.’ DC에서는 세계관을 통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관을 단순화시키고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규모 이벤트를 시작한다. 1981년에 제작을 발표했지만, DC의 전체 세계를 파악하고 이야기를 짜는 데에만 무려 5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DC 50주년인 1985년에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 지구의 위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모든 영웅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마빈 울프만의 어렸을 적 꿈이기도 했다.
마브 울프먼이 쓰고 조지 페레즈가 그린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 지구의 위기』는 슈퍼히어로들이 가득한 3000개의 우주가 파괴되는 이야기다.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 정물질만이 아니라 반물질도 생겼고, 진동과 복제를 하며 멀티버스가 만들어졌다. 반물질의 세계에 존재하는 안티모니터라는 악당이 정물질의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 가장 먼저 지구-3이 파괴되면서 루터의 아들인 알렉스 루터가 마치 슈퍼맨처럼 유일하게 바깥 세계로 탈출한다. 모니터와 라일라는 안티모니터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만이 아니라 슈퍼빌런까지 규합한다. 안티모니터의 목적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지구의 위기』는 DC 유니버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를 도우면서, 수많은 슈퍼히어로를 한 작품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안겨준다. 지구-1의 슈퍼맨과 달리 지구-2의 슈퍼맨은 나이가 들었고, 로이스 레인과 결혼도 했다. 지구 프라임의 슈퍼보이는 유일한 슈퍼히어로이고, 지구-3에서는 JLA가 악당이고 루터가 선한 영웅이 된다. 각각의 이야기를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그런 캐릭터들이 한 작품에서 협력하고, 충돌하고, 죽는 광겨을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슈퍼걸의 죽음은 연재 당시 수많은 독자를 충격에 빠트렸다.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지구의 위기』를 통해 DC의 무수한 지구가 하나의 지구로 통합되었고, 그것을 뉴 어스라고 부른다.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무한지구의 위기』가 나오고 10여년이 지난 1994년에는 『제로 아워:크라이시스 인 타임』이 나온다. 댄 쥬겐스가 글과 그림을 맡았고 제리 오드웨이, 프랭크 포스코, 켄 브랜치가 그린 『제로 아워:크라이시스 인 타임』은 공간을 넘어 시간의 연속성을 바로잡는 이야기다. 시간을 여행하는 수호자 리니어맨은 독재자 모나크가 된 행크 홀을 추적한다. 그러나 행크 홀은 막대한 힘을 흡수하며 엑스탄트가 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뒤흔들어 놓는다. 미래의 시간대가 파멸되면서 혼란이 시작되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를 중심으로 엑스탄트의 음모를 막으려 한다.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DC 유니버스에서 중요한 인물인 그린 랜턴의 2대인 할 조단이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할 조단은 정신적 붕괴를 겪으며 파괴의 신 패럴렉스가 되었던 인물이다. 할 조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펙터도 등장한다. 『제로 아워:크라이시스 인 타임』의 부록으로는 새롭게 정리된 DC 유니버스의 연대표가 실려 있다. DC 유니버스의 역사가 도대체 헷갈린다면,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언제 등장하거나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대형 이벤트가 등장하면 거기에 따라 또 다시 수많은 시리즈가 등장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우주를 대청소할 필요가 생긴다. 대략 10주년 정도의 기간으로.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의 20주년을 맞아 제프 존스가 쓰고 필 지메네즈 등이 그린 『인피닛 크라이시스』가 나왔다. 21세기의 작품인 『인피닛 크라이시스』는 과거에 공간과 시간을 재조정하며 단일한 유니버스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조금 변화를 주어 우주의 물리적 변화보다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현실 세계만이 아니라 슈퍼히어로의 세계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친 9.11. 이후의 세계를 반영하여, 슈퍼히어로의 결단력과 자기희생을 중심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인피닛 크라이시스』는 DC 최고의 캐릭터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을 한 자리에 모으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 서로를 불신하며 갈라선 상태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다시 한 번 ‘유니버스’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에서 뉴 어스를 위해 희생했던 지구-2의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 지구-3의 알렉스 루터, 지구-프라임의 슈퍼보이가 돌아온다. 그들의 희생으로 창조된 뉴 어스가 다시 악의 기운에 물들고, 슈퍼히어로가 타락하거나 절망에 빠져 패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더라도 진정으로 새로운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 『인피닛 크라이시스』의 교훈은 현실적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에게나 결함은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파시즘이 지배하게 된다. 강요된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박해와 죽음만이 기다리는 어두운 세계의 도래. 『인피닛 크라이시스』는 9.11. 이후 슈퍼히어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마블이 『아이언맨』으로 시작하여 『어벤져스』를 거치며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차근차근 계획적으로 만들어가는 동안,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 성공을 거든 것 말고는 어떤 확장성도 없었다. DC의 약점은 가장 인기 있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각 캐릭터 이상의 ‘유니버스’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DC는 『맨 오브 스틸』을 만든 후 2편에서 급하게 『배트맨 VS 슈퍼맨』으로 진행되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마블보다 DC 유니버스가 더욱 낯설고, 뭐가 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 집어들 수 있는 DC의 그래픽 노블이 바로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제로 아워:크라이시스 인 타임』, 『인피닛 크라이시스』다. 1985년부터 10년을 주기로 DC 유니버스를 정리해 온 이 만화들을 챙겨 본다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고, DC의 캐릭터들을 대부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속성 코스이면서도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요점 정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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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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