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심사가 기대되는 이유

토이 유희열의 감성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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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K팝스타> 시즌3이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건 제2의 악동뮤지션이 아닌, 심사위원 유희열의 모습이다. 유희열은 최근 MBS <무한도전>, tnN <SNL 코리아>에 이어 <K팝스타>까지,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 | EJ

[출처_ 안테나뮤직 홈페이지]


<스케치북> <SNL>을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남자

유희열이 tnN <SNL 코리아>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속으로 난색을 표했다. 감성변태 유희열이지만 그건 라디오에서만 마주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이 막을 내렸을 때, 서운한 마음이 컸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직 건재하니까’하고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SNL 코리아>는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SNL 코리아> 제작진은 유희열을 섭외한 이유로 “유희열은 농담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래, 맞다. 유희열은 언제나 정색하는 법이 없다. 능구렁이처럼 유머를 받아치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가식적이지 않은 리액션, 예민한 통찰력의 소유자다. 유희열은 <SNL 코리아> 출연을 결심한 배경으로 프로그램의 본질을 꼽았다. 코믹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라 것. 그리고 고등학교 동문인 ‘신동엽’이 출연한다는 이유. 유희열과 신동엽은 경복고등학교 시절, 함께 방송반 활동을 했던 친구 사이다. 신동엽은 코미디를 유희열은 아나운서 역할을 맡았다. 유희열은 “<SNL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소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나는 유희열의 이 변을 듣고 그의 선택을 이해하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했다. 밤 12시 20분 방송. 제아무리 금요 심야 방송이라지만 시청률은 2%. 이승환, 다비치, 엠블랙 지오 등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시청률이다. ‘스케치북’은 토이의 4집 앨범에 실려있는 유희열 작사, 작곡 노래다. 2011년 막을 내린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역시, 토이의 노래 제목이다. 약 4년간 방송된 <라디오천국>은 팟캐스트에서도 꽤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심야 라디오 방송. 제아무리 ‘유희열’이지만 탄탄한 팬층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웠던 것일까. ‘라천민’으로 응집했던 유희열 팬들은 <스케치북> 본방사수에 힘쓰고 있을지 모른다.

<스케치북>은 가끔, 좋아하는 뮤지션이 나올 때만 본방을 챙긴다. 좋은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만, 간혹 음악보다 유희열의 촌철살인 멘트에 귀를 더 기울이곤 한다. 또 방청객 얼굴을 훔쳐 보는 것도 재밌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개그콘서트>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청객에게서 본다. 2009년부터 방송되고 있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개그콘서트> 못지않게 방청권 경쟁이 치열하다. 달달한 커플들의 필수 연애 코스가 <스케치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희열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둔 남자친구는 반드시 <스케치북> 방청권을 따와야, 애인의 자격을 인정받는다는 후문이. 나는 “유희열이 등장할 때마다 ‘끼야’ 소리를 지른 여자친구 때문에 화가 났다”는 지인의 증언을 들은 바 있다.

여자들은 왜 아직도 유부남 유희열을 이토록 좋아하는 걸까. 따져보면 이유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오죽하면 유희열의 연관 검색어 중 하나가 ‘유희열의 매력’이다. 오랫동안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헉소리 상담소’를 진행했던 칼럼니스트 임경선은 유희열의 매력으로 수치심, 자립심, 예민함을 꼽았다. 남자의 매력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인가? 싶은데, 이유를 들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이 부끄러운지를 아는 남자, 젊은 나이에 정신적으로 자립한 자신감이 있는 남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예민함, 철저한 민감함을 갖춘 남자가 바로 유희열이다.


우린 누구나 수다가 필요한 사람들

유희열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은 여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유희열이 졸업한 경복고등학교와 이웃하는 여고였다. 근처에 몇 개의 남고가 있었는데 나의 친구들은 ‘유희열이 졸업한 학교’라는 이유로 경복고를 편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우습지만, 그 때는 유희열을 좋아하지 않으면 마치 감수성 제로인 여고생 취급을 받았다. 덩달아 유희열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녹음하고 토이의 노래 가사를 필사하며 음악 수업을 대신했다. 마른 남자를 싫어했기에 유희열이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토이 노래는 김동률과 비등비등한 마력이 있었다. 「좋은 사람」, 「여전히 아름다운지」,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그럴 때마다」, 「거짓말 같은 시간」 등. 학교 수업을 마치고 노래방을 함께 간 친구들은 너도나도 토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이크를 잡아댔다.

유희열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1999년 출간된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속 28살 유희열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절판이 됐지만 유희열의 팬이라면 고이 모셔두고 있을 책.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판 19쇄 2001년 발행본. 유희열을 무척 좋아하던 친구로부터 받은 나의 스무 살 생일선물이었다. 유희열은 아주 어려서부터 두 가지 꿈을 가졌는데, 그림책과 연주음반을 내는 것이었다. 저자 유희열은 『익숙한 그 집 앞』을 펴낸 소감으로 “이제 아주 어려서부터 꾸어 온 꿈을 실현하게 됐으니 앞으로 십여 년 동안은 그다지 해보고 싶은 일도 없을 것 같다”고 썼다. 난 그 말이 어찌나 질투가 나던지. 그림은 잘 그렸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글 만큼은 정말 재미있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후속작을 만들어도 될 만큼. 유희열은 추억이 많은 남자였다.

