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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한국 알앤비 힙합의 미래
걸출하다. 스물 셋이라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익숙한 그 음성이 앨범을 냈습니다. 시대별 흑인 음악의 정수를 뽑아낸 < Crush On You >. 어린 나이에 비해 음악적으로도 대단하지만 어렵지 않아요. 가볍게 즐겨보세요.
크러쉬(Crush) < Crush On You >
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 로꼬의 「감아」, 그리고 자이언 티의 「뻔한 멜로디」 모두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었다. 세 제목 뒤엔 (Feat. Crush)가 붙는다. 그레이가 비트를 만들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VV:D(비비드) 크루 소속, 두 뮤지션은 교류가 잦았다. 매번 저런 식이었지만 크러쉬도 편곡이 가능하다.
슈프림 팀의 컴백 싱글 「그대로 있어도 돼」가 대표적인 증거다. 그레이도 크러쉬를 자주 보는 이유가 “워낙 잘해서 소스 좀 뺏어 먹으려고요.” 라며 장난처럼 말한 적이 있다. 소문은 자자했으나 결과물은 듣기 어려웠다. 개코는 “크러쉬가 음악 생활 하면서 좋은 곡들은 다 자기 앨범에 쟁여놨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정말 그랬다. '설마'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여러 사람을 잡는다.
보컬과 훅 메이킹은 이미 검증되었기에 프로듀싱이 관건이었다. 걸출하다. 스물 셋이라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곡 구성이 자연스럽다. 동시에 단단하다. 편곡은 본인을 중심으로 두되, 다채로운 프로듀서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색깔을 채웠다. 채우다 못해 넘친다. 매력이. 전체적으로는 울긋불긋한 그림, 크러쉬의 내공이 응집된 첫 정규작이다.
그의 내공만 응집된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펑키한 디스코부터 요즘의 피비알앤비까지, 흔히 흑인 음악이라 불리는 장르들을 망라했다. 그 중, 자이언 티와 함께한 2014년판 뉴 잭 스윙, 「Hey baby」가 막강하다. 마이클 잭슨의 오마주이지만 편곡 외적인 부분에선 따라하지 않는다. 프리스타일 랩같이 정돈되지 않은 멋의 1, 2절, 귀에 박히는 후렴과 찢어지는 창법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비트박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곡은 진품명품이다. (「Hey baby」는 비트박스가 '진품명품'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에게 '진품명품 송'이라고 불렸다.)
슬로우 잼 넘버, 「Give it to me」도 만만치 않다. 그레이의 비트에 크러쉬의 멜로디, 사이먼디의 가사 그리고 박재범의 놀라운 성장까지. 어우러진다. 콜라보레이션 했던 아티스트들의 개성도 진하지만 크러쉬는 기대지 않는다. 쿠마파크와 함께했던 「밥맛이야」에서 레이지쿠마(Lazykuma/한승민)의 보코더와 크러쉬의 스캣이 펼치는 주거니 받거니가 증명이라도 하듯 들려준다. 그 부분 아니어도 노래 자체가 조화롭고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앨범 내에서 신선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원해」에서는 중간에 랩을 한다. 모든 노래에 흥미로운 요소를 두어 개씩 배치해 놨다. 라이브 무대에선 춤도 춘다.
모든 노래의 주제가 의미 없이 유사하다는 점 외에는 나무랄 것이 없다. 그마저도 큰 누가 되지 않는다. 뒤처지는 한국 알앤비 선배 몇몇을 따돌린다. 앞서 응집체라 말했듯이 모든 내공을 쏟아낸 만큼 강력하지만, 이후의 앨범에서 크러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상반기에는 자이언 티, 올해 상반기에는 그레이부터 로꼬, 크러쉬까지 차례대로 터졌다.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성공적이었다. 남은 비비드 멤버 엘로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글/ 전민석([email protected])
관련태그: 크러쉬, Crush, 개코, gray, 가끔, 눈이마주친순간, hug me, 원해, 아름다운 그대, hey baby, zion.t, 자이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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