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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와 HBO <뉴스룸>
우리의 삶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 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각종 오보가 난무했을 때 SNS상에서는 <뉴스룸>의 주요 장면들이 공유되었다. 사람들은 속보와 독점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확인도 안 된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보도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정한 언론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뉴스룸> 시즌 1의 4화에서는 속보로 들어온 정치인 총격 사건을 다루는 뉴스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 공영 라디오(NPR)는 하원의원 사망 소식을 전하지만 ACN 뉴스 제작진은 경찰이나 의사로부터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게 아니기에 총격 사건이 발생한 사실만 보도했다. 이에 뉴스룸으로 쳐들어온 ACN 사장은 “속보 경쟁에서 뒤처지면 1초에 1천 명이 채널을 돌린다. 왜 우리는 사망소식을 발표 안 하는 거야? CNN, FOX, MSNBC에서 다 죽었다잖아”라고 말한다. “사람 목숨입니다. 뉴스가 아니라 의사가 결정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제작진에 힘입어 앵커는 사망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다른 언론사들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NPR의 받아쓰기를 하는 동안 ACN의 뉴스나이트만이 오보를 내보내지 않은 뉴스가 되었다.
신뢰할 수 있도록 정확한 뉴스를 제공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언론의 역할을 보여준 것뿐인데 세월호 보도와 관련하여 전원 구조되었다던 생존자 수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정정되었던 사실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이 에피소드가 울컥할만한 감동을 주었고 대한민국 언론도 이러한 보도를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건 생명과 대통령직이 걸린 문제라고 장담할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하게 보도해야 해. 설사 다른 방송국보다 2분 즈음 늦게 방송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뉴스룸> 시즌 1의 7화에서는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국민특별담화로 알 카에다 수장인 빈 라덴 사살 소식을 전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도 보도에 신중을 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199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스커드 미사일이 도착했다고 속보를 전했을 때 이라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이라크는 목표물을 겨냥해서 3명이 죽었고 96명이 작전에서 부상당했다. <뉴스룸>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사건에 대한 언론의 자기 반성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속 뉴스룸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바르고 옳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전에도 <뉴스룸>의 첫 번째 에피소드 오프닝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고 말하는 공화당지지자인 앵커 윌 맥어보이의 발언, 그 충격적인 발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임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게 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드러난 것은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는 언론뿐만 아니라 대응과 대책 마련이 미흡하고 책임감이 부족한 정부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우리의 무관심임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뉴스룸> 같은 언론을 바라기 위해서는 스스로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부터 필요하다.
사고 발생 후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동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동시에 무언가 할 수 있었음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분노했다. 직접적인 세월호 피해자가 겪는 감정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테지만 이 사고에 감정이입 했다. 사고 소식과 구조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기분이 들었는데 언론의 보도 방식에도 질리고, 정부의 사고 대책 마련에도 답답함을 느끼고, 거리조절을 못해 너무 뜨거워진 감정들과 언론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이 냉정하지 못한 루머들이 퍼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SNS를 읽는 것도 힘들어 나는 TV를 끄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고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비겁하지만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해도 모든 채널과 이슈들이 세월호에 집중되어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화두로 삼았다.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제멋대로 울컥해서 냉소의 글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고를 핑계 삼아 분노를 드러내고 이 판국에 진영을 나눠 서로 공격하기 바빴다.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자극적인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누군가는 이 와중에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상을 즐긴다고 비난 받았고, 또 누군가는 마치 드라마퀸이라도 된 양 감정이입을 과도하게 하여 그 슬픔의 진정성을 의심 받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촉매제 역할을 하여 대한민국 구조의 허술함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분열도 지켜봐야 했다. 슬픔보다 분노가 더 커졌을 때, 쓸데없이 많은 말로 서로 상처를 줄 때,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다 그런 감정을 쏟아낼 때 우리의 시간은 정지되고 호흡은 멎었다.
정치인 총격 사건을 다룬 <뉴스룸>의 에피소드에서 내게 유난히 기억에 남은 것은 뉴스룸 안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조이가 속보를 받자마자 하원의원의 이름 아래 미리 기입해두었던 사망연도를 삭제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동료가 그에게 해준 말이 “Joey, Just breathe regular.”였다. 언론이 죽음을 선고할 뻔했던 사람에게 호흡을 돌려준 뒤, 크게 숨을 들이쉬는 조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도 필요한 건 맑은 산소를 뇌에 공급할 수 있도록 숨을 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졸이며 긴박하고 절박했던 상황을 보내며 지혜 따위는 가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구는 걸 멈추길 바랐다.
아비규환의 사고 현장에서 재난 구조 대책이 우왕좌왕하는 판국에 산 사람은 살게 만들어주는 걸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자를 찾아내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뿐만 아니라 생존자와 피해 가족에 대해서도 사려 깊어야 하고 그 역할을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도 함께 노력해야 하며, 불가피한 재난이 아닌 이와 같은 인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를 수습하고 해결하는 과정까지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고를 통해 우리가 입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는 애도의 방식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져야 할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언론과 국가를 만들어가기 위해 (비록 그것이 마치 로맨스 장르의 남자주인공처럼 현실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바라고 꿈꿀 힘과 의지를 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살아 숨쉬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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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