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마주선 공포의 근원, <인보카머스>
엑소시즘이라는 심령 공포에 범죄 수사라는 스릴러적인 요소
<인보카머스>가 가장 무서운 순간은 영화 속에 표현된 그 잔혹한 범죄들이 모두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라는 사실은 서늘한 공포가 되어 일상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생채기가 불쑥 흉터처럼 되살아날 때, 느끼는 서늘한 공포, 그 일상성은 상처가 되어 꽤 오래 지속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공포영화 <인보카머스>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의 촬영을 통해, 마주 선 공포의 근원이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현실적 공포를 주는 영화다. 그렇게 실화라는 이야기가 주는 설득력과 함께, 실제 범죄 장소라는 영화의 배경이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뉴욕의 브롱크스 지역은 노동자 계급이 모여 사는 곳으로, 오래된 주택가와 생기 없는 일상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고, 1980년 이후 처음으로 내부 촬영을 허락한 브롱크스 동물원의 이미지는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으스스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위적인 공간과 가공의 스토리가 아닌, 실제 공간과 이야기라는 리얼함이 다른 공포영화보다 한 수 앞선 이야기의 설득력과 현장감 있는 공포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지만 항상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는 공포의 근원, 혹은 악의 근원을 되짚는 영화의 메시지도 강렬하다.
살인, 강도, 영아사체 등 매일 매일 끔찍한 범죄의 현장을 마주해야 하는 형사 랄프 서치(에릭 바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올리비아 문)와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지만, 지옥 같은 세상은 그를 온전한 행복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서치에게는 일상적인 것 같던 사건들이 점점 기괴해지기 시작한다. 서치와 그의 동료 버틀러는 연관성 없어 보이던 귀신들린 집, 브롱크스 동물원의 노숙자, 가정폭력 등의 사건들 속 용의자들이 모두 같이 함께 있는 사진을 발견한다. 조사 과정에서 용의자들 모두 아부다비에 파병된 군인이었음이 밝혀진다. 이들은 자해, 동물학대, 자살시도 등 정상적인 생활에서 멀어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악행들이 아부다비에서 겪었던 초현실적 경험에서 벌어진 일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서치 앞에 퇴마를 전문으로 하는 신부(에드거 라미레즈)가 나타나면서 사건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엑소시즘이라는 심령 공포에 범죄 수사라는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인보카머스>는 공포라는 기본 전제 아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추리적 요소가 주는 재미까지 더해진 영화다. 2005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를 통해 엑소시즘의 공포, 2012년 <살인소설>을 통해 촘촘하게 배열된 이야기의 공포를 잘 보여준 스콧 데릭슨 감독은 스릴러와 호러를 허구가 아닌 실화 속에 녹여내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내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설득하면서 공포감을 직조해 낸다. 더불어 시각적인 공포와 청각적인 효과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어둠에 파묻힌 밤이다. 어둠 속에 겨우 식별 가능한 얼굴이 사람의 것인지 귀신의 것인지 분간이 어려운 순간에 툭 튀어나오는 장면이나, 주파수가 어긋난 잡음, 갑작스런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신경을 긁는 소리와 영상이 극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인보카머스> 스틸컷
퇴마의식이 소재로 등장한 만큼 극의 클라이맥스는 퇴마의식으로 치닫는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치러지는 엑소시즘은 밀실공포의 정점으로 치솟는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엑소시즘 영화가 연약한 소녀의 몸에 깃든 악령을 퇴치하는 것이었다면, <인보카머스> 속 귀신 들린 남자는 건장한 남성이다. 당연히 살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퇴마 의식의 수위는 하드 고어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충격적인 사건을 모두 경험했던 실존인물 랄프 서치가 20년간 뉴욕 경찰로 일하면서 직접 체험했던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을 모아 엮은 소설 <Beware the Night>를 원작으로 한다. 믿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실화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스콧 데릭슨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원작 속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극적이며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추려 각본에 담아냈다.
<인보카머스>가 가장 무서운 순간은 영화 속에 표현된 그 잔혹한 범죄들이 모두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갓난아기의 시체,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벽을 긁어대는 남자, 자신의 아기를 사자 우리에 던져버린 엄마 등 이 섬뜩한 이야기들이 모두 실제 뉴욕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지 못하지만, 이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일들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일상 속에 공기처럼 내재적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만 보면 윌리엄 프리드킨의 1973년작 <엑소시스트>의 초자연적 악령과, 1995년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연쇄살인 수사물 <세븐>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 과거의 비밀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랄프 서치의 고뇌는 에릭 바나를 통해 진지하게 그려진다. 또 순간순간 강렬한 이미지와 비밀을 밝혀나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압도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스콧 데릭슨 감독은 우리 삶의 공포를 추리, 서스펜스, 액션, 고어, 그리고 엑소시즘의 초자연현상까지 골고루 버무려 흥미로운 공포영화를 만들어내면서도 어수선하지 않은 연출력을 선보인다.
장르 영화 속에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치우치지 않게 잘 버무린 솜씨는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의 역량에 기댄 바 크다. CSI 시리즈를 꽤 오랫동안 제작해온 노하우를 반영해, <인보카머스>는 공포 영화의 장르 속에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추리적 요소가 제법 흥미롭고 보암직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잔혹해야 할 순간에 수위를 조절하고, 조금 더 파괴적이어야 할 결론의 순간에 조금 주춤거리면서 단정하게 마무리 되는 결론은 조금 아쉽다. 개인적으로 초반부, 끊어질 듯 팽팽하면서 압도적인 이야기가 더 파괴적인 결론으로 나아가길 짐짓 바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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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