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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예은,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을까?
아이돌과 싱어송라이터
자신의 의지대로 음악을 콘트롤할 수 있는 것, 그건 툴(tool)을 갖게 된다는 뜻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서 예은을 응원한다. 그녀가 자기 재능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원더걸스를 좋아한다. 특히 2011년에 발매된 두 번째 정규앨범을 좋아한다. 「Be My Baby」가 실린 그 앨범. 진작부터 사람들은 앨범으로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지만, 이 앨범은 타이틀 곡 외에도 꽤 괜찮은 곡들이 실렸다. 최근에 나는 SM이나 JYP, YG 같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앨범이야말로 ‘시대에 역행해서’ 앨범에 의미를 내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항상 이 앨범을 떠올린다. 아무튼, 여기서 원더걸스의 멤버인 예은은 첫 곡인 「G.N.O.」를 작사/작곡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트렌디한 곡이었다. 아무래도 원더걸스의 복고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시도 중 하나로 들렸다.
인상적인 건 바로 그 동시대의 감수성
예은의 예명인 핫펠트(HA:TFELT)의 솔로 데뷔작 <Me?>는 이런 감각을 다시 한 번 깨우는 앨범이다. 예은과 이우민(collapsedone)이 공동 작곡한 앨범의 첫 곡 「Iron Girl」은 하나씩 힘주어 짚어가는 록 비트가 강한 의지를 담은 가사와 어울리며 앨범의 전체 인상을 좌우한다. 수록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Truth」와 「Ain’t Nobody」, 그리고 빈지노가 피처링한 「Bond」다. 「Truth」는 단번에 엑스엑스(THE XX)가 연상되는 비트를 깔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영국의 신예 싱어송라이터인 뱅크스(Banks)와 상당히 닮았다. 혹자는 라나 델 레이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녀보다는 시기적으로 뱅크스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건 누구와 닮았다는 게 아니다. 이런 유사성을 짚으면서 우쭐댈 마음은 없다. 다만 지금 저 두 음악가들이 현재 영국 쪽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선 짚어 봐야할 것이다.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음악 서비스에 가면 엑스엑스의 비트를 활용한 미니멀한 알앤비의 싱글들이 그야말로 흘러넘친다. 뱅크스는 지금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 중 하나지만 한국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뱅크스의 스타일은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소개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은의 음악은 이 사운드를 동시적으로 소화하며 정면 돌파한다. 인상적인 건 바로 그 동시대의 감수성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트랙은 「Bond」다.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보컬의 리드 뒤에 이어지는 <007 시리즈>의 메인 테마를 변형한 비트가 등장하는 타이밍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빈지노의 랩도 예리하게 다듬어진 인상을 풍긴다. 곡은 전반적으로 예리하고 날카롭다. 디자인이 잘 빠진 자동차를 보는 기분이다. 「Ain’t Nobody」와 타이틀을 경쟁했다고 하는 후문도 있는데, 이 곡만으로도 예은의 미래를 충분히 기대하게 된다. 보컬의 톤에서 로드(Lord)나 엘리 굴딩, 버디 등이 연상되는데 아무튼 최근 여성 알앤비 보컬의 경향에 포함된다는 게 중요할 듯싶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온 힘을 다해 이전과는 다른 아이돌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을 선언한다.
이때 싱어송라이터에 대해서 부연해야할 것 같다. 보통 ‘싱어송라이터’란 말은 마치 음악의 완성도와 예술적 지위를 보장하는 만능열쇠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보도자료와 비평이 그걸 전제로 움직인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는 그저 사소한 재능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본다. 특히 음악에서 이것은 전능하지도 않고 뭔가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우리가 글을 쓸 때 언어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곡을 쓸 때 음표와 화성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에게 싱어송라이터란 말을 붙이는 것은 그가 아이돌과는 다른 지위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음악을 좀 더 재미있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음악을 콘트롤할 수 있는 것, 그건 툴(tool)을 갖게 된다는 뜻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서 예은을 응원한다. 그녀가 자기 재능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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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예은, 핫펠트, ain't nobody, HA:TFELT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