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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 결코 늦지 않은 그녀의 행보
시공간의 경계를 무시한 더 없이 멋진 2014년 산(産) 빈티지
김추자가 돌아왔습니다. 30년 만에 돌아와서 40년 전의 음악을 들려주지만 < It's Not Too Late >입니다.
송홍섭과 한상원, 정원영 등, 국내 최정상 연주자들이 가세한 크레디트는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한국식 사이키델리아의 고전을 복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일등 공신들이 아니었을까. 음반의 시작과 함께 묵직하게 울리는 베이스와 능란한 기타, 오르간 사운드로 몽롱함을 자아내는 키보드 라인들은 사이키델릭 록, 펑크(funk) 넘버들에 더 없이 적확하고 또 적합하다. 「몰라주고 말았어」서부터 「가버린 사람아」, 「태양의 빛」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록 킬링 트랙들과 40여 년 전의 「미련」, 「저무는 바닷가」와 겹치며 신중현 사운드를 재건한 「고독한 마음」, 음반의 후반부를 멋지게 빛내는 「그대는 나를」과 같은 곡들에서 세션의 역량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서술하지 않은 나머지 곡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음반의 몸집을 불리는 것은 단연 주인공인 김추자의 보컬이다. 33년 전과 비교해 음색은 변했다고 하나 특유의 비음 섞인 걸쭉한 목소리와 세기를 끌어올리는 에너지는 여전하다. 그루비한 사운드의 첫 트랙 「몰라주고 말았어」에서 시동을 걸어, 폭발하는 「가버린 사람아」에서의 넘치는 완력, 「태양의 빛」에서의 소울풀한 목소리로 몰아가는 일련의 보컬 퍼포먼스는 전성기에 비견할 만한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자아낸다.
만만찮은 연륜은 후속하는 곡들에서 더 여실히 드러난다. 느릿한 템포의 곡들에 이르러 탁월한 완급 조절이 빛을 발한다. 가볍게 시작해 점차 힘을 실어 올리는 「내 곁에 있듯이」, 감정의 굴곡을 여러 번 훑는 「고독한 마음」과 「하늘을 바라보소」가 트랙 리스트의 중후반에서 흐름을 매끄럽게 가져간다. 어느 정도 간편하게 접근한 「춘천의 하늘」에서의 보컬 또한 소구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여러 양상은 아티스트의 능력이 너른 영역을 가로지른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킨다.
사이키델릭 록으로 시작해 펑크(funk), 소울, 팝과 트로트에 이르는 각양의 사운드에 알맞은 문법을 적용해가며 김추자는 노래한다. 여기엔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며 뱉어내는 불쾌한 이물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취사선택, 변형의 현장이다. “왜 김추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 있다.
수록곡들은 한참 전에 받아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그대는 나를」이 김희갑의 곡이고 「하늘을 바라보소」와 「그리고」가 이봉조의 곡이다. 장혜정의 「춘천의 하늘」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곡은 모두 김추자를 발굴한 신중현의 작품이다. 세대 간극은 시작과 동시에 난 피할 수 없는 결과다.
김추자라는 단어가 조성한 한참 전의 이야기에 곡들의 시대상이 무게감까지 더한다. 접근성이 현격히 낮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이 음반 앞에서 제기하는 소통에의 의문은 사실 별 시답잖은 물음이다. “지금 왜”에 주목할 게 아니라 “지금 어떻게”에 주목해야 한다. 아티스트는 40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분명 여러 고민이 오갔겠지만 결론이 도달한 쪽은 옛 곡과 옛 사운드, 옛 스타일이다. 현 세대의 동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작품을 내놓는 아티스트의 줏대가 음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현재라는 잣대가 알아서 평가선상으로부터 물러나는 흔치 않은 사례들에 작품을 추가해야겠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거슬렀다면 레트로니, 복고니, 별의별 수식어들이 음악을 뒤덮었던 게 그간의 현실이다. 어휘 남용에 제재를 가할 때가 이제야 온 듯하다. 시공간의 경계를 무시한 더 없이 멋진 2014년 산(産) 빈티지다.
글/ 이수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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