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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네어, 대중성과 음악성을 갖춘 힙합레이블
결과물들이 걸출하긴 하지만 원래 대단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가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습니다. 타이틀곡 ‘연결고리’의 후렴이 인상적이네요.
일리네어 레코즈 < 11:11 >
“특히 「연결고리」의 훅은 상상 못할 만큼 Fresh했어요.” 앨범을 미리 들은 크러쉬가 홍보 영상에서 하는 말이다. 힙합이 생소한 이들에겐 Fresh가 아니라 '골 때리는' 수준이다. 나머지 수록곡들 또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시하고, 일리네어는 문화가 귀에 배게 했다.
알려진 사람들에게 겸손이 미덕을 넘어, 기본적인 소양으로 요구되는 고상한 나라다. 자부심에 근거를 두더라도 힙합의 '자랑질'은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일리네어는 음악과 생활 방식으로 이걸 바꿨다. 힙합 신에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초 단위로 매진되는 그들의 공연엔 스냅백 쓴 여대생들로 가득하다.
동료 래퍼들에게도 긍정적인 가치관부터, 과시하는 가사, 트랩 비트와 레이블 단위가 갖는 콘셉트, 등 여러 영향을 끼쳤다. 흩어져 있던 문화의 파편들을 모아 흐름으로 만들었다. 일리네어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국내 힙합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도배해 버릴 만했다.
주목 받는 것과 별개로 앨범은 똑같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것들을 사는 행복한 인생. 성공적인 삶에 대해 만족하며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작들과 동일하다. 비트 역시 다양하지만, 도끼와 더 콰이엇의 최근 앨범에 수록되어도 어색할 것 같지 않다. 단합이 잘 되던 레이블이라 이미 셋이 작업한 곡이 많았다.
그 와중에 세 멤버가 모든 트랙에 참여하다 보니, 컴필레이션 앨범만이 갖을 수 있는 독창성을 잃었다. 구성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유연성이 떨어진다. 결과물들이 걸출하긴 하지만 원래 대단했다. 그 상태에서 발전이 없다.
새로운 시도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관된 트랩 플로우로 트랙의 반 이상을 채운 「연결고리」가 있다. 한국판 미고스(Migos)의 「Versace」를 노렸지만 너무 단순했다. 흥을 돋우지만 갈수록 답답하다. 빈지노가 치고 나올 땐 속이 시원할 정도다. 같은 비트위에서 각자의 멜로디를 흥얼거린 「Ratchet」도 흥미롭지만 다시 찾게 되지 않는다. 워블 베이스 위에서 순서를 넘기며 랩을 이어나가는 「가」는 성공적이다. 랩이 심심할 뿐이다.
빈지노만 치열하다. 더 콰이엇과 도끼는 랩을 여전히 잘할 뿐, '더' 잘하지 못하고 있다. 한 곡 안에서 세 래퍼가 같은 맥락으로 가사를 써도 빈지노는 다양한 이미지를 동원한다. '공효진 누나'가 나오고 '서울 예고에서 유일한 빡빡이'가 나온다. 전달력도 좋다. 「11:11」에서 숫자 랩은 신선했다. 숫자로 랩을 이어간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숫자를 박아 놓은 위치나 동음이의어, 모든 라인을 살리는 플로우의 센스가 굽이친다. 이전에 드렁큰 타이거의 「위대한 탄생」과, 에픽 하이의 「Eight by eight」에서 얀키의 벌스가 있었지만 빈지노는 다르게 했고, 다르게 살렸다. 외모와 학벌 덕에 과대평가 받는 것이 아니냐는 대중의 어처구니없는 의혹을 랩 실력으로 매장한다.
더 콰이엇은 근래 익살스러운 가사로 듣는 재미를 주고 있다. 「Profile」에서 그의 벌스가 2012년 힙합플레이야 어워즈, 올해의 구절로 뽑히기도 했다. 이번엔 약했다. 부족하다. 도끼도 정체되어 있다. 뮤지션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같을 수도 있지만 단어와 표현마저 한정적이다. 자부심을 갖고 과시하는 것이 힙합의 문화라지만 재치나 음악적인 진화가 들리지 않는다. 사업가이기 이전에 래퍼인 그 둘은 수입이 늘어나는 것을 강조한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수요와 인기를 환산할 뿐이다. 지폐가 음악성을 대변해주진 않는다.
글/ 전민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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