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상처를 진주로 만들어 가는 과정

『은주』로 돌아온 권비영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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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이 5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 『은주』로 돌아왔다. ‘진주를 품은 여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작품은 숙명처럼 주어진 삶의 상처를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는 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은 상처를 이겨내면서 진주를 만들어가는 과정

 

소설 『덕혜옹주』를 통해 잃어버렸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복원해 낸 작가 권비영이 새롭게 주목한 이야기는 우리 안의 상처와 소통이다. 작가는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은주』를 통해 가족의 해체와 개인주의, 뿌리내리지 못한 다문화 가정이 많은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상처와 용서, 소통과 단절이라는 두 극단의 사이를 배회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 끝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권비영 작가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은주』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를 통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권비영

 

“『은주』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진주를 품은 여자’라는 부제로 대변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작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들려주시는데요. 아무런 상처도 없이 행복하게 사는 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픔이 많더라고요. 진주는 조개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내뿜는 물질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라고 하잖아요. 우리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상처를 이겨내면서 진주처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주

『은주』의 주인공(은주)은 부모의 폭력과 폭언, 그로 인한 상처로 고통 받는다. 그러나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자신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것. 그곳에서 은주는 터키에서 유학 온 청년(에민)을 만나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자신 안에 남은 폭력의 상처에 가로막혀 쉽게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한다. 그 사이 에민은 터키로 돌아가고, 부모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한 은주는 터키로 가서 그와 재회한다. 그리고 에민의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자신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처음부터 터키를 소설의 배경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터키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문화적으로 우리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공기놀이나 사방치기와 비슷한 놀이도 볼 수 있었고요. 우리가 터키에 대해 느끼는 것보다 터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훨씬 더 친근하게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은주』에서 터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문화센터 안에서 은주와 이주민들이 그러했듯이, 터키에서 만난 에민의 가족과 그녀 사이에서도 언어는 소통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시간들 속에서 은주는 자신의 삶과 화해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에민의 아버지인 ‘파샤’는 은주가 알지 못했던 그녀 아버지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세상은 원망이나 분노를 안고 살기엔 너무 짧다네. 나로 인한 것이든 타인으로 인한 것이든,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이든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든, 모든 원망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하는 거라네. 나도 아버지의 뜻을 나이 들면서 깨달아 가고 있다네…….” (256쪽)

 

 

권비영

 

소통을 방해하는 삶의 속도


은주가 터키에서 경험한 ‘소통’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다. 말이 통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고 해서 그곳에 소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정이 아닌 다문화센터에서, 그리고 터키에서 비로소 ‘소통’을 찾은 은주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가정 안에서는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만났고, 그만큼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의 가정에서는 소통이 잘 이루어지나요? 꼭 그렇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소통에 벽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과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죠.”

 

‘지금 우리는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권비영 작가는 소통을 가로막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기 위해서 끝없이 달려 나가는 동안 중요한 것들을 돌아볼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이었다.

 

“자신이 목표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달리다 보면 나 외의 것은 보지 못하죠. 주위를 돌아보거나 주위 사람들을 안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요. 그래서 요즘은 가족 간에도 소통이 잘 안 되잖아요. 소통이라는 건 자기 희생도 있어야 되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들이 속도에 가려져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겨를을 갖지 못하는 거죠. 결국 서로의 입장만 생각하다 보니까 소통이 어려워진 게 아닌가 생각돼요.”

 

뒤이어 작가는 소통을 위한 첫 걸음은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틀렸다’가 아닌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태도가 필요하나는 이야기였다. 상대가 틀렸다고 단정 짓는 순간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 없는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고, 소통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해에 있다.

 

 

권비영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너와 나는 틀리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보는 게 맞는 거죠.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너와 나는 틀리다’고 단정을 짓고 나면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죠. 만약 우리가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면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길 것 같아요.”

 

소설 『은주』에서 소통은 곧 화해와 용서로 이어진다. 다문화센터와 터키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던 경험을 통해 마침내 은주가 삶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숙’은 가장 직접적이고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지숙은 은주와 함께 다문화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인물로, 그녀 역시 지난날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은주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주민들에게 온정을 베풀면서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려는 ‘몸짓’을 이어간다.

 

“은주의 용서와 화해는 지숙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숙도 내면에 상처가 있어서 그것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문화 센터에서 봉사를 하는 거죠. 은주에게 있어서 지숙은 정신적인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 그 관계 속에서 은주는 지숙으로부터 용서와 화해를 배우게 되는 거고요.”

 

작가가 들려준 은주와 지숙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종종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다른 이로부터 치유 받는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모두가 상처를 품고 살아가면서, 어떤 때에는 아픔을 또 어떤 때에는 치유를 건네준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고 소통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순간, 치유는 멀어지고 상처는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은주』는 상처의 순간에서 시작해 치유의 순간에서 끝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상처의 순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치유의 순간으로 나아간 은주의 이야기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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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저 |청조사
『은주』는 부모의 폭력과 폭언을 견디다 못한 25세 여주인공 은주가 가출 후 타인들과의 소통과 이해, 그리고 스스로의 반성과 통찰을 통해 치유되지 않은 채 들러붙어 있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가족 안에서 받은 극복하기 힘든 고통과 아픔을 소통과 용서를 통해 치유되는 과정이 실감나게 전개된다. 결국 나를 만들어 준 건 '가족' 그리고 '사랑',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의 일상에 대한 통찰을 권비영만이 지닌 담담한 톤으로 푼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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