표지부터 프롤로그, 에필로그까지 유희열의 담백한 글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나에게 “연애 좀 해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익숙한 그 집 앞』에서 나를 가장 질투하게 만든 글은 ‘사랑’ 편에 수록된 에피소드 ‘나를 낮춤으로써 올라갈 수 있을까-하인 놀이’였다.

나를 낮춤으로써 올라갈 수 있을까-하인 놀이

한 달에 한 번씩 그녀와 하인놀이를 했다.
그녀를 위해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주겠다고, 나를 인간으로 보지 말고 머슴으로 보라고 내가 그녀에게 먼저 청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먼저 삼청동 수제비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제비를 먹여 주는 머슴이 되었다.
그 다음엔 찻집으로 모시고 가서 차를 따라 드렸고, 인사동에 가서 스케치북을 사 드렸다.
그녀는 거리에서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라는, 웬만한 머슴은 하고 싶어도 재주가 없어 못하는 고급스러운 주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거리에서 뒤로 가는 춤을 추며 “삐리 삐리(beat it, beat it)” 노래도 불러 드렸다.
아 참, 동국대 앞에 가서 나 없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재롱을 떨어 주라고 강아지도 한 마리 사 드렸다.
그날 머슴의 시간이 끝나 갈 무렵 집 앞까지 모시고 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어,”
나는 그때 진짜 머슴이 되었다. 나는 한없이 나를 낮춰서 한없이 나를 올리고 싶었다.
그녀에게 항상 더 잘해 주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여자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다른 친구의 남자친구들은 고급 슈트를 입은 신사였고, 나만 허름한 청재킷에 배낭을 멘 떠돌이였다. 나는 내 처지를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 앞에서만은 머슴이 되어, 그녀 눈에만은 귀족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하인놀이는 두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가 밑줄 친 문장은 “나는 한없이 나를 낮춰서 한없이 나를 올리고 싶었다.”였다. 유희열에게는 두 번으로 끝나 버린 하인 놀이였지만, 나는 이 문장에 반해버렸다. 이후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는다고 속앓이를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익숙한 그 집 앞』을 선물했다. “네가 유희열 같은 남자가 된다면, 얼마 안 있어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은 쪽지와 함께. 결과는? 책임지지 않았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에세이는 유희열이 오랫동안 DJ로 사랑 받는 이유를 알게 했다.

우린 수다가 필요한 사람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 바람이 너무나도 절박한 경우엔 사실 그 누군가가 아무나여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굳이 말을 걸어 주지 않아도 좋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냥 나를 이해해 준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
어쩌면 횡설수설 두서 없을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왠지 무슨 말인가 하지 않으면
내 속에 쌓인 말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져 버릴 것 같은 기분.
우리가 그 감정을 사우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수다’다.
수다는 적어도 외롭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수다를 자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또한 정겹다.
그렇게 우린 누구나 수다가 필요한 사람들이기에
누구의 수다든 들어 줄 여유가 있어야 할지 모른다.
언젠가 나도 그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속 편히 수다 떨 수 있게끔 그 기회를 저금해 두어야 한다.

최근 남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을 펴낸 여성작가를 만났다. 중년남자들이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로 ‘수다를 떨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수다의 중요성을 간파한 유희열이 조금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 이유. 아마도 학창시절부터 갈고 닦은 수다력에 있지 않을까. (물론 수다만 많은 남자는 매력 없으니, 통찰력과 예민함을 겸비해야 한다)

갑자기 예능 프로그램에 연달아 출연하는 유희열을 보고, ‘그의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했던 마음이 『익숙한 그 집 앞』을 다시 펴보고는 순간 사라졌다. <스케치북>도 <SNL>도 유희열의 얼굴이다. <K팝스타> 시즌3 첫 방송에서 박진영은 한 출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일 좋은 건, 자신 목소리로 자기 말투로 말하는 것 같아요.” 이하 동문이다. 유희열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유희열이 부디 멋진 수다를 많이 떨어주기를.

<K팝스타> 시즌3 첫 방송에서 유희열은 “우리 소속사는 한 명이 안 되면 휘청인다. 그래서 더 열심히 눈 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YG와 JYP.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와 경쟁을 하게 된 안테나뮤직은 어떤 출연자를 선택할까. 지원단 루시드폴, 정재형, 페퍼톤스, 박새별의 모습도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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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EJ

편견을 버리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유희열 삽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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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종이위에 그렸습니다.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익숙한 그집앞에서 그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며, 그의 삶을 읽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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