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사람을 사랑하고 노래를 즐기며

나는 다시 노래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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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소리가 선율을 만난 것이 노래이다. 목소리가 주는 웃음과 위로. 낙엽 지는 가을도, 눈 쌓인 겨울도, 다시 오는 봄도 노래로 한껏 즐겨 보리라. 내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

올봄 어느 날 나는 종로 어느 술집에서 시인들과 술을 마셨다. 시인과 친구 맺는 일이 내 인생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라 이렇게 우연하고도 유쾌한 일들이 가끔씩 빵빵 터져주곤 한다.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시인들이었다. 조촐한 술자리였다. 나는 우연히 그 술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나를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신 일이 많은 분들이어서 아무래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몇 번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그 자리에 찾아갔다. 갑작스런 나의 등장을 모두 매우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술이 좀 들어가자 나는 어느새 파닥파닥 생동감 넘치는 안주가 되어 있었다.

시인1 “이 처자는 누가 불렀지요?”
시인2 “몰라. 안 불렀는데 왔더라고.”
시인3 “그러게. 어찌 알고 왔능가 몰라.”
“아까는 환영해 놓고 이제와 왜 이러시는지요들?”
시인2 “아까는 처음 인사하는 거였니까. 다 그런 거지요.”
성악가 “그러고 보니, 왜 왔어?”
“아, 진짜!”
시인1 “아, 그러니까 안 불러도 오는 사람이고만요!”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안 불러도 오는 여자’로 통하고 있다. 우쒸! 그 자리는 웃음이 가득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나에게 노래를 시킨 것이었다. 기꺼이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를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노래를 한두 곡씩 다 불렀다. ‘아, 정겹구나. 이런 자리!’ 아늑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나 어릴 때는 이렇게 친구들끼리 모여 노래를 주고받으며 부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즐거움은 생음악으로 부르는 노래 속에 있었다. 학창시절 내내, 재수할 때, 대학 1, 2학년 때까지도 노래는 즐거운 시간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나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노래가 사라졌다. 노래는 노래방에서만 불렀다. 노래방은 노래하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에 반주는 빵빵했지만 넉넉하고 고즈넉한 즐거움이 없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술자리 덕분에 옹기종기 모여 반주도 없이 제 흥대로 부르는 노래의 즐거움을 다시 기억해냈다.

올해 여름에 세 번째로 아프리카 대륙에 다녀왔다. 내 경험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노래와 춤을 참 좋아했다. 악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곳이지만 아이들의 입술에 늘 노래가 걸려 있었고, 몸에는 춤이 옷보다 먼저 걸쳐 있었다. 아이들은 굉장히 많이 수줍어하다가도 가만히 옆에 있으면 흥얼흥얼 케냐의 가락을 부르고,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면 손발을 저절로 움직이며 흔들흔들 춤사위를 보이곤 했다. 조금 친해지면 내게 노래를 불러 달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곳 사람들은 노래를 참 즐겨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가만 나의 어린 날을 떠올려 보니 나도 이들 못지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춤도 춤이지만 노래는 확실히 내 생활의 일부였다.

우리나라도 노래와 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지금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까? 꼬맹이들은 아직도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우고 집에 와서 그 노래를 모조리 다 불러대는데…. 어쩌면 우리가 너무 부유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방이 지천에 널렸고, 악기는 하나쯤 갖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스마트폰이며 엠피쓰리로 사운드 빵빵한 전문가들의 음악을 항상 들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도리어 즐기는 문화가 소극적으로 변한 것 같다. 부르기보다 듣는 것, 내가 하기 보다 남이하는 것을 보는 것에 더 익숙해가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노래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술자리를 더 즐겁게 즐기기 위해 가곡, 트로트, 옛날 발라드와 통기타 노래를 외웠다. 케냐에서 아이들과 더 잘 놀기 위해 케냐 노래와 우리나라의 진도아리랑, 새타령도 외웠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이 서툴게 혹은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노래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인간미 넘치는 유쾌한 풍경이다. 가내수공업식 자급자족의 즐거움이 넘치는 풍경.


공자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것 같다. <술이> 편을 보면 공자가 제(齊) 나라에 있을 때에 순(舜) 임금의 음악인 소악(韶樂)을 듣고서 그 음악을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모른 채로 지내며 그 음악의 경지에 감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음악을 좋아해도 음악에 이렇게 흠뻑 빠지기는 쉽지 않다. 음악을 전공한 내 동생은 너무나 훌륭한 연주를 들으면 갑자기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자리에서 잘 일어나질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증세는 평생 없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 이래서 얘가 음악을 전공하는구나.’라고 새삼 느끼곤 한다. 공자에게도 이를테면 매우 섬세한 음악적 감수성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 공자가 보이는 매우 화락한 모습이 바로 위의 구절이다. 함께하는 누군가가 노래를 잘 부르거든 다시 청해 잘 감상하고 또 함께 부르는 모습. 참 인간적이다. 음악을 즐기되 함께 즐기는 모습이 꽃 꺾어 수 놓고 한 잔 먹고 두 잔 마시며 봄을 즐기는 그 어느 정겨운 술자리의 한 풍경 같다.

인간의 목소리가 선율을 만난 것이 노래이다. 목소리가 주는 웃음과 위로. 낙엽 지는 가을도, 눈 쌓인 겨울도, 다시 오는 봄도 노래로 한껏 즐겨 보리라. 내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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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임자헌 저 | 행성:B잎새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한문을 공부하고 사극에서나 볼 법한 옛글을 번역하는 저자는 소위 ‘문자 좀 쓰는 여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크한 요즘 여자이다.이 책은 현대 여성들이라면 다 겪을 법한 소소한 일상의 사건사고에 저자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위트, 독특한 관찰력을 담고 거기에 고전을 살짝 토핑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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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자헌

의욕 넘치게 심리학과에 지원하여 합격했으나 막상 가 보니 원하던 학문이 아니어서 대학시절 내내 방황했다. 어쩌다 보니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 입학하여 깊은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상임연구원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름 ‘문자 좀 쓰는 여자’가 되었다. 《일성록》 1권을 공동번역하고 3권을 단독 번역했으며, 《정조실록》을 재번역 중이다.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임자헌> 저12,600원(10% + 5%)

“하루키보다 공자를, 커피보다 맹자를 사랑한 문자 좀 쓰는 언니의 촌철살인 일상 수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제는 거의 쓸 일이 없는 한문을 공부하고 사극에서나 볼 법한 옛글을 번역하는 저자는 소위 ‘문자 좀 쓰는 여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크한 요즘 여자이다.이 책은 현대 여성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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